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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백두산 폭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16 17:57

수정 2019.12.16 17:57

"날이 조금 저문 후에 연무(煙霧)의 기운이 갑자기 서북쪽에서 몰려오면서 천지가 어두워지더니, 비린내가 옷에 배어 스며드는 기운이 마치 화로 속에 있는 듯해 사람들이 모두 옷을 벗었으나 흐르는 땀은 끈적이고, 나는 재(灰)가 마치 눈처럼 흩어져내려 한 치 남짓이나 쌓였다. 다른 여러 고을에서도 또한 모두 그러했는데, 간혹 특별히 심한 곳도 있었다."

조선왕조실록 숙종 28년(1702년) 5월 20일자 기록이다. 이는 함경도 경성 지역에서 일어난 일을 기록한 것인데, 과학자들은 이때 백두산에서 대규모 폭발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밖에도 태종 3년(1403년), 효종 5년(1654년), 현종 9년(1668년)에 백두산 폭발과 관련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또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 등이 쓴 '고려사절요'(1452년)에 따르면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938~939년에도 백두산에서 큰 폭발이 있었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바 없지만 발해의 멸망이 백두산 폭발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일본 지질학자 마치다 히로시 박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지난 1992년 일본 북부 홋카이도 등지에서 발견된 화산재 지층을 근거로 10세기, 즉 900년대에 대규모 백두산 폭발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화산재가 일본까지 날아올 정도로 큰 폭발로 인해 당시 이 지역 맹주였던 발해가 멸망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학계는 그의 가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발해 멸망을 다룬 그 어떤 역사책에도 백두산 폭발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도 용암이 들끓고 있는 백두산은 언제든 다시 폭발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 섣불리 폭발 시기를 점칠 순 없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는 것이 과학자들의 생각이다.
오는 19일 개봉하는 '백두산'은 이런 가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재난영화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백두산 폭발이 예측되자 남과 북의 요원들이 이를 막기 위한 비밀작전에 투입된다는 것이 기둥 줄거리다.
가설이 가설로 그치기를 간절히 바란다.

jsm64@fnnews.com 정순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