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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O 기능마비 초읽기?…美, 항소기구 무력화 실행 나설 듯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09 14:26

수정 2019.12.09 14:26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headquarters are pictured in Geneva, Switzerland, July 26, 2018. REUTERS/Denis Balibouse/File Photo /REUTERS/뉴스1
The World Trade Organization (WTO) headquarters are pictured in Geneva, Switzerland, July 26, 2018. REUTERS/Denis Balibouse/File Photo /REUTERS/뉴스1
[파이낸셜뉴스] 세계무역기구(WTO) 기능이 마비 위기에 몰렸다. 항소기구(AB)가 월권을 한다며 불만을 나타내고 있는 미국이 9~11일(현지시간) WTO 일반총회에서 임기가 끝나는 항소기구 위원 2명을 대신하는 위원 임명에 거부권을 행사하고, 예산배정도 차단해 기능을 정지시킬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WTO 분쟁패널에서 합의하지 않고 항소기구에 항소하는 사안은 해결이 불가능해져 WTO 중재 기능이 무력화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 미국이 이번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WTO 일반총회에서 분쟁조정기구 무력화 위협을 실행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면서 규정에 기초한 국제 무역 질서가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됐다고 보도했다.

■美, 항소기구 무력화 실행 예고
미국은 가능한 방법들을 동원해 WTO 항소기구 무력화에 나설 것임을 예고한 상태다. 우선 새로운 위원 임명을 막는 것이다.
이번에 임기가 끝나는 항소 위원 2명을 대신할 새로운 위원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보인다. 9~11일 제네바 WTO 사무국에서 열리는 164개 회원국 대표들이 참석하는 일반총회에서 미국은 그동안의 강경입장을 실행에 옮길 것이 확실시 된다.

미 무역정책을 총괄하는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합류하기 전 미 철강업계를 대변하는 변호사로 오랜 기간 WTO와 갈등을 빚어왔다. 그는 항소기구가 월권하고 있고, WTO 규정을 해석하기보다 새로운 규정들을 만들어내고 있다고 거듭 주장해왔다. 이는 그러나 라이트하이저 개인의 의견은 아니다.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 버락 오바마 전 행정부에 비해 초 강경으로 돌아선 것은 맞지만 WTO와 계속해서 갈등을 빚어왔다. 민주당, 공화당 정권 할 것 없이 WTO 항소기구가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는 불만을 나타내왔다. 무엇보다 미국은 항소기구가 미국의 반덤핑 판정에 대해 WTO 규정 위반으로 결론 내리는 사례가 잦아지면서 WTO 무력화까지 꾀하게 됐다.

미국의 강경입장은 6일 드니스 셰어 WTO 주재 미 대사의 발언으로도 다시 확인되고 있다. 셰어 대사는 다른 회원국들이 WTO 개선에 미온적이라고 공격했다. 그는 미국은 오랫동안 항소기구의 기능에 대해 우려해왔지만 다른 회원국들로부터 같은 수준의 개선 노력은 아직 없다면서 미국이 마침내 행동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미국은 항소위원 임명 거부권 행사 외에도 항소기구 예산 배분을 차단해 기능을 마비시키는 방안 역시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주장에 따르면 항소기구는 항소법원 같은 게 아니라 규정들을 다듬는 기술적 역할을 하는 기구로 원래의 창설 목표로 돌아가야 한다.

EU, 미 도발 무력화 장치 서둘러
미국과 함께 WTO 출범의 산파 역할을 한 유럽연합(EU)은 얼마나 큰 위력을 낼 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건 미국의 도발을 무력화할 장치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FT에 따르면 EU는 WTO 기능이 마비되더라도 항소기구를 대신하는 임시 기구를 구성하는 방안 마련에 나섰다. 또 항소기구 기능이 정지되더라도 규정을 위반한 국가들에 무역제재를 가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 마련에 나섰다. 일반총회가 끝나는 11일께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 규정은 미국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미국을 겨냥했다. 이 규정이 적용되면 EU는 기능이 정지될 항소기구 상소를 통해 WTO 기능마비를 노리는 국가들에 보복관세를 물릴 수 있게 된다. EU는 새 규정과 관련해 이미 노르웨이와 캐나다를 설득해 지지를 이끌어냈고. 중국·러시아·브라질 등 경제규모가 큰 나라들이 동참하기를 희망하고 있다.

미국이 항소기구 기능정지 실력행사에 나서고 이를 대신할 임시기구마저 만들어지지 않으면 1차 분쟁패널에서 해결되지 못하는 무역분쟁은 교착상태에 빠진다.

한편 항소기구는 1995년 WTO 출범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위원 7명 가운데 3명이 돌아가며 판정위원으로 참가하게 되고 WTO 규정 위반으로 결론이 나면 해당국 정부를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미국과 EU간 보잉, 에어버스 항공기 보조금 문제부터 중국의 기업 보조금 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사안들이 항소기구를 거쳤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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