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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혁신처, '공짜 초과근무 1시간 부당' 판결에 불복…'항소권 남용 논란'

안태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2 15:41

수정 2020.04.13 00:34

법원 "시선제 공무원, 초과수당 1시간 공제 부당"
인사처 "일반직 공무원과 동일하게 적용해야"
추가근무 만연...한국 문화에 시기상조
文 대통령 "압도적 정보 가진 정부 항소 자제해야" 
인사처 "파장 크다...1심에서 멈출 수 없어"
[파이낸셜뉴스]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열악한 처우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저녁식사 1시간'을 빼고 지급한 시간외근무수당이 부당하다는 법원의 판결에 정부가 불복하면서다.

정해진 시간만 근무토록한 본래 취지에도 불구하고 시간외 근무가 만연한 현실이 초래한 결과다.

정부의 항소 남발 문제도 거론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기계적인 정부의 남발을 자제하라'는 뜻을 수차례 밝힌 후 국가의 항소 타당성을 논하는 위원회가 신설됐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소송 액수가 적고 국민적인 관심이 덜하다는 이유다.


1년7개월을 기다려 1심 승소 판결을 받아낸 시선제 공무원 2명은 다시 기약 없는 싸움에 돌입했다. 소속 기관의 눈치를 보며 버텨온 시간이었다. 담당 부처인 인사혁신처는 대법원 판결이 나야 움직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법원 "시선제 시간외수당 1시간 공제 부당"

작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본부 조합원들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정원 규정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작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전국통합공무원노동조합 시간선택제본부 조합원들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정원 규정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월 지방 국립대 소속 시선제 공무원 2명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소송에서 미지급 시간외근무수당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통상 공무원은 시간외수당 1시간을 제외하고 지급한다. 대통령령인 '공무원수당규정'에 의해서다. 오전 9시~오후 6시까지 근무 후, 오후 8시까지 2시간 야근해도 1시간 어치 수당만 지급받는다. 업무준비시간, 휴게시간, 저녁식사 시간 등을 고려해 1시간을 제외한 것.

문제는 이 규정이 하루 4시간 근무하는 시선제 공무원에게도 적용됐다는 점이다. 이들은 1시간 공제 취지를 저녁식사 시간으로 봤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근무하는데 초과근무를 해도 저녁 휴게 시간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논리다.

법원은 이들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판결문은 "1시간을 공제하는 이유는 일반직 공무원들의 경우 평일 오후 6시 이후에는 통상 업무를 수행하지 않고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며 "이들이 점심식사를 마친 후 오후 2시부터 시간외근무를 하면서 (추가로) 1시간의 식사·휴게시간을 가졌다고 단정할 수 없으므로 공제규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이유를 적었다.

인사처는 이같은 판결에 불복해 지난달 3일 항소장을 제출했다. 업무준비시간, 휴게시간 등을 감안하면 1시간 공제 규정을 동일하게 적용해도 무리 없다는 주장이다.

■말로만 시간선택...초과근무 만연

이같은 시간외수당 논란이 불거진 근본 원인은 따로 있다. 정해진 시간만 근무토록하는 제도 취지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서다.

시선제 제도는 2013년 박근혜정부 때 도입됐다. 2018년 말 기준 1539명이 중앙정부기관에서 일하고 있다. '경단녀' 등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국내 문화에선 시기상조였다.

제도 설계에 참여했던 한 고위공무원은 "(시선제 공무원은) 정해진 시간만 일하고 바로 퇴근하는 취지"라며 "애초에 시간외 수당 이슈가 나오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파이낸셜뉴스가 시선제 공무원을 채용 중인 43개 부처에 정보공개를 청구한 결과, 답변을 거부한 교육부 1곳을 제외하곤 총 42곳 모두 시간외근무 이력이 확인됐다. 월 평균 20시간이 넘은 경우도 16곳에 달했다.

세종시 인사혁신처 외경. 뉴스1
세종시 인사혁신처 외경. 뉴스1
■소송 금액 작아 '상소심의위원회' 안거쳐

인사처가 판정에 불복한 것을 두고도 비판이 나온다. 국가·행정소송에서 정부가 책임회피를 위한 기계적인 항소로 국민 불편과 사법자원 낭비를 초래한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문재인 대통령도 '압도적인 정보를 가진 정부가 패소했으면 그대로 따르면 된다. 정부 항소를 자제하라'는 취지의 발언을 수차례 한 바 있다. 이에 따라 민간위원이 참여하는 '국가송무 상소심의위원회'가 법무부 산하에 설치됐다.

허나 이 사건은 심의를 거치지 못했다. 서울고등검찰청 관계자는 "소가(소송목적의 값)가 크고 언론보도가 나오거나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들 위주로 심의를 거친다"며 "소가가 낮은 사건은 소송 수행 부처의 의견대로 간다"고 답했다.

법원은 1심 판결에서 원고 2명에게 각각 약 112만원, 276만원 지급을 판결했다. 금액이 작다는 이유로 공무원 임금체계를 건드는 중대 사안인 점은 고려되지 않았다.

■"대법원까지 가야" vs. "항소권 남용"

인사처는 충분한 절차를 밟아 항소했다는 입장이다. 인사처 관계자는 "1심 판결 나왔을 때 고검에 판결문을 보내 항소에 대한 의견을 전했다"며 "고검의 사전 지휘를 받아서 (항소를) 진행했다. 기계적 항소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반면 원고측은 국가의 항소권 남용이라고 반박했다. 차현일 변호사(법무법인 사람인)는 "1심을 수행한 입장에서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었다.
설령 관계법령에 의해 원고가 패소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입장에선 관계법령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사건"이라며 인사처의 항소에 대해 "국가의 잘못된 관행이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는 취지로 항소하는 것은 행정력 낭비 또는 항소권 남용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eco@fnnews.com 안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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