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취업제한기관 몰래 취업 퇴직 검사... 처벌은 받았을까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4.11 14:00

수정 2020.04.12 08:50

과태료 처분 여부 파악 어려워
2011-2016, 위반 20명 중 11명만 처분
허술한 감시·처벌에 위법 반복 '의심'
[파이낸셜뉴스] 법을 어기고 취업제한기관에 심사 없이 취업한 퇴직 공직자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는지 여부를 파악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과태료 부과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인사혁신처의 감독도 느슨해진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인사혁신처는 관할 법원이 협조하지 않아 과태료 부과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일부 법원이 문의에도 답을 주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18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재취업을 요청한 검사 90명 중 4명을 빼고 모두 취업을 승인해줬다'며 심사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출처=fnDB
지난 2018년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재취업을 요청한 검사 90명 중 4명을 빼고 모두 취업을 승인해줬다'며 심사기준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출처=fnDB

■검찰 무단 재취업 '만연', 처벌은 '유명무실'

11일 관계기관에 따르면 취업심사를 건너뛰고 취업제한 기관에 제 멋대로 재취업한 퇴직 검사에게 과태료가 부과됐는지 여부를 파악하고 있는 기관이 단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불법사실을 확인해 관할 법원에 과태료부과를 요청한 인사혁신처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는 물론이고, 과태료 부과 업무를 담당하는 법원에서조차 이를 별도로 관리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퇴직공직자 취업승인 심사는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이뤄진다. 공무원들이 퇴직 후 자리를 옮길 것을 목적으로 공무집행을 부정하게 하는 등의 일탈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에 따라 공공예산을 집행하거나 인가·허가·면허 등과 관계된 업무, 조사·검사·수사 등을 하는 기관의 공직자는 유관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 제한된다. 합당한 공익적 목적이 있을 경우에만 심사를 거쳐 재취업할 수 있다.

하지만 일부 정부기관 및 공직자 사이에선 해당 법령을 무시하고 취업제한기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2011년 이후 40명 가까이 취업심사를 건너뛰고 취업제한기관으로 자리를 옮긴 검찰과 법무부 출신 검사들이 대표적이다. <본지 4월 4일. ‘[단독] 수사 중 업체에 심사없이 임원 취업한 퇴직 검사... 검찰 기강해이 '눈총'’ 참조>

해당 법령을 위반해도 처벌이 크지 않다는 점이 이 같은 위법이 만연한 이유다. 공직자윤리법은 이렇게 재취업한 퇴직 공직자에게 10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토록 하고 있다. 과태료와 함께 취업한 기관장에게 해임을 요청하는 게 불이익의 전부다. 퇴직 공직자란 점에서 별도의 징계를 둘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해도, 과태료 상한이 기대수익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인사혁신처가 법에 따라 이들에게 과태료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할 경우에도 처분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있다. 2011년부터 2016년 상반기까지 취업심사를 무시하고 취업제한기관에 무단 취업한 검사는 무려 20명이다. 이 가운데 과태료 처분을 받은 검사는 11명에 그쳤다. 과태료를 받지 않은 9명은 그 사유가 공개되지 않았다.

공직자윤리법을 사전에 알지 못했거나 형편이 좋지 않은 경우 일부 과태료가 면제될 여지가 있지만 퇴직 검사가 이 사유에 해당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공직자윤리법 상 규정된 취업제한기관 취업승인 심사를 검사들이 유독 많이 어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취엄심사를 건너뛴 검사 20명 중 9명은 과태료도 받지 않았다. 출처=fnDB
공직자윤리법 상 규정된 취업제한기관 취업승인 심사를 검사들이 유독 많이 어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취엄심사를 건너뛴 검사 20명 중 9명은 과태료도 받지 않았다. 출처=fnDB

■검사가 검사에게... 과태료는 받았을까?

더욱 황당한 건 2016년 하반기부터는 법을 어긴 검사에게 과태료 처분이 됐는지조차 알기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이 기간 동안 무단으로 취업제한기관에 재취업한 검사가 19명이나 발생하는 등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단속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인사혁신처에 문의하자 “공직자 윤리위는 과태료 부과 대상자를 법에 따라 관할법원에 통보하고 있고, 과태료 부과는 관할법원에서 결정한다”며 “(인사혁신처는) 윤리위가 통보한 과태료 부과 요청 현황 이외의 자료는 관리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인사혁신처의 역할은 법을 어긴 퇴직 공직자에게 과태료를 부과해달라고 요청하는 것까지일뿐 실제 과태료가 부과됐는지 파악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법원 역시도 공직자윤리위로부터 요청받은 과태료 부과 내역을 통합해 관리하고 있지 않다. 해당 자료가 법원이 별도로 관리해야할 항목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어느 기관도 공직자윤리법을 어긴 공직자에게 최종적으로 어떤 처분이 내려지는지 확인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감독 공백 속에서 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공직자에게 최소한의 과태료 처분조차 주어지지 않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2011년 검찰이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의 횡령 혐의를 수사할 당시 수사지휘 최고책임자였던 이귀남 전 법무부 장관이 퇴직 후 오리온그룹 고문으로 옮겨간 사례, 같은 해 SK일가 최철원 전 M&M 대표의 ‘맷값 폭행’ 사건에서 폭행 피해자를 업무방해 등의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고 넉 달여 만에 SK로 이직한 박철 전 부장검사의 사례가 되풀이되지 말란 법이 없다.

실제로 2017년 2월 퇴직한 검사장이 지난해 3월 CJ그룹 사외이사로 재취업하려다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돼 '취업불승인' 판정을 받았고, 검찰 수사가 막 개시된 중견업체 임원으로 심사 없이 자리를 옮긴 퇴직검사가 업무상 밀접한 관련성이 인정돼 '취업제한' 판정을 받는 등 문제가 지속되고 있다.

한편 과태료 재판에서 법을 위반한 이들에게 징수 명령을 내리는 주체는 검사다. 검사가 다른 직군에 비해 유독 해당 법령을 많이 어기고 있는 상황에서, 2016년 상반기까지 위법 행위를 저지른 퇴직검사들이 과태료 처분조차 제대로 받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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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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