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경제

코로나19 여파, 감산합의 실패에 가격 덤핑...유가 전쟁 본격화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09 11:20

수정 2020.03.09 11:20

/사진=뉴스1 외신화상
/사진=뉴스1 외신화상

[파이낸셜뉴스] 세계 최대 산유국 사우디아라비아가 감산에 반대한 러시아에 보복하기 시작했다. 산유량을 최대 하루 200만배럴 가까이 증산하고, 러시아의 주력 시장인 북서유럽에도 진출하며 북유럽을 포함해 미국과 아시아에서 할인을 병행할 계획이다.

사우디는 러시아를 겨냥하고 있지만 가격전쟁은 재무구조가 취약한 미 셰일석유업체들에 줄도산 공포를 불러 일으킬 전망이다. 또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인 나이지리아와 앙골라는 사우디의 보복 유탄을 맞아 가장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는 벌써부터 2014년 사우디의 선전포고로 시작된 석유 가격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2016년 배럴당 28달러까지 추락한 유가 폭락이 되풀이 될 것이란 비관론이 확산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8일(이하 현지시간) 소식통들을 인용, 사우디가 러시아를 겨냥해 다음달부터 석유시장에 피바람을 몰고 올 것이라고 보도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우디는 다음달부터 산유량을 하루 1000만배럴 이상으로 끌어올리고, 핵시 시장에서는 러시아의 석유를 견제하기 위해 20% 가까운 대대적인 할인에 나설 전망이다.

한 소식통은 사우디 산유량이 최종적으로는 하루 1100만배럴을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지난해 12월 사우디가 약속한 하루 97만배럴 수준의 산유량에 비해 최대 하루 200만 배럴 가까이 증산하게 되는 것이다.

사우디 석유정책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다른 나라들이 산유량을 늘린다면 사우디라고 그러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없다"면서 "이제 사우디는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메울 매출 확대 권리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소식통들에 따르면 사우디는 조만간 주로 러시아를 겨냥한 석유정책들을 발표할 전망이다.

우선 러시아의 핵심 석유판매 시장인 북서유럽 진출을 선언할 것으로 보인다. 4월 북서유럽 시장에 진출하면서 러시아 석유를 대체하는 수요 확보를 위해 3월 가격보다 배럴당 8달러 넘게 깍아주는 파격적인 가격할인도 병행할 전망이다.

또 미 시장에서도 4월부터는 3월 대비 배럴당 7달러 가량, 그리고 아시아 시장에서도 유가를 배럴당 4~6달러 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통상 가격 할인폭이 배럴당 몇센트 수준이거나 기껏해야 1~2달러 정도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난 파격이다.

지난해 9월 세계 최대 석유시설인 아부카이크를 비롯해 핵심 석유시설이 미사일·드론 공격을 받아 석유생산이 타격을 받았던 사우디는 이제 하루 1200만배럴 생산 능력을 거의 회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년 동안 사우디와 사실상의 동맹을 맺었던 러시아는 사우디와 사우디가 주도한 감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러시아 최대 석유업체인 로스네프트는 성명에서 사우디와 관계는 "무의미해졌다"면서 "그동안의 감산 합의에 따른 세계 시장의 석유공급 감소분은 아주 신속하게 미 셰일석유로 완전히 대체됐다"고 말했다.

로스네프트는 러시아 정부가 최대 주주인 업체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가운데 한 명이 지휘봉을 잡고 있다. 로스네프트의 발언은 푸틴 대통령의 복심임을 의미하는 셈이다.

로스네프트 홍보 책임자인 미하일 레온티예프는 타스통신과 인터뷰에서 합의가 깨짐에 따라 러시아는 석유자원을 현금화하는데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러시아는 그동안 석유판매를 통해 쌓아둔 1700억달러 규모의 국부펀드라는 쌈짓돈을 바탕으로 단기적인 가격 전쟁에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사우디가 증산에 나서고 가격 할인을 해주기 시작하면 걸프만의 사우디 동맹인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 역시 증산과 할인을 함께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 석유시장은 앞서 2014년에도 사우디가 시작한 가격전쟁으로 배럴당 100달러 유가가 폭락하고, 2016년에는 배럴당 28달러까지 추락한 바 있다. 이는 산유국들 모두에 심각한 타격을 주면서 OPEC과 러시아의 감산을 부른 바 있다.

시장의 유가전망은 계속 내려가고 있다.

CNBC에 따르면 모간스탠리는 2·4분기 국제유가 기준물인 브렌트는 배럴당 35달러,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30달러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했고, 드래고먼벤처스의 알리 케더리 최고경영자(CEO)는 20달러 유가를 예상했다.

한편 사우디와 러시아간 가격 전쟁은 미 셰일석유에 치명상을 입히고, OPEC 산유국인 나이지리아, 앙골라를 경제위기로 내몰 전망이다.

사우디가 대 놓고 겨냥하고 있지는 않지만 미 셰일석유는 유가 폭락의 근본 배경으로 사우디에는 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사우디는 미국과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던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는 셰일석유를 공격대상으로 삼기도 했지만 사우디와 밀월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서고 나서는 미 셰일석유에 대한 언급 자체를 피해왔다.

앙골라와 나이지리아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을 맞게 됐다.
증산 여력도, 가격 할인 여력도 없는데다 사우디나 다른 주요 산유국들과 달리 국제 자금 시장에서 세수 부족분을 메울 정도의 돈을 빌릴 능력 역시 안 돼 이들 산유국은 심각한 경제위기에 맞닥뜨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