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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할배 4인방, 라스베이거스로 가다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1 09:00

수정 2020.05.01 11:55

[김성호의 영화가난다 14] <라스트베가스>
라스트베가스 포스터.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라스트베가스 포스터.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파이낸셜뉴스] <어거스트: 가족의 초상>에서 메릴 스트립이 연기한 바바라는 "남자는 늙어도 중후한 멋이 있지만 여자는 그저 추해질 뿐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닌다. 얼마든지 반례를 찾을 수 있음에도 이런 생각은 우리 주변에 제법 넓게 퍼져 있는 듯하다.

특히 연예계는 이런 생각이 상식처럼 믿어지는 공간이었다. 국적을 막론하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다양한 모양의 멋을 뿜어내는 남자배우들과 달리 상당수의 여배우들이 젊은 시절의 미모를 조금이라도 오래 유지하고자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마다하지 않으며, 마침내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를 대표한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왕년의 명배우들이 뭉친 <라스트베가스>는 바로 이런 믿음에 대한 예시인 동시에 반례이기도 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멋스러운 네 명의 노신사들이 라스베이거스에서 보내는 며칠의 이야기인지라, 늘씬한 여자들이 스크린을 가로지르는 장면이 거듭된다.
하지만 영화가 끝났을 때 가장 매혹적인 여성으로 기억되는 건 젊은 여인이 아닌 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던 동년배 여가수인 것이다.

농담을 재치있게 받아치고 멋스럽게 자신을 표현하는 적극적이고 매혹적인 여성, 그녀는 호텔 클럽의 나이든 가수일 뿐이다. 펜트하우스의 화려한 파티, 베가스의 여인들 너머로,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을 가슴에 쿵쿵거리며 오직 한 여자만을 기다린 패디(로버트 드니로 분)와 빌리(마이클 더글러스 분).

영화는 이들이 주변의 젊고 예쁜 여인들을 마다하고 동년배의 여인을 사랑하게 되는 것이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심지어 나이든 그 여인이 수많은 여인들 중 가장 매혹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설득하는데 가장 큰 노력을 할애한다. 이것이 이 영화의 목적이다.

쫙 빼입은 네 할배들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쫙 빼입은 네 할배들 ⓒ나이너스엔터테인먼트(주)

브루클린의 사총사가 첫 번째 사건을 일으킨 순간으로부터 다짜고짜 58년을 건너뛴 이 도발적인 영화는 4인방의 노년생활을 비추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내를 잃은 슬픔에 젖어 이웃이 가져다주는 스프로 연명하는 패디, 32살 연하 애인과 결혼하겠다는 플레이보이 빌리, 은퇴 이후 건강도 나빠진데다 아들의 지나친 보호에 힘들어하는 아치(모건 프리먼 분), 아내와의 결혼생활은 물론 자신의 일상에까지 권태를 느끼는 샘(케빈 클라인 분)까지.

대충 살펴보아도 문제 투성이인 네 명의 할배들이 빌리의 결혼을 앞두고 총각파티를 위해 라스베이거스에 모인다. 이후의 전개는 평범하다. 이런 류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 따뜻하고 행복한 결말을 향해 흔히 예상할 수 있는 곡선을 그리는 것이다.

하지만 중간중간 배치된 기발한 설정과 배우들의 노련한 연기에 힘입어 적절한 웃음과 감동을 선사한다.

더욱이 이 요망한 할배들은 이런 이야기조차도 비범하게 만들어내는 재주를 가졌다. 사실 할배들이 경험하는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시간들은 이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보장한다.

어느덧 나이가 들었지만 함께 있을 땐 여전히 그 시절 그 마음을 내보이는 할배들의 모습이 결코 우리와 동떨어진 늙은이들의 일탈이 아님을 영화는 채 3분이 못되는 그들의 소년 시절과 58년 후의 노년 시절을 잇댐으로써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 역시도 언젠가는 나이가 들 것이고 영화 속 할배들과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일탈을 꿈꾸며 살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을 하게끔 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나이의 우리에게도 청춘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슴 한켠에 간직하게끔 한다. 이것이 바로 <라스트베가스>가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네 명의 캐릭터가 이뤄내는 조화는 다른 영화에서는 쉽게 찾을 수 없을 만큼 대단한 것이다. 훌륭한 배우들은 각자의 캐릭터에 자신만의 내공 실린 연기를 덧입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멋스런 신들을 만들어냈다. 대체 누가 이들에게 만족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문제들로 가득했던 네 친구의 삶이 아마도 마지막이 될 라스베이거스에서의 유쾌한 시간을 통해 더없이 만족스런 그것으로 바뀌는 순간, 관객들도 그들과 같이 행복하고 안정적인 100분의 여행을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쿨러닝><당신이 잠든 사이에><페노메논>을 연출한 존 터틀타웁은 자신의 장점을 십분 살려 평범한 이야기를 비범하게 만들었다. 그로써 약간의 낭만과 약간의 교훈이 담긴 즐거운 한 편의 오락영화를 완성시켰다.
멋진 일이다.

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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