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사람이 죽었는데... '그 검사'가 처벌하지 않은 이유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6 16:00

수정 2020.05.16 15:59

'권대희 사건' 이후 '무사고 광고' 처벌無
성재호 검사 불기소이유통지서 단독 입수
갖은 이유 들어 장모 원장 '고의' 조각
병원은 '법인 아니라 처벌 못해' 논리
아들 잃은 어머니는 거리서 1인시위
[파이낸셜뉴스] 검찰이 환자 사망 후에도 ‘14년 무사고’ 광고를 내건 병원과 원장을 처벌하지 않은 이유가 드러났다. 앞서 한 차례 같은 사안으로 처벌받은 이력이 있었지만 담당 검사는 원장에게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같은 혐의로 원장과 함께 고발된 병원에 대해선 법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았다. 결국 환자 사망 후 무사고 광고를 내건 병원 및 관계자들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이 병원은 최근에도 의료법에 저촉되는 광고를 내걸다가 경찰에 고발장이 접수됐다.

‘14년 무사고’ 광고를 처벌하지 않은 검사는 이 병원에서 수술 받다 끝내 죽음에 이른 고 권대희씨(당시 25) 사망사건에서도 상해나 사기죄는커녕 핵심쟁점으로 꼽힌 의료법 위반 혐의까지 불기소 처분해 논란이 됐다.
유족은 법원에 불기소 처분의 당부를 가리는 재정신청을 접수한 상태다. <본지 2월 22일. ‘[단독] 법원 '권대희 사건' 불기소 들여다본다... 성재호 검사 녹취록 증거 제출’ 참조>

성재호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이유통지서엔 ㅈ성형외과 장모 원장의 고의를 조각하는 4가지 논리가 등장한다. 살펴보면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 질서를 바로세우는 검찰의 태도라고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사진=김성호 기자
성재호 검사가 작성한 불기소이유통지서엔 ㅈ성형외과 장모 원장의 고의를 조각하는 4가지 논리가 등장한다. 살펴보면 법을 엄정하게 집행해 질서를 바로세우는 검찰의 태도라고 보기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사진=김성호 기자

■어렵게 찾은 문서엔 '빈약한 논리' 가득

16일 본지가 단독 입수한 불기소이유통지서에 따르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는 지난해 11월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발된 ㅈ성형외과 장모 원장과 병원을 기소하지 않았다. 장 원장에 대해선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가 없고, ㅈ성형외과는 법인이 아니므로 권리능력이 없다는 이유를 들었다.

장 원장은 직접 운영하는 병원에서 수술 받은 권씨가 사망한 뒤에도 ‘14년 무사고’ 광고를 한 혐의를 받았다. 권씨가 대학병원 응급실로 이송된 지 49일 만인 2016년 10월 세상을 떠났음에도 2019년 1월경 ‘14년 무사고’ 광고를 했다는 것이다.

이 병원은 2017년에도 한 차례 같은 광고를 하다 영업정지 3개월에 벌금 100만원 처분을 받은 바 있었다.

이에 서초구보건소가 2019년 4월께 의료법 위반 혐의로 장 원장과 병원을 경찰에 고발했고, 경찰은 사실확인을 거쳐 이를 다시 검찰에 송치했다. 하지만 검찰은 전술했듯 장 원장과 병원을 처벌하지 않았다.

검찰이 장 원장에게 혐의가 없다고 처분한 이유는 크게 4가지다. △홈페이지 관리 담당 직원의 실수로 고의가 없고 △원장이 홈페이지를 직접 관리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이미 한 차례 처벌받은 문구를 다시 게시하는 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 △그 사이 흐른 시간을 가산해 ‘16년 무사고’라고 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추어 장 원장에게 범행의 고의가 없다는 논리다.

같은 광고로 처벌받은 이후인 2018년 12월에도 문제 병원은 '14년 무사고' 문구를 활용해 광고를 진행했다.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캡처한 광고 화면. 이나금씨 제공.
같은 광고로 처벌받은 이후인 2018년 12월에도 문제 병원은 '14년 무사고' 문구를 활용해 광고를 진행했다. 고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캡처한 광고 화면. 이나금씨 제공.

