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방사능은 경계를 지키지 않고 흐른다

최수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4 16:41

수정 2019.10.24 18:39

[기자수첩] 방사능은 경계를 지키지 않고 흐른다
"방사능은 시·도 경계를 따라 흐른다." 방사능이 무슨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자율주행차량도 아닌데 무슨 소리냐고? 이야기의 내막은 이렇다. 지난 23일 울산시 중구청에서 전국 12곳의 지자체가 결성한 '전국원전동맹'이 출범했다. 울산 중·남·동·북구 4개 기초단체를 비롯해 전남 무안군, 전북 고창군과 부안군, 강원 삼척시, 경북 봉화군, 경남 양산시와 부산 금정구와 해운대구가 참여했다.

광역단체도 아닌 기초단체들이 동맹까지 결성한 이유는 현행 '원자력시설 등의 방호 및 방사능 방재 대책법(방사능방재법)'이 현실과 너무 괴리가 크다는 데 있다. 방사능 방재법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개정됐다.
원전사고를 대비해 반경 거리 30㎞ 이내에 있는 모든 지자체는 해마다 방재계획을 수립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받도록 했다.

하지만 장갑·덧신·안경 등 개인용 방사능 방재세트와 표면오염감시기 등 공동장비를 구입하려면 기초지자체의 자체 예산으로는 어림도 없다. 방재계획 수립부터 장비관리, 주민 홍보까지 해야 하는데 인력도 태부족이다.

반면 예산이 넘쳐나는 곳도 있다. 현행 법에 따라 원전 주변 5㎞ 반경 이내에 있는 울산 울주군과 부산 기장군, 경북 울진군, 전남 영광군에는 원전지원금이 지급된다. 울주군은 매년 300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원전동맹 중 21만명이 거주하는 울산 북구는 경주 월성원전과의 거리가 경주 시내보다 훨씬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1원 한푼 지원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원전사고 시 방사능 방재범위를 반경 거리로 정하면서도 정작 원전지원금 지급은 원전 소재지의 행정 경계로 나뉘고 있는 꼴이다. 원전지원금 법령 개정이 필요한 이유다.


전국원전동맹이 발표한 공동요구안은 '원전지원금 법령 개정'을 비롯해 '원전정책 수립 시 인근 지자체 의견 반영' '지방교부세법 개정을 통한 원전교부세 신설' 등이다. 20대 국회에는 유사법안이 30개 넘게 상정됐지만 진척을 보지 못하고 있다.
태풍으로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가 현실화됐다. 이 또한 대한해협을 경계로 일본 근해에만 흐를 수 있을까?

ulsan@fnnews.com 최수상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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