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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기획]규제법안 하루 3개꼴 쏟아져… 눈치보다 혁신은 누더기 전락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2 17:32

수정 2020.01.02 17:32

무책임한 정치권·소극적인 정부… 멈춰버린 경제입법
OTT 규제 방송법·타다금지법 등
11월 22일까지 1151개 법안 발의
기업활동 옥죄며 경쟁력 위축시켜
이해단체 반발에 중단되는 법안도
정부 ‘공정경제’ 정책 기조 영향
‘실적 쌓기’ 경쟁적 규제법안 발의
법안 가결률 사상 최저치 오명
[신년기획]규제법안 하루 3개꼴 쏟아져… 눈치보다 혁신은 누더기 전락
"제대로 된 규제도, 혁신도 없었다."

20대 국회는 '일'보다 '싸움'만 가득했던 역대 최악의 국회로 꼽힌다. 규제를 풀어 기업 경쟁력을 살리는 대신 규제강화 법안을 쏟아내 기업 목을 옥죄었고, 미래먹거리 발굴을 표방하며 야심차게 발의된 법안들은 이해관계자들의 거센 반발을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보기'로 누더기 법안으로 전락했다.

이 같은 한계를 보여주듯 의원들이 앞다퉈 쏟아낸 각종 법안들의 가결률은 역대 국회에서 사상 최저치라는 오명을 썼다. 협치와 양보가 실종된 여야의 끊임없는 정쟁 속에 경제활성화 법안이 볼모로 잡혔다는 비판이 나온다.



■규제강화 법안 쏟아내는 국회

2일 대통령 직속 규제개혁위원회 규제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일부터 11월 22일까지 정부가 분류한 의원 발의 규제 신설·강화 법안은 총 1151개다. 한 달에 104개꼴로, 하루 평균 3개 이상씩 각종 규제법안이 발의된 것이다. 이 법안들에 포함된 규제조항만 2296개에 달한다.

정부 소관부처별로는 국토교통부(239건), 보건복지부(136건), 환경부(77건), 산업통상자원부(72건), 금융위원회(63건), 기획재정부(60건), 고용노동부(55건), 농림축산식품부(53건), 공정거래위원회(33건) 등의 순이었다.

대표적인 규제강화 법안 중 하나가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이 대표발의한 방송법 개정안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를 온라인동영상제공사업자로 별도 정의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OTT는 디지털기기만 있으면 언제든 동영상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서비스로,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국내 OTT 시장 육성책을 모색하기보다 벌써부터 유료방송과 동일한 규제 잣대를 적용하려는 법안에 대해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기업들의 소재·부품·장비 개발을 지원할 수 있도록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 관리법(화관법) 등의 규제를 일부 완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정의당, 시민단체 등의 반발에 부딪혀 논의가 사실상 중단됐다.

■'눈치보기'에 누더기 된 혁신법안

혁신을 표방하며 발의된 법안들은 이해관계자의 반발에 가로막혀 원안의 취지는 상실된 채 누더기로 전락하기도 했다.

차량공유업체인 타다는 본회의 통과를 앞두고 있는 이른바 '타다금지법'으로 불리는 여객운수사업법 개정안 영향으로 사업을 접을 위기에 놓였다.

타다가 운행차량 1만대 확대 등의 증차계획을 발표하자 국토부는 즉각 "사회적 대타협을 위반한 부적절한 조치"라고 반발했다. 민주당 박홍근 의원이 발의한 타다금지법은 법안 마련 과정에서 국토부가 주도적 역할을 했다. 택시업체 등 이해단체들을 설득 못한 정부와 내년 총선에서 택시업체 표를 의식한 국회의 합작인 셈이다. 이를 두고 타다가 일종의 '괘씸죄'에 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새 여객운수사업법이 발효되면 타다를 포함한 모빌리티 업체들은 플랫폼운송사업자로 등록, 택시면허 시세에 준하는 기여금을 내고 증차 등에 대해 정부 통제를 받아야 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은 20대 국회 개원 후 지난 6월까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계류된 법안 중 절반 이상이 규제강화 법안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유한익 한경연 상무는 "문재인정부의 대표적인 규제혁신 법안은 규제샌드박스 정도를 제외하면 규제강화 법안만 잔뜩 발의됐고, 눈에 띄는 규제개혁 법안은 거의 없다"면서 "규제샌드박스마저도 임시적 성격을 띠고 있어 관련 법 추가 개정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규제법안 상당수가 공정경제·갑을관계 개선 등에 집중되는 등 정부 정책이 영향이 크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공정경제에 초점을 맞춰 시장경쟁 과정에 개입하려는 정부의 정책기조가 여당 의원들에게 반영되며 규제가 강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입법실적을 쌓기 위해 규제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실제 지난해 12월 20일 기준 20대 국회 법안처리율은 30.3%로 17대(50.31%), 18대(44.4%), 19대(41.74%)를 모두 크게 하회했다.

mkchang@fnnews.com 장민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