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마네기 오토코(양파남) 곧 청문회'
지난달 조국 법무부 장관의 국회 인사청문회 당일 한 일본의 민영 방송사가 정규방송 도중에 띄운 자막이다. 일본에서 조국 법무장관의 별명은 양파남이다. '초식남' '전차남' '건어물녀' 등 일본식 작법을 바다 건너 이웃나라 장관에게도 적용한 것이다. 외국의 장관(후보자)에 대해 까도까도 의혹이 많다는 뜻의 '양파남'이란 별명을 붙여가면서 청문회 시작을 알리는 자막까지 내보낸 것을 놓고 별나다고 해야 할까, 과하다고 해야 할까. 확실한 건 조국 장관에 대한 일본 매스컴의 관심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일본의 한 중견 언론인에게 그 이유를 물어봤다.
'양파남'과 관련된 뉴스 소비와 달리 정작 일본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와 직결된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해양방류 문제나 후쿠시마 지역의 방사능 문제에 있어선 좀처럼 기사를 보기 어렵다. 후쿠시마에서 생산된 쌀과 복숭아, 계란 등 식재료들이 점점 마트 매대에 늘어가고 있어도, 어떤 기준에서 괜찮다고 하는 것인지, '후쿠시마산' 대신 '국내산'이라고 표기하고 있어도, 식당들이 어떤 식재료를 사용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속은 끓는 것 같다. 한 일본의 주부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그 자신) 개인적으로는 정말 싫지만 참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일본 국민의 '침묵정치'라고 해야 할까. 남의 집 일은 드라마 보듯 관심있어하면서 정작 내 집 앞마당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침묵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신문의 한 젊은 기자는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 대해 "기존에 진보 성향의 매체들까지도 아베 정권에 동조하고 있다"며 "전과 달리 자유롭게 말할 수 없는 분위기가 됐다"고 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 문제는 국민의 안전한 먹을거리와 연결됐다는 점에서 과거 2008년 이명박정부 당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사건과 비견된다. 한국 같았으면 벌써 광화문에서 대규모 집회가 열렸을 법하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광장을 통해 민주주의를 일궈냈다. 그것이 30년이 지난 지금 집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광장정치가 다시 출몰했다는 건 국민으로선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의 광장정치는 의회정치의 기능 상실을 뜻한다. 국민이 광장으로 뛰어나간다는 것은 주권 행사를 위한 '최후의 수단'을 구사하고 있는 것과 같다. 물론 최근 조국 사태를 기점으로 정권 수호를 위한 광장정치도 새롭게 추가됐다. 광장은 보편적 정의를 뜻하지만, 필요 이상의 집단적 사고와 선동·과장을 동반한다. 심지어 이번 문재인 정권 들어 광장은 둘로 나뉘기까지 했다.
정치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정치과잉의 시대'다. 광장으로 나가는 한국 국민과 한국의 정치뉴스를 소비하는 일본 국민을 보고 있노라면 '정치 과잉이냐' '정치무관심이냐', 그 정도(正道)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ehcho@fnnews.com조은효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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