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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대 거리소녀가 술병 깨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죠"[인터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01 12:45

수정 2020.05.01 12:45

'바람의 언덕' 박석영 감독
거리소녀부터 자신을 버린 엄마와 마주하는 20대 여성까지
데뷔작부터 4번째 영화까지, 여성 주인공 영화 만든 이유
"홍대 거리소녀가 술병 깨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죠"[인터뷰]

"홍대 거리소녀가 술병 깨는 모습이 잊히지 않았죠"[인터뷰]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 /사진=fnDB
박석영 감독의 꽃 3부작 /사진=fnDB

영화 바람의 언덕 포스터(영화사 삼순 제공) /사진=fnDB
영화 바람의 언덕 포스터(영화사 삼순 제공) /사진=fnDB

박석영 감독(영화사 삼순 제공) /사진=fnDB
박석영 감독(영화사 삼순 제공) /사진=fnDB


[파이낸셜뉴스] “홍대에서 작고 하얀 옷을 입은 14-15살쯤 된 여자 아이가 병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됐죠. 취한 것도 아니었는데 빈병을 주워서 깨더군요. 군중들이 한 병 더, 한 병 더 외치고, 여자애가 그걸 받아서 계속 던지는 이상한 광경이었죠. 그게 제 마음 속에서 떠나지 않았죠.”

데뷔작 ‘들꽃’(2014)부터 ‘바람의 언덕’(2020)까지 여성 주인공 영화를 만들어온 박석영 감독이 감독 데뷔하게 된 계기를 이같이 밝혔다.

그는 10대 가출소녀의 거리의 삶을 그린 ‘들꽃’, 가혹한 노동환경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소녀의 홀로서기를 그린 ‘스틸 플라워(2015), 외롭고 의지할 데 없던 두 소녀의 연대를 그린 ‘재꽃’(2016) 그리고 딸을 버린 엄마와 뒤늦게 엄마를 재회한 딸의 이야기를 그린 ‘바람의 언덕’을 연출했다. 독립된 각각의 영화라기보다 마치 한 소녀의 성장담과 같은 네 편의 영화다.

“‘들꽃’으로 무언가 성이 안차 ‘스틸 플라워’ ‘재꽃’을 찍게 됐죠.” ‘바람의 언덕’도 독립적인 작품처럼 보이지만 전작과 연결고리가 있다. ‘재꽃’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평범한 삶을 보내고 있는 하담(정하담)에게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아빠를 찾겠다며 자신과 꼭 닮은 열한 살 소녀, 해별(장해금)이 찾아오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바람의 언덕’은 오랜 시간 각자의 삶을 살다 뒤늦게 재회한 두 모녀의 이야기를 그린다.
영화는 남편과 사별한 영분이 강원도 고향으로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정체를 숨긴 채 딸의 필라테스 학원에 등록한 그는 우연한 계기로 정체가 탄로 난다.

“‘재꽃’은 자신을 버린 사람과 대면하지 않고, 비슷한 처지의 두 소녀가 연대하면서 살아가죠. 반면 ‘바람의 언덕’은 나를 버린 사람을 대면해요. 만나서, 이기는 이야기죠. 내 외로운 시간을 당신을 원망하며 분노로 채우지 않고, 착한 마음으로 채웠어, 당신이 날 버렸다고 내 인생을 버리거나 망가뜨리지 않았어, 난 괜찮아, 스스로 잘 견딘 어떤 사람, 그 사람이 자신을 버린 사람을 마주한 이야기가 됐죠.”

데뷔작의 영감을 준 사람이 여성이지만, 남성으로 바꿔 풀었을 수도 있다. 지금껏 꾸준히 영화의 주인공을 여성으로 한 이유가 있을까? 그는 '바람의 언덕'의 메인 투자자이자 자신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엄마를 언급했다.

“엄마가 60대 후반인데, 엄마의 20대부터 그녀의 삶을 지켜본 사람이 바로 저입니다. 제가 가장 오랫동안 지켜본 사람의 삶이 제 엄마고, 제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이기도 하죠.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의 삶을 그리는게 더 편해요."

"아버지가 특별히 가부장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스무 살에 첫 아이를 낳은 엄마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참고 지내는 것을 많이 봤어요. 아파트 높은 층에 살 때였는데, ‘창문이 좀 더 넓었으면, 흘러내렸을지 모른다는 말’을 중얼댄 적이 있는데 그때 정말 무서웠죠. 내가 모르던 엄마의 모습을 본거죠.”

박석영 감독은 한때 결혼과 이혼을 몇 차례 반복한 ‘바람의 언덕’의 영분처럼 정착할 곳을 찾지 못한 채 부초와 같은 삶을 살았다. 대학 재학 시 우연히 가입한 연극동아리에서 학생운동을 하게 됐고, 제적을 당하면서 20대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IMF 금융위기로 영화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오가는 생활이 이어졌고, 결국 학위도 따지 못한 채 30대 후반에 귀국길에 올랐다. “인생의 일부가 통으로 날아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대학선배인 전계수 영화감독이 낙심하고 있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줘 ‘뭘 또 그렇게까지’(2010) 연출부에서 잠깐 일했다. 이후 전감독이 시놉시스를 주며 시나리오를 써보라고 제안했고 석 달간 매달려 탈고, 수정한 뒤 영화사봄에 팔았다. 결국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았으나, 시나리오 집필에 대한 자신감을 얻는 계기가 됐다.

생계를 위해 박물관의 전시품과 관련된 스토리를 쓰는 일을 하던 그는 “감독 데뷔하게 될지 몰랐다”고 했다. 미국에서는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냐고 물으니, "빨래방"을 언급했다. 사람들이 맡긴 빨래만 해주면 돼 그들과 부딪힐 일도 적고, 영어가 부족해도 큰 불편이 없었단다.

문득 낯선 이국 땅에서, 홀로 외로움의 시간을 보냈을 그의 2030대를 상상해봤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찾지 못하고, 바람부는 거리를 걸어봤기에, 홍대 거리에서 본 그 소녀의 모습이 유난히 그의 마음에 남았던 걸까. 엄마 없이 자란 한희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가늠할 수 있었던 걸까. 다행히 그에겐 자신을 끔찍히 사랑해주는 엄마가 있기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을 사랑하며, '성장'하는 캐릭터를 만들 수 있었던 걸까.

엄마는 아들의 영화를 어떻게 볼까? 그는 “‘들꽃’과 ‘스틸 플라워’는 너무 험한 이야기라 보지 말라고 했다”며 “‘재꽃’은 보고 아주 좋아했다. ‘바람의 언덕’보다 ‘재꽃’을 더 좋아한다”고 답했다.
감독의 네 번째 영화 ‘바람의 언덕’은 지난 4월 23일 개봉했다.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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