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사람이 죽었는데 '14년 무사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3.14 14:00

수정 2020.03.15 16:29

고 권대희씨 친구 노경민씨 인터뷰
끼니 줄여가며 모은 650만원으로 수술
병원 정상영업, 검찰 불기소... 무력감 호소
재정신청이 마지막 희망 "관심 가져주길"
[파이낸셜뉴스] 광고가 사람을 죽인다. 적어도 올해 스물아홉이 된 노경민씨에게는 그렇다. 가장 가까웠던 친구를 노씨는 광고 때문에 잃었다.

노씨의 친구 권대희씨는 스물다섯이던 2016년 서울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졌다. 그날 아침 노씨의 트레이닝복을 입고서 집을 나서던 권씨의 모습이 노씨가 본 마지막이었다. 이틀 후 연락을 받고 찾은 중환자실에는 거짓말처럼 권씨가 누워있었다.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참담한 꼴이었다.

권씨에게 성형수술 이야기를 들은 건 사고가 있기 한 달 쯤 전이었다. 노씨에게 할 말이 있다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동안 양악수술을 하려고 돈을 모았고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했다. 그제야 이해가 갔다.

권씨는 검소하고 성실한 친구였다. 늘 붉고 흰 티셔츠에 갈색 바지차림으로, 언제나 두 개 이상 아르바이트에 바빴다. 바쁜 와중에 공부도 놓지 않았고, 인천국제공항공사 취업을 목표로 대외활동도 성실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사정이 어렵구나 하고 더 묻지 않았다.

2016년 성형외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권대희씨(왼쪽)가 생전 노경민씨와 찍은 사진. 노경민씨 제공.
2016년 성형외과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권대희씨(왼쪽)가 생전 노경민씨와 찍은 사진. 노경민씨 제공.


끼니 줄여 모은 수술비... 별 일 없을 거라 했지만

늘 한 끼만 먹었다고 했다. 둘이 다니던 경희대학교 교내식당에서 가장 싼 3500원짜리 메뉴였다. 노씨는 그런 친구가 안쓰러워 권씨를 자주 집으로 불렀다. 그럴 때마다 권씨는 한 번도 빈손으로 오는 법이 없었다.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모은 돈이었다. 백화점 주차요원과 편의점, 교내 근로장학생, 기업 사무보조까지, 돈이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고 벌었다. 집에서 주는 용돈까지 꼬박 모아서 방학이 끝날 때쯤 650만원을 만들었다고 했다. 고스란히 수술비로 들어갔다.

“처음엔 미쳤다고 생각했어요. 말렸죠. 절대로 하지 말라고요. 죽는 사람도 있다고 위험하다고 했어요. 그런데 무얼 듣고 왔는지 전혀 아니라고 그렇게 고집을 부렸죠. 14년 동안 한 번도 사고가 없었던 병원이라 별일 없을 거라고요. 수술할 원장도 만났다고 했죠. 저도 결국 설득 당했어요”

그날 끝까지 말리지 못했던 게 가슴에 남았다. 인터뷰 얼마 전엔 노씨의 꿈에 권씨가 나왔다. 지하철역에서 잠깐 만난 권씨가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울면서 잡았는데 끝내 잡지 못했다고 했다. 어찌나 울었던지 깨고 나니 주변이 온통 젖어있었다.

“사진을 많이 찍지도 않지만 찍으면 늘 턱을 포토샵으로 만졌어요. 잘 하지도 못해서 이상하게 되는데, 물어보면 트라우마가 있다고만 했죠. 고등학교 때 놀림을 받았다고요. 그래도 수술까지 할 줄은 몰라서 저도 놀랐어요.”

권씨는 진심이었다. 이미 두 달 동안 강남 일대 유명하다는 성형외과를 직접 돌아다니며 상담을 받고 있었다. 처음 인터넷을 검색해 후보로 올린 건 8곳, 직접 수차례 방문해서 상담까지 받았다고 했다.

