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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정민의 이슈+]재계 휩쓸었던 면세점 열풍, 씁쓸한 '복마전'이었나

뉴스1

입력 2019.11.18 07:24

수정 2019.11.18 09:32

한화의 서울 시내 면세점인 '갤러리아면세점63'이 입점해 있던 여의도 63빌딩. 한화는 올 4월 면세점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사진제공=한화갤러리아)© News1
한화의 서울 시내 면세점인 '갤러리아면세점63'이 입점해 있던 여의도 63빌딩. 한화는 올 4월 면세점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사진제공=한화갤러리아)© News1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입점해 있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롯데면세점 제공) 2017.1.5/뉴스1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입점해 있는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전경.(롯데면세점 제공) 2017.1.5/뉴스1


지난 2015년 7월 당시 이돈현 관세청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심사위원장이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면세점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관세청은 서울 신규 대형면세점 운영사로 HDC신라와 한화갤러리아를, 서울 신규 중소면세점에는 SM면세점이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후에 감사원 감사결과 점수조작으로 한화갤러리아와 롯데면세점의 순위가 뒤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2015.7.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지난 2015년 7월 당시 이돈현 관세청 시내면세점 신규 특허심사위원장이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 수출입통관청사에서 면세점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당시 관세청은 서울 신규 대형면세점 운영사로 HDC신라와 한화갤러리아를, 서울 신규 중소면세점에는 SM면세점이 선정했다고 밝혔지만 후에 감사원 감사결과 점수조작으로 한화갤러리아와 롯데면세점의 순위가 뒤바뀐 것으로 드러났다.
2015.7.10/뉴스1 © News1 신웅수 기자


2016년 5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8∼12층에 영업면적 1만3천884㎡ 규모로 오픈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내부. 2016.5.18/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2016년 5월 서울 중구 신세계백화점 본점 신관8∼12층에 영업면적 1만3천884㎡ 규모로 오픈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 내부. 2016.5.18/뉴스1 © News1 이동원 기자

(서울=뉴스1) 류정민 기자 = "왜 면세점 사업은 한다고 해서, 이 고생을 하는지."
한 대기업면세점 관계자는 지난해 말 기자와의 미팅에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며 한때 재계를 휩쓸었던 면세점 열풍이 빠르게 사그라들고 있다.

18일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11일부터 14일까지 서울 3개, 인천·광주 각 1개 등 총 5개 시내면세점 신규 사업자 입찰을 한 결과 현대백화점만 유일하게 서울 1곳에 입찰했다.

불과 4년 전인 2015년 4개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를 놓고 롯데, 신라, 신세계, 현대백화점, 이랜드 등 유통 대기업은 물론 정유·화학, 중공업, 건설 등이 주력인 SK, 두산, 한화, 현대산업개발 등 9개 기업이 달려들며 과열 양상을 보였던 것에 비하면 참담할 정도의 흥행실패다.

더구나 2015년 새롭게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에 진입했던 한화와 두산은 3년 남짓 적자에 허덕이다 각각 올 4월과 10월 각각 사업 철수를 발표했다. 두산이 2016년 5월 동대문 두산타워에 문을 연 두타면세점은 연 매출 7000억원 수준으로 성장했지만, 수익성 개선에는 실패, 2018년까지 누적 기준 60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고, 올해도 적자가 예상된다. 한화가 여의도 63빌딩에 문을 연 갤러리아면세점63은 3년간 1000억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냈다.

이처럼 상황이 급변한 데 대해 재계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THAAD)의 한반도 배치에 반대한 중국의 경제보복과 신규 특허 추가로 경쟁이 과열된 결과라고 보고 있다.

중국은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해 2017년 3월부터 경제보복을 본격화했고, 이는 한국산 제품 불매운동과 관광객 급감으로 이어졌다. 집객력을 좌우하는 명품 브랜드 협상력과 사업 노하우가 떨어지는 신규 사업자에게는 치명타다.

특히 면세점 사업자 선정과정에서 점수 조작, 부정한 청탁 등이 있었다는 사실이 감사원 감사 결과와 검찰수사 등을 통해 속속 밝혀지면서 결국 시내 면세점 사업 열풍은 특허권을 손에 쥔 정치 권력과 탐욕에 눈먼 재벌기업 간의 '복마전'이었느냐는 씁쓸함을 남긴 채 사라지고 있다.

2017년 감사원이 서울 시내 면세점 특허 심사에 대한 감사를 실시한 결과, 관세청의 2015년 7월 신규 특허와 11월 특허 심사에서 점수 조작이 있었고 이로 인해 업체 간 희비가 엇갈렸다. 7월의 경우 점수 조작으로 롯데 대신 한화가 업계의 예상을 깨고 서울 시내 면세점 시장에 진입했고, 11월은 세계 2위 면세사업자인 롯데의 차세대 주력 매장 중 하나인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이 아예 매장조차 없는 두산에 밀려 떨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과적으로 점수 조작의 수혜를 입은 업체 2곳 모두 이번에 사업에서 철수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공교롭게도 두 차례 점수조작의 희생양은 모두 롯데면세점이었는데, 이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면세점 특허를 대가로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2018년 2월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비록 신 회장이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 받고 8개월 만에 풀려났지만 롯데그룹은 창립 이후 총수 부재 상황에 놓이는 등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면세점 사업은 브랜드 협상력에서 월등한 유통 대기업 간의 경쟁으로 정리되는 모양새다.

실제 롯데, 신라 등 기존 사업자는 중국의 사드 경제 보복 가운데에서도 매년 매출을 키워왔다.

롯데면세점은 지난해 국내 전체 매출이 7조5000억원을 넘겨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2017년 매출 6조원을 달성한 후 1년 만에 25%가 늘었다. 호텔신라는 2018년 신라면세점의 호조에 힘입어 매출 4조7000억원, 영업이익 2000억원을 달성했다.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34%, 영업이익은 186% 증가한 것으로 사상 최대 실적이다. 오랜 업력으로 브랜드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고, '다이공'으로 불리는 중국 보따리상 유치에도 유리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면세점 업계에서는 후발주자인 신세계의 면세점 사업을 맡은 신세계디에프는 2018년 직전 연도 대비 118% 늘어난 2조84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영업이익은 378억원이었다.

작년 10월에 서울 시내 면세점을 오픈한 현대백화점은 작년 2개월간 매출 700억원, 영업손실 256억원에 그쳤지만 오랜 기간 백화점 사업을 경험해 온 업력을 바탕으로 면세점에서 롯데, 신라, 신세계에 이은 '빅4'로 도약한다는 계획이다.

재계에서는 면세점 업계를 어렵게 한 중국의 사드 경제보복이나, 한국의 수출 주력 업종인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정밀 타격한 일본의 대(對)한국 소재 수출 규제가 정치·외교적 갈등에서 촉발됐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면세품 판매는 외국인 관광객 매출이 80%가 넘는다는 점에서 재계는 면세사업을 반도체, 디스플레이와 비슷한 수출 업종으로도 보고 있다. 이는 정치·외교적 마찰에 대해 상대방 국가가 경제적 보복으로 응수할 경우 자칫 볼모로 잡혀 업황이 급속히 악화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재계 관계자는 "중국·일본 등 이웃 국가와의 정치·외교적 갈등이 경제분야로 불똥이 튀는 점은 산업계 입장에서는 여러모로 아쉽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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