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구본영 칼럼] 남북 경협, 동서독 모델서 배워라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06 17:28

수정 2019.11.07 14:25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는 글로벌 상거래 규범 위배
서독, 투자보다 교역 치중
[구본영 칼럼] 남북 경협, 동서독 모델서 배워라
지난달 한 대학의 남북관계 발전 학술세미나에 참석했을 때다. 주제발표와 패널 토론 후 방청석에서 뜻밖의 날카로운 질문이 날아왔다. 경제학박사인 전문가가 문재인정부의 '평화경제론'을 "향후 100년을 바라보는 그랜드 디자인"이라고 하자, 한 '강호의 고수'가 "그럼 100년 동안 통일은 안 된다는 말이 아니냐"고 되물었다.

마침 그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물을 "싹 들어내라"고 지시했다. 남북 상생의 길이 북한의 불가측성으로 인해 순탄할 수만은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이는 체제유지가 최우선순위인 북한 정권의 '개방 알레르기'를 반영한다.
금강산관광으로 돈벌이도 좋지만, 핵을 포기하면서까지 할 뜻은 없다는 말이다.

김 위원장이 백두산에서 '백마 쇼'를 연출한 이후 북측의 일방통행이 갈수록 태산이다. 정부가 금강산관광 문제를 창의적으로 풀자며 제안한 실무회담도 일축했다. 그 대신 북측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시설 철거에 합의하자며 통보해 왔다. 아예 남한 관광객 대신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려는 낌새다. 이로 인해 자칫 현대아산은 계약기간이 30년 남았는데 투자금을 죄다 날릴 판이다.

남북 간 인적 교류와 경제협력은 평화공존을 위해서도, 통일을 위해서도 필요함을 누가 부인하겠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최근 회견에서 "북한이 반인권·독재 국가라는 이유로 내버려두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고 했다. "교류를 통해 한국의 자유경제 체제가 북한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공감할 만했다.

다만 교류·협력의 가성비가 동서독의 전례에 비해 너무 낮은 게 문제일 듯싶다. 시장경제 강국인 서독은 1990년 통일 때까지 사회주의 동독에 막대한 차관 등을 제공했다. 그러나 무조건 퍼준 게 아니라 정치범 석방 등 인권개선과 동독인의 서독방송 시청 등 늘 반대급부를 요구했다. 우리의 개성공단처럼 민간기업이 리스크를 떠안게 하는 대신 양독 간 교역에 치중했다. 이때 동독 정부가 대외결제로 서독 마르크화를 사용케 함으로써 통일에 앞서 경제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그렇다면 '평화가 경제다'라는 신기루만 좇고 있을 때가 아니다. 북이 '금강산 몽니'를 부리고 있는 지금이 비정상적 경협방식을 정상화해야 할 적기다. 그러나 최악의 빈곤에 벗어나려면 비핵화와 개방을 해야 하나, 그러면 체제가 위태로운 북 세습정권의 딜레마가 걸림돌이다. 이런 제약조건을 외면한 채 '소망적 사고'에 젖어 무턱대고 기업의 등을 떠밀어선 곤란하다. 남북 상생은커녕 북한 정권의 핵무장과 폭정을 방치하면서 남측 기업이 리스크만 떠맡는 경협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중국과 대만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여전히 동상이몽 관계다. 그러나 양안 협력은 인적 왕래와 투자보장을 제도화한 무역협정을 통해 남북경협에 비해선 안정적인 편이다.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이 안정적 시너지효과를 내려면? 북한 체제의 불가측적 속성에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글로벌 상거래 규범이 남북경협에도 뿌리를 내려야 한다. 나아가 경협이 북한 정권의 긍정적 변화, 즉 개혁·개방을 이끄는 데 얼마나 주효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질 시점이라고 여겨진다.
경협은 남북 양측이 모두 정경분리 원칙을 공정하게 지킬 때만이 윈윈 게임이 될 수 있음을 한시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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