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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가 인정한 과학기기, '금영 측우기' 국보 지정 예고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12.30 10:56

수정 2019.12.30 10:56

공주감영 측우기(현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 /사진=fnDB
공주감영 측우기(현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세계가 인정한 과학기기인 ‘금영 측우기’가 국보 지정된다. ‘금영 측우기’는 근대시기 이전의 강수량 측정 기구로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보물 제561호다.

문화재청은 30일 ’금영 측우기‘를 비롯해 조선 시대 측우(測雨) 제도를 계통적으로 증명해주는 2점의 측우대인 보물 제842호 ‘대구 선화당 측우대’와 보물 제844호 ‘창덕궁 측우대’를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보물 지정 당시 명칭은 위 순서대로 ‘금영 측우기’, ‘대구 선화당 측우대’, ‘창덕궁 측우대’였으나, 원소재의 정확한 표기를 위해 각각 ‘공주감영 측우기’, ‘대구감영 측우대’, ‘창덕궁 이문원 측우대’로 명칭을 변경 예고했다.

1442년(세종 24년) 조선에서 농업에 활용하고자 세계 최초로 측우기와 측우대를 제작한 이후 그 전통이 면면이 이어져왔음을 보여주는 유물들로, 측우기의 경우 1911년 세계 기상학계에서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하고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이미 높은 평가를 받기도 했다.

보물 제561호 ‘금영 측우기(錦營 測雨器)’는 조선 시대 충남지역 감독관청이었던 공주감영[錦營]에 설치되었던 것으로, 1915년 경 일본인 기상학자 와다 유지(和田雄治, 1859~1918)가 국외로 반출한 뒤 1971년 일본에서 환수되어 서울 기상청이 보관해 오고 있다.
조선 시대에는 중앙정부에서 측우기를 제작해 전국의 감영에 보냈기 때문에 여러 점이 만들어졌으리라 예상되지만, 지금은 ‘금영 측우기’만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금영 측우기’의 제작시기와 크기 등에 대해서는 중단의 바깥 면에 새겨진 명문(銘文)을 통해 확인된다.
명문에 의하면 이 측우기는 1837년(헌종 3년)에 만들었으며 높이는 1자(尺) 5치(寸), 지름 7치, 무게 11근으로 오늘날 치수로 환산하면 높이 31.9cm, 지름 14.9cm, 무게는 6.2kg에 해당한다. 이는 세종 대에 처음 만들어진 측우기 제도를 그대로 따른 것이다.


문화재청은 “이번에 국보 지정 예고된 ‘금영 측우기’를 비롯해 ‘대구 선화당 측우대’와 ‘창덕궁 측우대’는 제작시기와 연원이 명확할 뿐 아니라 농업을 위한 과학적 발명과 그 구체적인 실행을 증명해주는 유물로서 인류문화사의 관점에서도 큰 가치가 있다”고 밝혔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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