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영화 '기생충' 기택네는 재난지원금 기부 어떻게 생각할까

뉴스1

입력 2020.05.11 07:00

수정 2020.05.11 08:46

영화 '기생충' 스틸. © 뉴스1
영화 '기생충' 스틸. © 뉴스1


2020.4.2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2020.4.20/뉴스1 © News1 김기태 기자

(서울=뉴스1) 김성은 기자 = 영화 '기생충'에는 햇볕이 잘 들지 않고 바퀴벌레가 득실대는 반지하 집에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기택의 가족이 등장한다. 현실이었다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지급되는 4인 기준 100만원의 긴급재난지원금이 마른 가뭄에 단비처럼 여겨졌을 게다. 그런데 이렇게 '피같은' 재난지원금을 고소득자들이 받지 않고 기부한다면 이 가족에게 어떤 생각이 들까.

11일 정부가 전 국민에게 지급하는 재난지원금 신청 접수가 개시된다. 이와 더불어 재난지원금 '기부'도 함께 시작됐다. 신청 단계에서 기부 의사를 밝히거나, 이날부터 3개월 동안 지원금을 신청하지 않는 경우엔 기부로 간주된다. 영화 속 으리으리한 저택에 사는 박 사장네도 재난지원금을 신청해 받을 수 있지만, 만약 신청하지 않을 경우엔 기부금으로 처리된다는 얘기다.


정부가 재벌을 막론하고 일단 모든 국민들이 지원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한 뒤, 기부를 기다리는 이유는 '재정 부담' 탓이 크다. 당초 정부는 소득 하위 70%에만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려고 했지만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 100% 지급으로 방향을 틀었다.

재난지원금에 투입되는 예산이 커지자 정부는 '자발적 기부'를 고안해냈다. 모아진 기부금은 고용보험금으로 편입해 고용 유지 등에 쓰기로 했다. 지원금이 굳이 필요 없는 국민들이 기부를 통해 코로나19 사태로 더 어려운 사람들을 돕도록 했다.

이를 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의무) 이행 차원"이라고 표현했다. 눈앞의 돈을 포기한 국민을 두고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단어로 한껏 치켜세운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도 재난지원금 기부를 놓고 "선의의 자발적 선택"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며 기부가 반강제적으로 이뤄진다면 본래 의미가 퇴색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관건은 기택네처럼 주머니 사정이 어려워 기부는 꿈도 꾸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다.

지주형 경남대 교수는 <뉴스1>과의 통화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재난지원금을 안 받고 낮은 사람들은 받는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다"면서 "재난지원금은 모든 국민에 지원되는 것인데 기부로 인해 국가가 마치 열등한 사람에만 시혜를 베푸는 인상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사회통합이란 어떤 사안에서 배제된 사람이 없도록 할 때 이룩될 수 있는 게 아니겠나"면서 "재난지원금 기부자와 미기부자로 나누는 상황에선 사회가 통합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를테면 박 사장네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다면서 돈을 기부하겠다고 밝히면 기택네 가족은 일종의 박탈감을 느낄 수 있다.

반면 부유층이 아니더라도 십시일반 기부 행렬이 이어질 경우 우리나라에 새로운 '사회적 연대' 모델이 구축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사업 실패로 가세가 기운 기택네처럼 우리나라에선 중산층이 줄어드는 대신 빈곤층은 늘어나는 추세다. 우리나라 중산층(중위소득 50~150%)은 지난 2015년 69.5%에서 지난해 59.9%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빈곤층(중위소득 50% 미만)은 12.9%에서 17.0%로 늘었다.

신경아 한림대 교수는 "아무리 중산층이라고 하더라도 언제든 빈곤층으로 떨어질 수 있다"며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기부하는 사람들이 나중에는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길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기부를 통해 국민들이 '사회적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신 교수는 프랑스 등 복지국가들이 사회적 연대를 토대로 복지 체계를 발전시켜온 과정을 예로 들었다.

그는 "복지국가의 기원을 보면 처음엔 국가가 아니라, 노동자들이 돈을 모았다가 실업자를 도와주는 식으로 이뤄졌다"면서 "그러다 20세기 초에 국가의 사회보장이 제도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난지원금 기부 역시 소득 감소가 없는 사람들이 돈을 아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회적 연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며 "기부를 철저히 개인의 자율성에 맡겨 운영한다면 좋은 시민연대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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