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단독]"공익제보라 여겼는데..." 마약거래 신고 후 입건된 20대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0.27 10:11

수정 2019.10.27 13:06

SNS서 우연히 마약상과 대화..포상금 혹해 위장거래 시도
'마약택배 송장번호' 신고하자 경찰 "수령 후 다시 신고하라"
마약 수거 후 소변·머리카락 검사..'음성' 판정에도 피의자 전환
경찰 "장기간 채팅·마약 용어 잘 알아..자수로 판단해 수사 中" 
전문가 "고의성 여부 쟁점..목적 상관없이 마약상 접촉은 엄금"
[단독]"공익제보라 여겼는데..." 마약거래 신고 후 입건된 20대

[파이낸셜뉴스] 경기 안산시 한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H씨(27)는 지난달 중순 당직근무 중 평소처럼 심심풀이용 상대를 찾기 위해 트위터에서 ‘안산’ 키워드를 검색했다. 그는 최신 트윗에 ‘안산, 작대기, 아이스, 차가운술, 편하게 연락주세요’라는 글을 올린 누리꾼 A씨에게 말을 걸었다.

■“포상금 생각에” 위장거래 뒤 신고
H씨는 “당시엔 그러한 단어들이 마약류를 지칭하는지 몰랐다. 인사를 나누다가 상대가 ‘텔레그램을 하느냐’고 묻기에 텔레그램에서 대화를 나눴다”다. 그는 “‘상대가 '작대기는 얼마다’ 등의 말을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랐다. 관심이 없어 대화를 마쳤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며칠 뒤 A씨는 H씨에게 말을 걸어왔다. “떨도 있다”는 그의 제안에 H씨는 그제서야 A씨가 마약상임을 알게 됐다.

H씨는 마약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A씨를 떠보기 시작했다. 처음엔 정보를 캐낼 요량으로 어떤 마약을 다루는지, 투약 방법은 무엇인지 등 기본적인 사항을 묻다가 거래지역과 전과 여부 등 심층적인 질문으로 옮겨갔다.

“대화를 하며 관계가 가까워지자 마약을 사겠다는 말도 없었는데, A씨가 마약 샘플을 등기로 보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당황해서 계속 말을 바꾸니 A씨는 ‘내가 직접 우체국에서 연락을 하겠다’고 하더라”며 H씨는 당시 대화내용을 기억했다.

H씨는 고민 끝에 주소를 보내줬고, A씨로부터 9월 23일 송장번호를 받자마자 그날 경찰에 신고했다.

그는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한 형사가 ‘마약인지 확인해야 조사가 가능하다. 택배 수령 후 다시 신고하라’는 답이 왔다”며 “다음날 마약을 수령한 뒤 다시 신고를 했고, 또 다른 형사가 찾아와 마약을 수거했다”고 말했다. A씨가 H씨에게 보낸 것은 시가 20만원 상당의 필로폰이었다.

H씨(오른쪽)와 친구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사진=H씨 제공
H씨(오른쪽)와 친구와의 메신저 대화 내용/사진=H씨 제공

■'음성' 판정나왔으나 형사입건
H씨의 집에서 마약을 수거해간 형사들은 그에게 임의 동행을 요구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마약 간이(소변)검사가 진행됐고, H씨에게는 ‘음성’ 판정이 나왔다. 이와 함께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H씨 머리카락에 대한 감정도 의뢰했다.

사흘 뒤인 9월 27일엔 2차 조사가 진행됐다.

H씨는 “담당형사가 ‘마약을 하려다가 신고한 게 아니냐’고 물었고, 당연히 아니라고 대답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상황은 H씨의 바람과는 다르게 흘러갔다.

27일 경기 안산상록경찰서와 H씨 등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14일 H씨를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국과수 정밀감정에서 마약 음성 판정이 나왔음에도 H씨는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됐다. H씨는 이틀 뒤 피의자로 조사를 받았다.

H씨는 “경찰이 저를 입건했다는 것은 공익신고자로서 정말 화가 나고 섭섭한 부분”이라며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해 주변에 물어본 증거가 넘치는데 마약사범으로 몰아세웠다. 이러면 누가 신고를 하겠나”라고 토로했다.

경찰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일종의 자수로 봐야 한다”며 H씨에게 혐의점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H씨의 경우 전과는 없지만, 마약 판매책과 온라인상 장기간 채팅을 하면서 마약 관련 용어도 알고 있었다”며 “A씨가 실제로 주사기 사진과 송장번호를 찍어 보내주니까 약간 겁을 먹고 신고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마약관리법상 미수범도 처벌을 한다. 처음부터 입건한 것도 아니고 성분감정을 거친 뒤 자수로 입건처리 한 것”이라며 “(마약수수) 의도가 있다고 판단해 입건했지만, 아직 혐의가 명확하지 않아 계속 수사 중이다”고 밝혔다.

■"목적 순수해도 마약상 접촉 안 돼"
전문가들은 포상금 수령이나 설령 공익을 위해서라도 실제로 마약에 대해 직접 거래를 시도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마약 사건 전문가인 박진실 변호사는 “H씨가 위장거래를 주장했지만, 수사기관은 그 의사를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입건한 것으로 보인다”며 “일단 수수 행위자체가 이뤄졌으니 조사를 통해 고의성 여부를 파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일반 시민이 포상금을 목적으로 마약 판매책과 접촉하면 위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이러한 사례가 만연할 경우 마약사범이 이를 역으로 이용할 수 있고, 순수한 목적이었더라도 호기심 때문에 마약에 노출될 위험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마약 #필로폰 #마약신고 포상금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