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단독] 수술 중 '33분' 혼자 있어도 의사가 감독? 검찰의 '황당 논리'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1.27 14:00

수정 2020.01.27 14:00

단독입수 '항고이유서' 들여다보니
검찰, 불기소 처분 이유 '당혹'
판례·기소례·전문감정과도 배치
[파이낸셜뉴스] 고 권대희씨 의료사고 수사를 진행해온 검찰이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를 불기소 처분한 이유가 드러났다. 수술실에 의사가 없는 가운데 간호조무사가 진행한 압박지혈 행위를 의사의 감독 하에 이뤄진 것으로 본 것이다. 대법원 판례와 수사과정에서 제출된 전문 기관들의 감정결과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결론으로 논란이 예상된다.

27일 파이낸셜뉴스가 단독 입수한 권씨 유족 측 항고이유서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부장 강지성)는 간호조무사 전모씨와 류모씨가 피해자 권씨의 얼굴부위를 눌러 지혈을 한 행위를 의사의 감독 아래 이뤄진 적법한 의료행위로 판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술실 CCTV 상에서 의사가 자리를 비운 시간이 30분이 넘고, 이 시간 동안 간호조무사가 단독으로 지혈을 했음에도 의사의 감독 하에 이뤄진 적법한 행위라고 본 것이다.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고 권대희씨를 간호조무사가 압박지혈하는 모습.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30분 이상을 홀로 지혈한 간호조무사들의 행위가 의사의 감독 아래 있었다며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div id='ad_body2' class='ad_center'></div> 사진은 동시에 있었던 다른 수술을 위해 의사가 자리를 비운 고 권씨 수술실 CCTV 영상 캡처.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고 권대희씨를 간호조무사가 압박지혈하는 모습. 해당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30분 이상을 홀로 지혈한 간호조무사들의 행위가 의사의 감독 아래 있었다며 의료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사진은 동시에 있었던 다른 수술을 위해 의사가 자리를 비운 고 권씨 수술실 CCTV 영상 캡처.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불기소 처분, 대법원 판례·과거 기소사례와 배치
경찰 광역수사대가 사건을 수사해 넘겼을 당시 장모 원장과 전모 간호조무사 등에 대해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와 그 교사죄를 적용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태도로 비춰진다. 검찰이 CCTV 영상과 여러 감정기관의 감정서 등을 제출받아 무려 13개월 이상 재수사를 진행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유족 측이 제출한 항고이유서에 따르면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는 ‘피의자들의 지시에 따라 간호조무사들이 피해자 권씨의 얼굴을 누르며 지혈을 한 행위를 두고 반드시 의사만이 하여야 하는 고도의 의료행위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의료법 상 무면허 의료행위를 불기소 처분한 것으로 파악됐다.

성 검사는 이 같은 판단에 앞서 ‘행위의 객관적인 특성상 위험이 따르거나 부작용 혹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는지, 당시의 환자 상태가 어떠한지, 간호사의 자질과 숙련도는 어느 정도인지 등의 사정을 참작하여야 한다’고 판단 기준도 적시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문제는 검찰 측의 이 같은 논리와 배치되는 대법원 판례가 적지 않다는 데 있다. 대법원은 의사가 피부관리사들에게 환자의 얼굴 각질을 제거하는 피부박피술을 시행하도록 한 사건, 속눈썹이식시술 중 간호조무사에게 이식된 모발의 방향을 수정하도록 지시한 사건 등에서 이들이 무면허 의료행위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끌어낸 바 있다.

해당 판례들은 비 의료인이 의사와 동일한 수준의 전문지식을 갖췄거나 의사가 곁에서 구체적으로 행위를 지시했다고 할지라도, 행위자가 의사면허를 갖고 있지 않은 이상 무면허 의료행위라고 판단했다.

법원 뿐 아니라 검찰 역시 의사가 아닌 의료행위자에게 의료법을 엄격히 적용해왔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인 조진석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검찰도 (권대희씨 사건보다) 훨씬 가벼운 의료행위에 관해 무면허 의료행위라 하여 기소한 사례가 매우 많다”며 “간호사의 동맥혈 채혈행위나 초음파 잔뇨 측정행위, 심지어 수술실에서 이미 적출된 인체적출물을 처리하는 것조차 기소하여 유죄로 인정됐다”고 설명했다.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중태에 빠져 49일 만에 숨진 고 권대희씨 생전 모습.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중태에 빠져 49일 만에 숨진 고 권대희씨 생전 모습.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35분여 홀로 지혈해도 '의사가 감독?'
더욱 놀라운 사실은 검찰이 사건 당시 의사들이 수술실 밖에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음에도, 간호조무사들이 이들의 감독 아래 있었다고 판단했다는 점에 있다. 인접한 수술실에서 거의 동시에 연달아 수술을 진행하는 의사가 이전에 지나온 수술실에서 벌어지는 간호조무사의 행위까지 감독하고 있다고 보는 건 강남 일대 성형외과에 만연한 공장식 수술에 면죄부를 준 것이나 다름없다. 기소권을 독점해온 수사기관이 이를 정상적인 의료행위로 본다면 피해자로선 문제를 다퉈볼 기회조차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같은 논리를 확장한다면 한 명의 숙련된 의사가 비숙련 의료인들과 함께 다수의 수술실을 열고 수술을 연달아 진행하더라도 문제를 삼기 어렵다. 실제 적지 않은 성형외과에서 이러한 수술방식과 그로 인한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권씨를 수술한 병원에서도 같은 시간대에 3곳의 수술실이 열려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수술실 CCTV에는 권씨를 지혈하던 보조의사와 마취의사 등이 동시간대 이뤄진 다른 수술을 돌보기 위해 자리를 뜨는 장면이 그대로 녹화됐다.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 홀로 남은 이유다.

CCTV 영상과 의무기록지 등을 바탕으로 이 사건을 감정한 다수 기관은 당시 권씨의 상태가 통상의 환자와 달라 숙련된 전문의의 조치가 필요했다는 의견을 수사기관 등에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담당 수사검사인 성재호 검사는 해당 자료를 모두 제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경찰·유족·유족 측 대리인이 서로 다른 시점에 각기 요청해 받은 여러 공신력 있는 기관의 해석들도 배척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기관들은 수술 직후 피해자 권씨의 상태가 통상의 환자와 달리 다량의 출혈이 발생해 주의가 필요한 상황이었으며, 그에 대한 지혈행위는 숙련된 의사가 수행해야만 한다는 등의 입장을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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