■동일 전과 있는데 불기소 '이례적'

문제는 의료광고 관련 법률 위반으로 적발되는 경우 고의범과 과실범의 구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다는 점에 있다. 광고대행사에 이를 일임했다고 항변할지라도 마찬가지다. 형법에선 미필적 고의만으로도 유죄로 판단한 전례가 차고 넘치는데다, 특별법인 의료법은 형법보다도 의료기관의 책임을 더 강하게 묻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기자와 함께 통지서를 검토한 조원익 변호사(법무법인 로고스)는 “형법의 고의에는 미필적 고의도 있고, 미필적 고의만 있어도 유죄로 판단한 전례가 많다”면서 “통상 동종 전과가 있다는 점에 비추어보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하고 약식으로나마 기소하는 것이 통례일 텐데, 약식기소의 전과가 있으므로 고의가 없다고 불기소 한 것은 이례적”이라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다. 의료법 제56조는 ‘의료기관 개설자, 의료기관의 장 또는 의료인’만이 의료광고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어, 장 원장이 아닌 단순 홈페이지 관리자 또는 홍보담당자가 의료광고를 했다고 주장해도 장 원장에게 책임을 묻는 게 충분히 가능하다.

요컨대 4가지 이유를 들어 장 원장에게 ‘고의가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낸 성재호 검사의 판단이 무리하다는 결론이다.

ㅈ성형외과는 최근에도 의료법 위반 광고로 서초구보건소로부터 고발당했다. 문제 병원은 권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두 차례나 '14년 무사고' 광고를 하다 보건소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출처=fnDB
ㅈ성형외과는 최근에도 의료법 위반 광고로 서초구보건소로부터 고발당했다. 문제 병원은 권씨가 사망한 이후에도 두 차례나 '14년 무사고' 광고를 하다 보건소로부터 고발당한 바 있다. 출처=fnDB

■檢, '법인 아니라 처벌못해' 황당 주장도

더욱 황당한 건 검찰이 ㅈ성형외과가 법인이 아닌 의료기관일 뿐이라며 ‘범죄를 저지르거나 형벌을 받을 능력이 없음이 명백’하다고 책임을 지우지 않은 점에 있다.

의료법 제64조는 ‘의료기관이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그 의료업을 1년의 범위에서 정지시키거나 개설 허가의 취소 또는 의료기관 폐쇄를 명할 수 있다’고 적고 있는데, ‘거짓된 내용을 표시하는 광고’도 그 조건에 해당된다. 법인이 아닌 의료기관도 의료법 위반의 주체이자 처벌의 대상일 수 있음이 명문화돼 있는 것이다.

심지어 ㅈ성형외과가 지난 2017년 ‘14년 무사고’란 문구를 활용했다가 이 조항에 따라 영업정지 3개월에 벌금 100만원 처분을 받았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성 검사의 판단에 심각한 오류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본지가 어렵게 입수한 불기소이유통지서를 통해 성 검사가 장 원장과 ㅈ성형외과의 명백한 불법행위를 처벌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며, 검찰의 이후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검찰은 이미 지난 2월 중순께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60·여)의 탄원을 받아들여 이 문제를 서울중앙지검 박영상 검사실에 진정사건으로 배당한 상태다. 이씨는 지난달 진정인 신분으로 담당검사와 면담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본지 5월 1일. ‘[단독] 환자 사망에도 '무사고' 광고 처벌 無... 檢 과오 바로잡나’ 참조>

고 권대희씨가 군 복무 중 면회를 온 어머니, 형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권씨는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ㅈ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 중태에 빠져 49일만에 숨졌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고 권대희씨가 군 복무 중 면회를 온 어머니, 형과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권씨는 전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ㅈ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 중태에 빠져 49일만에 숨졌다. 고 권대희씨 유족 제공.

■분노한 유족은 거리에서 투쟁 중

한편 지난 2016년 경희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권씨는 ㅈ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 수술을 받은 뒤 중태에 빠져 49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조사결과 병원은 같은 시간대에 3곳 수술실을 열고 동시 수술을 진행했다. 원장은 수술 일부만 집도하고 수술실을 나갔으며 고지되지 않은 신입의사가 수술을 이어받았다.

이 의사와 마취과 의사도 여러 수술실을 오가며 수술을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권씨가 흘린 3500ml에 이르는 혈액을 확인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간호조무사가 수술실에 홀로 남아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5분여에 이르렀다. 의료진은 회복실로 옮겨지지 못한 권씨를 수술실에 남겨두고 퇴근했다.

성 검사는 상해나 사기는 물론, 사건 핵심으로 꼽히는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및 의료진의 교사·방조 혐의를 기소하지 않았다. 유족은 불복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접수한 상태다. 결과는 5월 중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장모씨 등 의료진 일부는 기소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조차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이 처리되는 과정에서 절망감을 느낀 이씨는 거리로 나가 1인시위에 나선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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