“압구정이랑 강남역쪽 병원을 많이 돌아다녔다고 했어요. 상담실장이랑 원장도 만나고요. 그렇게 해서 정했는데, 광고문구가 (결정하는데) 가장 컸죠. 사건 터지기 이틀 전 같이 맥주를 마셨는데 계속 그 얘기를 했어요. 무사고라고요. 너무 선명해요.”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바닥에 고인 피를 간호조무사가 밀대걸레로 닦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2016년 서울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다 중태에 빠진 권대희씨 수술 당시 CCTV 영상. 바닥에 고인 피를 간호조무사가 밀대걸레로 닦고 있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끝까지 책임진다"던 병원의 민낯

‘14년 무사고’를 자랑하던 그 병원은 권씨와 다른 두 명을 함께 수술했다. 경찰 수사결과에 따르면 사전에 약속된 집도의 장모 원장이 권씨의 뼈만 절개한 뒤 수술실을 나갔고, 누군지 알지 못했던 20대 젊은 의사가 들어와 지혈하다 나갔으며, 다시 간호조무사가 들어와 지혈을 했다. CCTV 상엔 간호조무사 홀로 권씨를 지혈한 시간이 33분에 달한다. 일명 ‘공장식 수술’이라 불리는 것으로, 권씨 역시 이를 우려해서 발품을 팔았다.

“원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한다고, 철저하게 관리한다고 해서 거기서 한 거예요. 그런데 아니었죠. 돈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수술 전체를 다 자기가 관리한다고 해서, 그 답을 물어봐서 들었었다고 했어요. 그런데 영상은 달랐죠. 직접 다 한다고 했는데 왜... 그래서 CCTV 영상을 몇 번이고 봤어요. 내 친구가 도대체 왜 죽은 건지 너무 궁금해서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부검으로 드러난 권씨 사인은 과다출혈로 인한 쇼크사다. 수술 중 지혈이 되지 않은 상황에서 충분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망한 것이다. 수술 중 출혈량은 3500cc로, 45kg 성인 여성 전체 혈액량과 같다. 피를 그토록 많이 흘려 위험한 상황에 접어들었지만 권씨는 이 병원에서 수혈을 받지 못했다.

간호조무사들은 13차례에 걸쳐 피로 흥건한 바닥을 밀대로 밀었다. 수술 중 여러 수술방을 돌아다닌 마취과의사는 권씨가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알 수 없었다. 끝까지 책임진다던 집도의도, 마취과 의사도,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 CCTV 화면엔 홀로 남은 간호조무사가 핸드폰을 보고 화장을 고치는 장면까지 담겼다. 권씨는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사인이 과다출혈이라고 하는데 요즘 세상에 과다출혈로 죽는 게 말이 되나요. 수술을 하는 병원에서 혈액도 없다고 하고요. 영상을 보니까 완전히 방치더라고요. 무시였어요. 방관했어요. 사람을 일거리로, 돈으로 본 거에요.”

지난 10일 경희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고 권대희씨 친구 노경민씨(왼쪽)와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를 함께 만났다. 사진=김성호 기자
지난 10일 경희대학교 서울 캠퍼스에서 고 권대희씨 친구 노경민씨(왼쪽)와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를 함께 만났다. 사진=김성호 기자


친구가 죽었는데,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권씨 장례식장에서 노씨는 집도의를 처음 봤다고 했다. 조금도 미안한 기색이 느껴지지 않아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싶었다고 했다. 아무렇지 않게 당당한 그 모습에 노씨는 증오감이 들었다고 했다. 장례식장에서 노씨가 격하게 항의하자 집도의와 그 일행은 그대로 빠져나갔다고 했다. 모두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은 다시 14년 무사고 광고를 내걸었다. 권씨가 사망한 후였으니 명백한 허위광고였다.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직접 고발한 뒤에야 광고는 내려졌다. 병원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병원은 14년 무사고 광고를 다시 걸었다. 이씨는 재차 이를 고발했다. 사건은 경찰을 거쳐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됐다.

