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조 청구서' 내민 美…명세서로 본 '협상의 기술'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가 8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열린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 서명식에서 악수하고 있다. 2019.3.8/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체결을 위한 2차 회의가 지난달 23~24일(현지시간) 양일간 미국 호놀룰루에서 개최됐다 © 외교부 제공=뉴스1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서울=뉴스1) 최종일 기자 = 미국이 현재 진행중인 제11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에서 현재 분담액의 5배 수준인 50억달러(약 5조8000억원)에 조금 못 미치는 액수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1991년 1차 SMA 체결 이후 분담금이 점진적으로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5배 증액 요구는 터무니없다는 것이 대체적인 반응이다. 이렇다 보니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협상 방식이 이번 협상에 적용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단적 언사로 상대를 위축시킨 뒤 서서히 풀면서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하이볼' 전략을 구사한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일단 강하게 가격을 후려치고 협상을 시작하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50억달러라는 수치를 여러 차례 강조했다는 점이 근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5월 초 플로리다주 유세 연설에서 "군 장성들에게 그 나라 방위비로 우리가 얼마나 쓰는지를 물어봤더니 (연간) 50억달러라고 하더라"며 "그러나 그 나라는 우리에게 5억달러만 주고 있다. 무척 부자이면서 어쩌면 우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라를 지키느라 45억달러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특정 국가 명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였다. 또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8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비공개 대화에서 50억달러를 언급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50억달러를 공개적으로 밝혔기 때문에 미 정부 관리들이 이에 맞춰 논리를 세우는 작업을 해온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SMA 협상 1,2차 회의에서 미국의 요구라고 전해진 것들은 주한미군 주둔경비 분담이라는 SMA 취지와 목적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유사시 한국 방어와 관련돼 있다면 한반도 이외 지역에서의 미 전력 비용도 한국이 분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바탕으로 전략자산 전개, 연합훈련·연습, 주한미군 순환배치, 주한미군 작전준비태세, 주한미군 군속 및 가족 지원 등의 비용을 요구하고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의 SMA 틀에서 부담가능한 증액에 합의할 것"

이와 관련,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전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방위비 협상과 관련, "역외부담 등등을 포함한 미측의 설명 부분이 있고 또, 요청 부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아직까지는 그런 부분이 (직접적 요청이 아니라) 설명 부분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우리는 기존의 (SMA) 틀에서 합리적으로 우리가 부담할 수 있는 증액에 합의할 수 있다는 기본 입장에서 지금 세부사항까지 챙겨가면서 협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성호 외교부 한미 방위비분담 협상부대표도 지난 7일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협상과정에서) 미측이 전반적인 (한반도) 방위를 위한 공약 사항이나 그런 설명 부분이 있고, 구체적으로 방위비 분담과 관련해서 요청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 부대표는 '역외미군 비용 일부와 유사시 투입될 전략자산의 평소 관리 비용이 포함된다는 것이냐'는 질의에 "그런 부분들은 미국이 한반도 방위를 위해서 크게 기여하고 노력하는 부분으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고 그런 부분들이 구체적인 요구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SMA 미국 측 수석대표인 제임스 드하트 국무부 방위비분담협상대표가 이달 중 한국에서 개최 예정인 3차 회의에 앞서 비공식으로 한국을 다녀간 것은 10차 SMA의 유효기간이 연말까지인 만큼 협상에 속도를 내기 위한 측면도 있지만 5배 증액에 대한 국내 여론을 파악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SMA는 정부 간 합의가 되더라도 우리 측에선 국회의 비준동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윤상현 외통위원장은 "방위비 5배 인상은 국민 정서상 받을 수 없고 국회 비준 동의를 해야 하는 입장에서 어렵다"며 "한국 정부가 기여할 수 있는 틀에서 SMA 틀이 아닌 방법에 대해서 우리와 미국이 제시해서 창의적 해법 모색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교안보 전문가는 "이번 방위비 분담은 2년 딜(deal) 정도가 좋다. 이년짜리 하고, 내년에 일본과 독일이 어떻게 (협상을) 하는지 지켜보고 (다시) 하는 게 좋을 것이다"고 말했다.

◇방위비 분담금, 총액은 증가하고 美 요구사항은 늘어

주한미군의 주둔비용은 1966년 체결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서 한국은 시설과 군사부지 등을 제공하고 나머지 발생 비용은 미국이 부담하도록 돼 있다. 그렇지만 미국은 1980년대 후반 무역적자 누적되자 동맹국의 재정지원 확대를 요청하기 시작했다.

이에 1988년 20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의(SCM)를 거쳐 방위비 분담이 결정됐다. 당초, 한국은 한미연합방위태세 강화와 관련해 분담하기로 했지만 미국은 무역적자 여파로 자국 방위비가 삭감되자 주한미군 한국인 고용원 인건비와 군사건설비 지원도 요구했다.

이는 SOFA 협정에 위배되기 때문에 1991년 특별협정이 체결되게 됐다. SMA는 시설과 구역을 제외한 주한미군 유지 경비를 모두 미국이 부담하도록 규정한 SOFA 제5조 1항에 대한 특별조치인 셈이다.

한미는 1991년 이후 1~5년 단위로 SMA를 체결해왔으며, 분담금 규모는 매년 점진적으로 올랐다. 1999년의 경우, IMF 위기로 인해 분담금이 당초 3억9900만달러에서 3억1400만달러로 축소 조정된 사례도 있다.

한국은 2005년부터 분담액을 전액 원화로 지급하기 시작했으며, 6차 SMA(2005~2006년)의 경우엔 분담액이 6804억달러로 동결되기도 했다. 7차 SMA에선 2007년 분담액을 전년 대비 6.6% 인상하고 이듬해엔 물가상승률 2.2%를 합산해 결정했다.

8차 SMA(2009~2013년)의 경우, 첫해엔 7600억원으로 결정하고 이후엔 전년도 총액에 전전년도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해 결정했다.

9차(2014~2018년) SMA도 동일했다. 첫해만 9200억원으로 결정하고 물가를 반영해 인상했다. 다만, 상한선은 4%를 넘지 않도록 합의했다.


10차가 적용되고 있는 2019년의 경우, 유효기간이 1년으로 분담금은 올해 국방예산 증가율을 반영해 전년대비 8.2% 오른 1조389억원로 책정했다.

한미는 기존 유효기간 5년 대신 미국 측 요구대로 유효기간을 1년으로 결정했지만 금액은 당초 요구보다 낮춰 협상을 마무리했다.

외교부는 미 측의 작전지원 요구에 대해선 SMA 취지와 목적이 주한미군의 주둔경비 분담에 있다는 점을 들어 이를 철회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