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왜 의료사고 기사에는 병원 이름이 안 나올까? [김기자의 갈증해소]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6 16:30

수정 2020.02.02 00:03

가까운 변호사 5명에게 물었더니
공익성 동감에도 실명 공개 "하지마"
'의료사고' 병원들 익명 뒤 성업
[파이낸셜뉴스] “강남 A모 성형외과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환자 B모씨가 숨졌습니다. 사건 당시 의사 C모씨는 동시에 수술실 3곳을 오가며 수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00일 경찰은 해당 병원을 압수수색해 의무기록지 등 관련 증거를 확보하고 중대한 법 위반이 있는지 수사를 전개하고 있습니다”

왜 대부분의 의료사고 기사에선 병원 이름을 확인하기 어려울까. 기사를 읽으며 누구나 생각해봤을 의문이다. 기자가 충분한 취재를 한 것처럼 보이는 사안에서도 병원 이름이 공개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독자들은 댓글을 통해 병원 이름을 알고자 하지만 어디서도 명확한 답변을 구할 수 없다.

지난 수개월 간 의료사고에 관심을 가져온 기자는 의료사고가 자주 발생하는 몇몇 유명병원에 대한 첩보를 입수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해당 병원에 대한 정보를 관련 카페와 네이버 지식인 서비스 등을 통해 구하는 사람이 적지 않지만, 적절한 정보는 제공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유는 분명하다. 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을 인정하는 현행 형법이 일반인은 물론 언론인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특정 사건에 큰 관심을 갖고 취재해온 기자는 충분한 정보를 모아 분석한 결과 해당 병원의 이름을 공개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공개할 경우 닥쳐올 문제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익명으로 기사를 써왔다. 소송이 걸릴 경우 패소 확률이 크지 않다고 자신함에도 그렇다.

기자는 본격적인 보도에 앞서, 이 자체가 기사거리라고 판단해 주변 변호사들에게 연락해 물었다. 우선 가까운 변호사 5명을 골라, 이 가운데 3명 이상이 선택하는 방향으로 향후 기사를 작성하기로 했다.

지난 2018년 4월 법률가 330인이 동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 발표 모습. 출처=fnDB
지난 2018년 4월 법률가 330인이 동참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촉구하는 법률가 선언문' 발표 모습. 출처=fnDB

■변호사도 뜯어말리는 명예훼손 소송
가장 먼저 답을 보내온 변호사 A씨는 “절대 하지 말라”며 기자를 설득했다. A씨는 “만약 속한 언론사에서 소송지원을 완전히 해준다고 하면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안전하게 가는 게 좋다”며 "몇몇 언론사에선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소송이 걸리는 기자는 좋게 보지 않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종종 기자와 함께 술자리를 갖는 A씨는 “대형병원이라면 특정한 사건으로 매출이 급락한다거나 하지도 않는데다 공익성도 크고 체면도 생각하게 되니 지고 욕까지 먹을 사건은 안 하는 편”이라면서도 “애매한 병원들이 문제인데 큰 펌을 써서 물고 늘어지면 좋을 게 없다”고 기자를 진정시켰다.

유사한 사건을 종종 맡는다는 변호사 B씨 역시 충분히 숙고할 것을 권했다. B씨는 “결론도 결론이지만 소송을 대응한다는 거 자체가 당사자가 굉장히 귀찮아진다”며 “특히 성형외과 같은 병원은 돈이 많기 때문에 큰 데를 쓰는데, 걔네는 서면만 무조건 30장 이상씩 만든다.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짜증이 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B변호사는 “민사를 하면 최소한 7,8개월이 가니까 일단 진실이라고 확신해도 깊이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며 다시 한 번 “굉장히 짜증이 난다”고 덧붙였다.

해당 사건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들은 변호사 C씨는 앞선 변호사들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긍정적인 입장을 전했다. C변호사는 “내가 들은 내용만 종합하면 공익성이나 개연성이 충분한 것 같다”며 “사람이 죽은 사례, 인간의 생명을 위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공익성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전에 몸담았던 회사에서 명예훼손 사건을 주로 맡았다는 D변호사는 “소송이라는 게 생각처럼 쉽게 생각할 건 아니다”라면서도 “취재가 충실히 진행돼 위법성이 조각될 것이라고 확신한다면 못할 것도 없다”고 중립을 지켰다. 다만 D변호사는 “내가 기자이고 회사에서 소송을 책임져줄 거란 확신이 없다면 보도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D변호사와 함께 만난 E변호사는 “알겠지만 명예훼손 사건이라는 게 보도한 것이 진실이라는 걸 믿을 만한 이유가 있고 공익성도 있다면 위법성이 조각된다”며 “아직 사건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지 못했지만 충분한 취재가 바탕이 되면 무서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E변호사의 말을 들은 D변호사는 “그 모든 사실을 기자가 직접 증명해야 하는데 그게 힘들다는 것”이라며 “D변호사는 명예훼손 사건을 해본 적도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병원의 실명공개를 권하는 쪽보다 그렇지 않은 쪽이 우세했다. 블로거나 유튜버, 의료사고 피해자가 아닌 기자임에도 말이다.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한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출처=fnDB
UN 자유권규약위원회는 2015년 한국 정부에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출처=fnDB

■UN도 폐지 권고... 한국은 왜?
주목할 점은 이들이 패소가능성을 크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있다. 이들 가운데 다수는 기자의 상황과 지금껏 취재한 내용을 대략적으로 설명했을 때 승소가능성이 높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취재한 내용을 사실로 볼 합당한 이유가 있고, 공익성 역시 크기 때문이다.

