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日 경제보복 100일… 이성의 길 찾아야

얼마 전 저녁 자리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에 관한 이야기가 화두가 됐다. "100일간 일본의 보복조치를 겪었는데 국내 영향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이 나왔다.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소재에 대한 일본의 수출규제 직후 국내 반도체 생산이 멈출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지만 3개월 만에 180도 달라진 분위기를 말한 것이었다.

그러자 참석자였던 대기업 고위 관계자는 "당시 망망대해, 태평양에 떠 있는 (선박의) 물량을 하나라도 확보하려고 관련 자료를 모두 뒤졌다"며 "악몽과 같았다"고 떠올렸다. 이어 "지난 7월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관련 대책회의를 진행했다"면서 "재고를 늘릴 방법을 찾기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대응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피해를 수습한 게 그저 자연스럽게 이뤄진 일이 아니라는 말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 당국이 국내 수출규제를 단행한 지 100일이 넘었지만 업계의 피해는 아직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기업이 사활을 걸면서 총력을 다한 결과라 해도 무방하다. 일본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의 목줄을 잡기 위해 전략적 규제를 단행하는 동안 삼성전자를 비롯해 SK하이닉스, 삼성·LG디스플레이 등 업계는 고난의 행군을 했다. 공정 올스톱 등 우려가 컸음에도 겉으로는 최대한 차분하게 재고 확보·효율화·국산화 등으로 100일 넘게 버텨냈다.

기업들은 여전히 눈앞이 캄캄하다. 일본은 10월 말까지 핵심소재 관련 7건의 수출허가를 했지만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액체 불화수소 수출을 지난 8월 이후 1차례도 허가하지 않고 있다. 재계에선 일본이 다른 보복 카드를 이미 준비해 놓고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온다.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정치적 요인에 대한 기업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


지난 100일을 돌이켜 보면 기업이 해결할 수 없는 일도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 수출규제 사태는 이제 현 정부가 이성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감정과 오기로 국가 간 외교 문제를 풀 수 없다는 것은 웬만한 사람이라면 안다. 다행히 이낙연 국무총리가 22일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가지고 아베 신조 일본 총리를 만난다고 하니,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까.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산업부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