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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관칼럼] 농민 손으로 만드는 맑은 물

파이낸셜뉴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3 16:43

수정 2019.11.03 16:43

[차관칼럼] 농민 손으로 만드는 맑은 물

어느덧 황금빛으로 물들었던 들녘에 차가운 바람이 분다. 농민들은 한 해 농사를 마치고 겨울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 봄부터 이어진 농민들의 수고와 노력을 생각하면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든다. 한편으로는 농업분야의 환경개선과 비점오염원으로 인한 수질오염이 여전히 우리에게 숙제로 남아 있어서 마음이 무겁다.

비점오염원이란 비가 올 때 도로, 농지 등 불특정한 장소에서 다양한 수질오염물질을 하천으로 배출하는 오염원을 말한다. 폐수배출시설처럼 일정한 지점에서 수질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곳은 점오염원이라 부른다.
이를 제외한 모든 오염원은 비점오염원으로 볼 수 있다. 비점오염원이라는 말이 국민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기 때문에 환경부는 좀 더 이해하기 쉽도록 '강우 유출 오염원'으로 명칭 변경을 하고 있다.

수질오염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대표적 지표가 생물화학적산소요구량(BOD)이다. 물속의 미생물이 호흡할 때 쓰는 용존산소량을 측정, 수질오염 정도를 나타낸다. 단위는 PPM이고, 이 수치가 높을수록 오염이 심하다. 우리나라 평균 BOD 수치에서 비점오염원이 원인인 경우는 68%다. 전체 비점오염원 중 약 40%는 농업지역이 차지한다. 농업지역에서는 질소, 인 등 영양분이 많은 비료가 과다 투입돼 땅에 오염물질이 쌓인다. 이 오염물질이 농사 때 쓰던 물과 빗물에 녹아 지속적으로 하천으로 흘러들어가고, 녹조에 영양을 공급하면서 수질오염을 일으킨다. 특히 낙동강, 영산강, 새만금 등 주요 하천 주변은 농업지역이 매우 넓어 요주의 비점오염원으로 지적받고 있다.

농촌 비점오염물질 유출은 내리는 비의 양과 영농방식 유형에 따라 변한다. 시기에 따라 유출 특성이 변해 사후관리보다는 발생원 단계부터 관리해야 효율적이다. 농민이 비점오염원 관리에 자발적 참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농민의 입장을 고려할 때 기존 영농방식을 포기하고 환경오염을 막는 새로운 기법을 도입하는 것이 부담일 수 있다. 특히 고령화 인구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 농촌에서 개인이 자발적으로 지속가능한 오염원 관리에 발 벗고 나서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주민참여 농업이 주목받고 있다. 농민, 환경단체, 관련기관 등 유역 내 이해관계자들이 협치(거버넌스)를 구성해 농민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오염원 저감방안을 실천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1980년대부터 환경 거버넌스인 그라운드워크를 결성했다. 미국에서는 2000년 체사피크만의 수질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체사피크 2000'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민참여를 이끌어냈다.

환경부도 성공적 주민참여농업의 본보기를 마련하기 위해 2017년부터 경기 이천, 전북 부안, 강원 홍천 지역을 대상으로 농촌 비점오염관리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역특성에 맞는 소규모 거버넌스를 구축해 농민들이 자신의 논과 밭에 주는 비료량을 줄이고 물꼬를 관리한다. 논을 습지처럼 만들고 풀숲을 설치해 자연적 정화를 꾀한다. 오염 여부 상황을 직접 감시한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법에 반신반의하던 농민들도 친환경농법의 긍정적 효과를 직접 경험하면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비료의 효과가 천천히 나타나는 완효성 비료와 물꼬관리기구를 사용한 농경지가 다른 농경지보다 올여름 태풍 피해가 적었다는 입소문을 타고 지원자가 증가하기도 했다. 환경부는 이런 성공사례가 전국 농가로 확산되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관계부처, 지자체와 협업을 강화할 계획이다.
지역 거버넌스를 중심으로 농민이 직접 만들어 가는 활기 넘치는 농촌, 맑은 물이 흐르는 농촌의 모습을 기대해본다.

박천규 환경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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