[여의도에서]

‘숫자 싸움’엔 답이 없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유명한 병법가인 손빈은 위나라와 전쟁을 하던 중 매일 이동할 때마다 군사들을 먹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밥짓는 아궁이를 줄였다. 위나라는 제나라의 아궁이 숫자가 줄자 병사들이 도망간 것으로 보고 방심했고, 손빈은 이후 위나라를 급습해 대승을 거뒀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재상인 제갈량은 위나라와의 전쟁에서 왕의 명령으로 후퇴해야만 하는 상황이 오자 밥 짓는 아궁이 숫자를 날마다 늘려 병사가 많은 것으로 속이고 사마의가 이끄는 위나라 군사들을 피해 안전하게 퇴각할 수 있었다.

인간 사회가 만들어지고 진영 간 다툼이나 전쟁이 벌어졌을 때 기술이나 명분에 차이가 없다면 인원수는 언제나 승부를 결정짓는 가장 큰 역할을 하곤 했다. 이 때문에 '우리편의 숫자를 얼마나 부풀릴 수 있는가' '상대방 숫자를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는 싸움에서 중요한 변수가 된다.

최근 서울 광화문과 서초동에서 번갈아가며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집회는 이런 모습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달 28일 서초동 첫 집회 참가자를 주최 측이 200만명으로 발표한 이후 이달 3일 광화문집회를 주도한 주최 측은 이날 행사에 300만명이 모였다고 맞불을 놨다. 그러자 이달 5일 진행된 서초동 집회에서 또다시 주최 측은 300만명이 모였다고 주장하면서 양측의 참석인원 경쟁이 점입가경이다.

일부에서는 애초에 경찰이 집회 추정인구를 밝히면 간단하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집회 인원수를 추산해 경찰 병력을 투입하는 만큼 현 시점에서는 가장 정확한 추정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의 입장은 단호하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인원수를 밝히면 그 진위를 두고 갈등이 야기될 수 있어 애초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발표하는 인원이 많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적정 인원수가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별개로 사회가 집회인원 숫자에만 매몰된 나머지 사안의 본질을 벗어나고 있지는 않은지 한번쯤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집회장소나 그동안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숫자를 감안할 때 사실 저 숫자를 그대로 믿기는 힘들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에서 인원 부풀리기에 나선 것은 자신들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무엇보다 주최 측에서 밝힌 숫자까지는 안될지 몰라도 많은 사람이 양측의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이 크다.

한쪽에서는 조국 법무부 장관이 가족 비리에 연루돼 있다며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다른 편에서는 조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의 과도한 먼지떨이식 수사를 비판하고 검찰 조직 전체의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얼핏 큰 관계가 없을 것만 같은 양측의 주장은 의미가 변하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한쪽이 맞으면 다른 쪽이 틀리다는 식의 양비론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로 인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권이 자신들의 세를 결집시키기 위해 숫자경쟁을 방치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무리한 숫자경쟁은 자칫 사람들의 공감대로부터 멀어지는 악수가 될 수도 있다.
벌써부터 양측이 주고받는 숫자놀이에 피로감을 보이는 사람들도 나타나고 있다.

손빈과 제갈량이 전쟁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보여지는 아궁이 숫자 때문이 아니었다. 그 아궁이를 가지고 어떤 전략을 펼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