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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 ‘데이터 주권’ 강화 움직임..美와 새로운 통상분쟁 ‘불씨’되나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13 17:30

수정 2019.11.13 17:30

프랑스 이어 독일도 ‘보호’ 촉구
"구글·아마존·페북 등 IT공룡들
유럽 데이터 좌지우지 막아야"
美 장악 디지털 경제에 도전장
독점 지위 남용 조사 시작될듯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고용주협회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12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독일고용주협회 콘퍼런스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AP뉴시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페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이 12일(현지시간) 잇달아 유럽연합(EU)이 데이터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최근 EU가 미국과 중국에 데이터 주권을 빼앗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 적이 있어 독일과 프랑스 주도로 EU의 데이터주권 강화 노력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전망이다. 그러나 이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등 EU 데이터를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는 미국 정보기술(IT) 공룡들에 대한 불공정 경쟁으로 비칠 수 있어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와 새로운 무역갈등을 빚는 불씨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독일 메르켈 총리와 알트마이어 경제장관이 이날 독일 재계 콘퍼런스에 참석해 EU의 데이터 주권 보호 필요성을 강조했다면서 이같이 보도했다.
메르켈은 실리콘밸리 미 IT 공룡들이 유럽 데이터를 움켜쥐고 좌지우지 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면서 미국이 장악하고 있는 디지털 경제에 도전장을 던질 것이라는 점을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EU가 자체 데이터 관리 플랫폼을 개발하고,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 등 미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들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디지털 주권'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르켈은 "너무도 많은 기업들이 그저 미 기업들에 자신들이 갖고 있는 모든 데이터를 몽땅 외주로 주고 있다"면서 이는 "그 자체로서도 옳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공지능(AI)를 활용해 이 데이터로부터 파생되는 부가가치 제품으로 인해 유럽은 분명 좋지 않다고 내가 확신하는 (미 기업들에 대한 데이터) 종속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메르켈의 발언은 디지털 경제가 미국과 EU 간 새로운 통상 분쟁의 전장이 될 것임으로 예고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EU 내부에서 미 IT 공룡들이 데이터 저장, 가공, 분석 등 데이터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EU가 약화될 것이란 우려가 고조되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EU는 구글 등 미 IT 공룡들의 데이터 산업부문이 경쟁을 침해하고 있는지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이달 출범한 새 EU 집행위원회에서 이전에 맡고 있던 경쟁분야 뿐만 아니라 EU의 디지털 정책까지 관장하게 된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마르그레테 베스타거 경쟁담당 집행위원은 구글 등이 데이터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남용하는지 여부에 대해 조사가 시작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메르켈 총리가 포문을 열기는 했지만 EU 디지털 주권 선봉에 선 것은 알트마이어 경제장관이다. 그는 이날 콘퍼런스에서 구체적으로 EU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제시했다. 알트마이어는 폭스바겐 같은 기업부터 독일 내무부, 독일 사회보장 시스템 등이 MS와 아마존 서버에 데이터를 보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면서 "이는 우리가 주권 일부를 잃고 있는 것과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2주전 독일 정부가 공개한 유럽 클라우드 이니셔티브인 '가이아-X'가 아마존 등에 대항하는 EU의 디지털 주권 첨병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알트마이어는 도이체텔레콤, SAP, 보시 등 40개 업체가 가이아-X에 참여키로 하고 서명했다면서 새 시스템이 연말까지는 준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가이아-X를 통해 "기업, 정부 부처, 각국 정부가 투명하고 확실하게 인식 가능한 기준에 따라 유럽에 데이터를 복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메르켈 총리는 가이아-X에 대해 "경쟁력 있고, 안전하며, 신뢰할만한 유럽 데이터 인프라"라고 평가한 바 있다.


그러나 재계 일부에서는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내고 있다. 디지털 로비그룹 비트콤의 수잔네 데멜은 "디지털 주권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틀림없이 옳을 얘기"라면서도 "그러나 수많은 서로 다른 주체들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하나로 묶을지 같은 심각한 문제들이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난주 출간된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유럽 기업들이 5세대 이동통신(5G) 등 분야에서 미, 중 기업들과 무분별하게 협력을 추구하고 있다면서 이렇게 되면 10년 뒤 유럽의 사이버, 데이터 안전은 그 누구도 보장할 수 없게 된다고 우려한 바 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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