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사람고기 먹어봤냐' 놀림 받는데… 선생님은 "친구간 장난"[은밀하게 학대받는 아이들, 방치하는 사회]

이진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14 18:09

수정 2019.10.14 18:09

<4>사회적 학대에 아파하는 탈북 아동
탈북부모 복지시스템 접근 어렵고
아이는 사회적 차별에 멍들어 가
심리치료 필요한 탈북자녀 많은데
지원 단체·예산은 턱없이 모자라
40대 탈북인 여성이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 아파트 속 아들의 낙서가 그려진 문. 뉴스1
40대 탈북인 여성이 아들과 함께 숨진 채 발견된 서울시 관악구 봉천동의 한 임대 아파트 속 아들의 낙서가 그려진 문. 뉴스1
#1. 서울 관악구에서 탈북민 한모씨(42)와 6살 아들이 숨진 지 두 달가량 지나 뒤늦게 발견됐다. 한씨는 아동수당 신청 등을 위해 3차례 주민센터를 방문했지만 다른 복지급여를 수급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내받지 못했다. 김용화 탈북난민인권연합회장은 "지난해 한씨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하려 하자 주민센터에서 이혼한 남편과의 '이혼 확인서'를 떼오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한씨의 아들은 뇌전증(간질)을 앓고 있었지만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된 채 사망하고 말았다.

#2. 지난해 8월 충남지역의 한 어린이집에서 탈북민 아이가 학대를 받았다. 경찰 수사 결과 어린이 집 교사가 밥을 먹으라고 채근하며 손으로 등을 수차례 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아이의 부모는 "북한에 있을 때 고문받은 일이 있었는데, 그때가 떠오를 정도로 힘들다"고 토로했다.

#3. 최근 한 탈북아동은 같은 초등학교 동년배들에게 "사람고기를 먹어봤냐"고 놀림을 당했다. 이에 탈북아동의 부모가 항의를 했으나 담당 교사가 "아이들이 서로 장난치다 생긴 일"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고 탈북단체는 전했다.

■"탈북민 '아동 학대'에 취약"

사회적 약자인 탈북 주민의 아동들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탈북 아동들은 한씨 사례처럼 사회 안전망의 혜택을 받지 못해 '사회적 학대'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입을 모았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씨 아들은 건강보험료 연체와 영유아검진 미실시 등을 이유로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의 위기아동 1차 대상자인 70만명에는 포함됐다. 그러나 최종 관리대상 2만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는 제외됐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41종류의 데이터로 위기아동을 선정하는데, 데이터별 가중치가 다른데다 해당 아동은 영유아검진, 건강보험료 체납 외 다른 데이터 가중치가 낮아 최종 관리대상에서 제외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e아동행복지원시스템은 △장기결석 여부 △영유아 건강검진·예방접종 실시여부 △병원기록 등의 정보 등 빅데이터를 활용해 긴급한 복지서비스가 필요하고, 아동학대가 의심되는 아동으로 판단되는 경우 명단을 추려 분기별로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 넘겨 복지서비스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탈북민들은 다른 한국 가정의 자녀보다 '아동 학대'에 쉽게 노출되지만 복지 혜택을 받기는 더 어려운 상황이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에 노출돼 있지만 탈북 부모들이 복지시스템에 접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용화 회장은 "탈북 부모들이 남쪽 언어나 문화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복지서비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주민센터를 가서 요구하는 방법도 잘 몰라 허둥대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탈북 아동들은 북한 말투 때문에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를 당하기 십상이며, 심지어 어린이집 선생이나 교사들한테도 차별적인 발언을 듣기 일쑤라고 김 회장은 전했다.

■전문가 "복지 예산확충이 우선"

이에 보건복지부는 읍면동 주민센터에 '원스톱 상담창구'를 설치해 보건·복지·돌봄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한번에 안내받고 신청할 계획이다. 또 '복지멤버십'(가칭) 도입을 2021년 9월로 앞당기기로 하고 이를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예정이다. 통일부에서도 탈북 자녀들의 심리치료를 돕고 있다. 산하 공공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은 올해 학대 등으로 심리치료가 필요한 탈북자녀 45명을 선발해 심리치료비 18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정책들이 '땜빵 대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한씨 모자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해결책이라고 내놓은 정책은 당면된 문제 해결에만 집중돼 실효성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며 "복지 제도의 전제가 '보장'이 우선돼야 하는데 가난을 증명해야 하는 '조사'가 더 앞서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서는 '예산 확충'이라는 큰 틀에서 복지시스템을 전면 수정해야 한다"며 "현 시점에서는 복지 수혜자를 늘리는 것이 큰 과제"라고 덧붙였다.

beruf@fnnews.com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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