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허락받고 찍어라" 공무원이 공공도서관 건물 촬영을 막아섰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04 09:06

수정 2020.01.04 09:05

지난해 12월 30일 강서도서관에서 일어난 일
도서관 파견 교육청 공무원 삿대질 하며 촬영 제지
현행법상 시민의 건물 외관 촬영 "막아선 안 돼"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 강서도서관 외관을 촬영한 문제의 사진. 사진=김성호 기자
지난해 12월 30일 서울시교육청 강서도서관 외관을 촬영한 문제의 사진. 사진=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평일 오전 책을 빌리기 위해 도서관을 찾은 김모씨(35)는 책을 빌려 돌아가던 중 도서관 외벽을 휴대폰으로 촬영했다. 개인 SNS에 게시할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0m 가량 떨어진 곳에서 한 남자가 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사진을 왜 찍느냐고 소리쳤다.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촬영이란 게 이유였다. 김씨가 “사진 촬영을 막는 규정이 있느냐”고 묻자 그는 “사진을 찍어도 된다는 법부터 가져오라”며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했다. 해당 공무원은 도서관내 행정업무를 총괄하는 박모 행정지원과장이었다.


■공무원이 건물 촬영을 막는다면

위 사례는 지난해 12월 30일 기자가 자주 가던 공공도서관에서 직접 겪은 일이다. 해당 도서관은 서울시교육청 강서도서관(관장 이명하)으로, 지난해 우수도서관으로 선정돼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박 과장은 몇 분 후 기자가 도서관내 사무실을 찾아간 뒤에도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그는 건물 관리차원에서 촬영을 제지한 것이라며, 자신의 행동이 도서관 전반을 관리하는 공무원의 당연한 권한이라고 주장했다. 기자가 신분을 밝히고 촬영을 제지한 데 대한 근거를 요구하자 "건물을 훼손하는 사례가 있어 촬영을 막은 것"이라며 "미관이 아름답거나 해서 찍고 싶다고 먼저 허락을 구했다면 허가했을 것"이라는 허무맹랑한 답이 돌아왔다.

여기서 기자는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불친절을 넘어 무례하기까지 한 태도는 그렇다 치더라도, 이용자가 공공건물 외관을 촬영하는 걸 제지할 권한이 있는지에 대해서다. 실제 기자는 지난 수년 간 취재를 하며 국회의사당·법원·검찰청·경찰청·경찰서·시청·구청 등 공공건물 촬영을 수차례 진행했다. 공공건물 뿐 아니라 필요한 경우 일반 기업체 건물도 촬영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그런데 만약 건물을 관리하는 사람이 이를 제지한다면 그만둬야 했던 걸까?

■법률로 금하지 않았다면 '촬영 가능'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공장소 혹은 그에 준하는 길거리에서 촬영한 건물사진은, 원칙적으로 그것이 공공건물이든 사적소유든 현행법으로 제지할 수 없다. 특히 공공건물은 법에 따라 촬영을 금지하는 규정이 있을 경우에만 촬영을 제한할 수 있다. 군부대가 대표적이다.

백경태 변호사(법무법인 신원)는 “건물 외관의 사진을 찍는 행위가 반달리즘에 이를 정도라거나, 군사기밀을 유출할 우려가 있다거나, 누군가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금지하는 걸 납득하기 어렵다”며 “관리인이나 공공기관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건물외관 촬영을 막을 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도서관 운영주체인 서울시교육청에 문의한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시교육청 한 관계자는 “도서관 외관을 촬영하는 걸 막는 규정은 없다”며 “서울시교육청이 운영하는 모든 도서관은 촬영이 언제나 가능하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 강서도서관 이용서비스 헌장 및 관련 규정에도 이용자의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초상권침해 및 업무방해 소지가 없는 도서관 전 구역의 촬영은 허용된다.

그렇다면 박 과장이 이 같은 행동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서울시교육청에 도서관 근무자를 대상으로 한 이용자 응대와 관련한 교육이나 매뉴얼이 있느냐고 문의하자, 서울시교육청 또 다른 관계자는 “교육청 차원에선 (별도의 교육이) 없다”며 “기관(도서관)에서 알아서 하는 걸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기관에 별도의 조치를 하고 당사자에겐 단호하고 엄중하게 주의를 주겠다”며 “정중하게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건축저작물 인정되는 특수한 경우 있어

한편 건축물 외관의 촬영 및 유포를 금지하는 흥미로운 사례도 존재한다. 건축물의 생김이 개성이 있어 저작권이 성립할 경우다. 백 변호사는 “건축물이 에펠탑·자유의 여신상·남산타워처럼 특색이 있다면 건축저작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며 “에펠탑의 경우 저작권 보호기간이 만료됐지만 1985년에 에펠탑 운영사인 SETE에서 설치한 야경조명이 저작권 보호를 받게 되면서 에펠탑 야경 사진이 저작권 보호 대상에 해당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야간에 에펠탑을 촬영한 뒤 SNS 등에 올려 유포하는 건 불법행위가 성립돼 처벌이 가능하다.

다만 일반적인 건축물이 에펠탑과 같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특히 건축물의 저작권 성립 여부는 최근 수년 간 공공건축물 뿐 아니라 일반 기업 사옥 등에 대해서도 논란이 되어 왔다. 실제 서울 시내 특정 건물의 경우, 외관을 촬영하는 시민을 관리인이 제지했다는 사례가 꾸준히 보고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백 변호사는 “우리 주변에서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대부분의 건물이 건축저작물로 인정받을 만큼 저작권법상 창작성이 있다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별 사안에 따라 그 판단이 달라질 것”이라면서도 “(건축저작물로 인정되는 경우) 촬영한 사진을 영리목적 등으로 이용하는 경우에는 저작권 침해를 구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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