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민간 경제교류, 한·일 정부에 달렸다

김은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1.28 17:45

수정 2019.11.28 17:45

[기자수첩] 민간 경제교류, 한·일 정부에 달렸다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되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가 그 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중략)… 아내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그럼 순사(殉死)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놀렸습니다."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가 1914년 아사히 신문에 연재 후 '마음'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한 책 내용 중 일부다. 이 책은 일본인들의 정서가 전체주의에서 개인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쓸쓸하면서도 담담하게 그리며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전 세계인에게 사랑받고 있다.


최근 일본의 그릇된 역사의식에 따른 대(對)한국 경제보복, 지소미아 종료 등 한·일 간 이슈를 보면서 100년 전 종료된 것만 같았던 일본의 전체주의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두달 전 서울에서 모인 한·일 경제계인들은 민간 비즈니스 회복을 한목소리로 원했다. 두 나라 정부가 역사·정치·경제에서 뚜렷한 견해차를 보이고 있지만 경제인 간 교류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현장에 있었던 기자는 양측이 이렇게 열렬히 원하니 봄이 곧 오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산이었다. 최근 관련 고위직 임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이후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그 원인으로 지금도 남아있는 일본의 전체주의를 꼽았다. 일본은 정부가 결정한 것은 개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경향이 여전히 팽배하다는 설명이다. 한국인의 성향과는 정반대다. 현재 일본은 한·일 경제 문제에서 '순사' 상태다. 한국은 정치·외교와 경제를 투트랙으로 보고 있지만 일본은 오직 원트랙이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친해질 수 없는 가까우면서도 먼 사이, 개와 고양이 지간이 한·일 관계와 너무나 닮았다. 한국 정·재계 인사들은 민간 비즈니스 확대의 당위성만 주장할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가 큰 틀에서 원활히 합의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할 때다.
그것이 선행되면 민간 비즈니스는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 섣부른 민간 차원의 교류는 그만 외쳤으면 한다.
상대는 그럴 수 있는 체제가 아니다.

happyny777@fnnews.com 김은진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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