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한·일 갈등, 수습 이후가 중요하다

소·부·장 산업 키우는 일은
日의 무역보복과 관계없이
핵심 국정과제로 추진해야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부터 사흘간 일본을 방문한다. 일왕 즉위식에 참석하고 아베 신조 총리도 만날 계획이다. 한·일 양국의 갈등을 푸는 실마리가 마련될 것인지 주목된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대화를 통한 문제 해결에는 소극적이다. 그래서 일본통으로 꼽히는 이 총리의 방일이 막힌 대화채널을 뚫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이유로 무역보복에 나선 지 100여일이 지났다. 그런데 무역보복의 결과는 아베정부 예상과는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당초 한국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기업들이 3개월 이상 버티지 못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강인한 생명력으로 잘 버티고 있다. 일부 기업은 역공을 펴기도 했다. 삼성전자는 소재의 탈일본을 선언했고, SK하이닉스와 LG디스플레이도 일부 생산라인을 국산 제품으로 대체하기 시작했다. 다급해진 쪽은 일본 납품업체들이다. 판로불안과 매출 감소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수출손실도 일본 쪽이 훨씬 크다. 국제사회의 여론도 일본에 호의적이지 않다.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업체들에 한국의 반도체산업은 지난 수십년 동안 알짜배기 고객이었다. 아무리 화가 난다고 고객에게 총질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설혹 그 총에 맞아 한국 기업들이 쓰러진다 해도 그것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고객을 내쫓는 것이므로 오히려 자해행위다. 그런데 그 총알마저도 빗나갔다. 일본은 고객만 잃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둘러싼 갈등은 외교로 풀어야 할 문제다. 외교 문제에다 무역보복을 들이댄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지난 수십년 동안 일본의 역대 정부들은 수많은 갈등 사안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에서는 한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한 것은 정경분리 대응이 일본의 국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아베정부는 제 발등을 찍기로 작심한 것이 아니라면 정경분리 원칙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본은 수출규제를 원상회복하고, 한국은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를 복원하는 것이 해법의 출발점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갈등이 해소된 이후의 한·일 경제협력의 바람직한 방향을 세우는 일이다. 한·일 양국은 앞으로도 폭넓은 경협 관계를 지속해야 한다. 어느 일방이 주도권을 쥐고 시혜를 베풀거나 불이익을 주는 식의 경협은 진정한 경협이 아니다. 호혜의 관계를 구축할 책임은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있다. 아베정부는 수출규제를 통해 우리 기업들에 일본 리스크를 인식시켜 주었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산 제품에 과도하게 의존하면 고통을 당하게 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따라서 한·일 간의 무역제도가 원상으로 돌아가도 무역의 내용은 예전과 달라야 한다. 정부와 기업은 지금부터라도 협력해 소재·부품·장비 조달을 일본에 의존하는 구조에서 벗어나야 한다. 모든 산업을 자립적 구조로 만드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또 그렇게 할 필요도 없다. 다만 반도체와 같은 국가의 핵심 산업만큼은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 작업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정부가 소재·부품·장비산업 키우기에 나섰다. 지난주 민관 합동으로 소·부·장 경쟁력위원회를 발족했다. 그러나 위원회 발족에 앞서 정부와 업계가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소·부·장 산업 육성이 일본의 무역보복과 관계없이 우리 필요에 따라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국가적 과제임을 인식하는 일이다. 정치권도 소·부·장 특별법 개정 등 필요한 입법조치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한국 경제를 튼튼히 하는 일은 여야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