D변호사는 “명예훼손 소송에서 언론인이 대부분 이기는 이유는 위법성이 조각되기 때문”이라며 “이 정도 취재했으면 별 문제가 안 돼 보이는데, 그래도 소송을 감당하겠다는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C변호사는 “의료행위 결과에 대한 정보는 진료를 받고자 하는 일반 대중에게 매우 중요하므로 공익성이 충분하다”며 “'의사의 의료행위'와 '의료윤리 준수 여부에 대한 평가'와 '관련 사실관계'에 대한 언론보도는 공익성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말했다.

다만 소송과정의 지난함과 혹시라도 패소했을 경우 부담하게 될 막대한 피해는 우려할 만한 부분이다.

B변호사는 “나는 충분히 준비를 했고 제대로 된 판단을 했다고 믿어도 소송이라는 게 상상한 거 이상으로 힘들 수 있다”며 “그래서 기자들이 몸을 사리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 변호사는 “어중간한 병원이 제일 겁이 없다”며 “너희 때문에 손님이 떨어져나갔다고 내가 내 돈을 써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하겠다고 나온다면 그쪽은 낼 수 있는 증거자료도 무한대고 난감하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혹여 취재과정에서 일부라도 사실관계 검증이 미비했다고 판단되면 패소가능성도 생긴다. 기자가 져야 할 부담이 상상을 초월하게 되는 것이다. B변호사는 “그 정도 규모 병원이 기사 때문에 손님이 빠졌다고 주장하면 소송 금액만 수 천 만원일 것”이라며 “나는 많이 취재했고 근거를 모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상대방은 그게 아니라고 할 거고, 법원에서 (기자의 입장을) 안 받아주게 되면 꼬이는 거다”라고 우려했다.

현행 형법 310조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는 행위가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적고 있다. 따라서 대다수 명예훼손 소송에서는 사실을 적시한 자가 그 사실을 진실하다고 믿은 이유와 그 사실을 믿기까지 충분한 노력을 다 했는지가 쟁점이 된다. 다만 법조계에선 소송을 수행하는 것 자체가 언론에게조차 문턱이 되는 상황에서 위법성 조각만으로 공익을 보호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일부에선 사실적시 명예훼손을 범죄로 다루지 않아야한다는 주장도 나오는 실정이다.

성형외과 수술 중 후유증으로 숨진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2018년 말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fnDB
성형외과 수술 중 후유증으로 숨진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2018년 말 국회 앞에서 수술실 CCTV 의무화를 촉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출처=fnDB

■의료사고 유족, "법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나"
한편 기자가 취재해온 사건은 성형외과가 밀집한 서울 신사역 인근 한 병원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져 숨진 故권대희씨 사건이다. 해당 사건은 유족인 어머니 이나금씨가 병원으로부터 수술실 CCTV와 의무기록지 등을 확보했음에도 3년이 넘도록 해결되지 않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강지성)는 지난해 11월 성형외과 원장 장모씨와 같은 병원 의사 2명 등 의료진 3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및 의료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경찰이 2년이나 수사한 사건을 무려 13개월 동안 재수사한 끝에 나온 조치다.

통상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사건을 송치한 경우 검찰이 기소하기까지 걸린 평균 기간은 20일 정도에 불과하다. 구체적으로는 2016년 17.4일, 2017년 17.7일, 2018년 20.3일이었으며, 지난해 1분기엔 19.1일이 걸렸다. 수사가 늘어지는 동안 어머니 이씨는 수백 차례나 CCTV 영상을 돌려보며 홀로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하려 애를 써왔다.

이 기간 동안 해당 병원은 홈페이지 등에 '무사고'라며 홍보활동을 하다 관할 보건소에 적발돼 검찰에 고발당했다. 이 병원은 앞서서도 ‘14년 무사고 자부심’ 등의 광고를 하다 적발돼 한 차례 벌금형을 받은 바 있다. 모두 고 권대희씨가 사망한 뒤 벌어진 일이다.

이 같은 논란에도 이 병원의 이름은 어떤 기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형편이다. 수술실 CCTV법(일명 권대희법)과 맞물려 관련된 보도가 수백 건에 이르지만 모든 기사에서 병원 이름은 익명 처리돼 있다. 해당 병원이 성업 중임을 고려할 때 다수 소비자의 안전한 병원을 선택할 권리가 침해받고 있다고 해석할 여지가 있다.

어머니 이씨는 파이낸셜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환자 사망사고를 낸 병원이 법의 보호를 받으며 '안전한 병원' '믿을 수 있는 병원' '수술실 CCTV를 공개하는 병원'이란 광고를 계속하는 걸 보면,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회의가 든다”며 “의료 소비자는 자기 생명을 맡길 의사를 선택할 때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으니 사고 낸 병원과 범죄를 저지른 의사는 실명을 공개해야 한다”고 성토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이씨를 대리해 민사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진행한 바 있는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기자들이) 명예훼손 문제로 (병원의) 실명기재를 안 하는 것으로 안다"며 "실제 명예훼손이 인정되지 않더라도 언론중재, 소송 등 원치 않는 절차에 휘말림을 우려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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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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