하지만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는 이를 기소하지 않았다. 병원이 같은 건으로 한 차례 처벌을 받았음에도 그랬다. <본지 2월 8일. ‘[단독] 수술 환자 사망에도 '무사고' 광고 처벌 無... 짙어지는 검찰 '봐주기' 의혹’ 참조>

노씨는 절망했다. 무력감을 느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제 모습에 스스로 화가 났다.

“참담했어요. 정의라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사람이 죽었고 누가 봐도 병원이 잘못을 했는데 책임을 회피한다고 느껴졌어요. 사망사고 이후에도 14년 무사고 문구를 썼고 소송하는 중에까지 영업을 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죠. 증오심이 들었어요. 내 친구가 죽었는데, 가만두고 싶지 않은데, 내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에 화가 났죠. 그 검사랑 병원 쪽 변호사랑 보통 관계가 아니라는 내용까지 찾아봤는데 참...”

어느덧 노씨는 29살이 됐다. 친구는 살아보지 못한 세상을 노씨 홀로 걷고 있다. 노씨는 여전히 친구를 떠나보내지 못했다. 자주 사고를 낸 병원을 검색하고 사건을 찾아본다.

권대희 사건은 현재진행형이다.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고 사건해결에 목을 매고, 형은 무력감에 오랫동안 방황했다. 노씨 역시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권씨를 잃은 주변인들은 모두 이렇게 힘든데, 병원은 여전히 홍보에 열을 올린다. 14년 무사고를 내건 블로그 광고도 최근 본지 보도가 나간 뒤에야 내려졌다.

사건을 수사한 성재호 검사는 핵심이 된 의료법 위반 혐의를 무혐의 처분했다. 파이낸셜뉴스는 이와 관련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의혹을 철저한 검증을 통해 수차례에 걸쳐 다뤘다. <본지 2월 1일. ‘[단독] '무면허 의료행위' 확답에도 검찰은 불기소... "뭐하는 조직인가" 등 다수 보도 참조>
지난 10일 아들 고 권대희씨의 친구 노경민씨와 함께 경희대학교 서울 캠퍼스를 찾은 이나금씨가 대학교 본관 건물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2016년 성형수술 의료사고로 사망한 권씨는 끝내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지난 10일 아들 고 권대희씨의 친구 노경민씨와 함께 경희대학교 서울 캠퍼스를 찾은 이나금씨가 대학교 본관 건물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2016년 성형수술 의료사고로 사망한 권씨는 끝내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다. 사진=김성호 기자


"법원에서 재정신청 받아들여졌으면"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법원에서 유죄로 판결되더라도 병원은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 한국 법원과 검찰이 사전 고지되지 않은 ‘공장식 수술’에도 의료진에게 상해와 사기죄를 적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무면허 의료행위 등 의료법 위반 혐의도 적용되지 않아 징역은커녕 의사면허 취소 또는 정지도 기대하기 어렵다. 검찰이 기소한 내용으로는 집행유예와 벌금형이 고작이라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좋은 것일까?

“저는 원장이 두 번 다시 수술할 수 없었으면 좋겠어요. 납득할 만한 형사처벌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것만이 아니라 권대희법, CCTV 때문에 그나마 소송이 가능했으니 그 법이 통과됐으면 좋겠어요. CCTV라도 있어야 의사도 제대로 임하고 피해자도 증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끝내 검찰은 의료법 위반 혐의를 불기소한 성 검사의 판단이 부당하다는 유족 측 항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 측은 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했다.

“법원에서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법이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잖아요. 가족이, 친구가 그렇게 비참하게 죽었는데 책임 있는 의사가 계속 수술을 하고 돈을 버는 모습을 봐야한다면 누가 이 나라를 정의롭다고 하겠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기자와 노씨, 그리고 권씨의 어머니 이씨는 함께 경희대학교 캠퍼스를 걸었다. 어쩌면 기자가 아니라 권씨가 함께 했을 자리, 이씨는 끝내 이 학교를 졸업하지 못한 막내아들을 떠올리며 한참을 울었다.

2020년 3월 10일 저녁, 하늘은 흐리고 차거운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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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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