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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파주 근대문화마을 조성…봉일천 살리기

강근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5.17 23:04

수정 2020.05.17 23:04

최종환 파주시장. 사진제공=파주시
최종환 파주시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주=파이낸셜뉴스 강근주 기자] 파주시 조리읍은 행정명인 ‘조리’보다 ‘봉일천’이란 명칭으로 익숙하다. 봉일천은 서울시, 고양시와 인접해 있고 파주삼릉, 하니랜드, 장곡리저수지를 품고 있다. 봉일천 시내로 진입하기 전 미군기지 캠프하우즈를 만나게 되는데, 이곳이 개발되면 대단지 아파트가 조성돼 지금보다 2배 이상 인구가 늘어나지만 대신 봉일천 중심구역인 1, 6, 7리는 슬럼화가 예상된다.

이에 따라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1, 6, 7리 일대를 근대문화마을로 조성하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마을살리기에 돌입했다. 지역주민, 마을이장, 전통시장상인회, 주민자치위원회가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를 구성하며 근대문화마을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봉일천 숨길’은 ‘역사에도 숨길을 불어넣어야 썩지 않는다’는 의미로 붙여졌다.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주축이 될 봉일천시장(공릉장)은 중부지방 3대 시장 중 하나였다. 19세기 초 간행된 ‘만기요람’은 경기 광주의 사평장-송파장, 안성 읍내장, 파주 공릉장(봉일천장) 등을 전국 최대 장시로 거론하고 파주 봉일천시장은 조정 주도 아래 개설됐다고 기록했다. 승정원 일기에 따르면 영조가 특별히 설치한 조리읍 봉일천시장은 지금도 2, 7일에 5일장이 열리고 있다.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지도.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지도. 사진제공=파주시

◇ “역사문화에도 숨길을 불어넣어야 썩지 않는다”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작년 12월 봉일천 전통시장 구역을 중심으로 산재한 유-무형 근대문화자원을 스토리텔링 콘텐츠로 개발해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자 구성됐다. 봉일천 전통시장은 2018년 11월 전통시장으로 인증되고 현재 136개 점포가 입점해 있다.

김훈민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장은 2016년 마을살리기 최고지도자 과정에 참여해 조리읍 역사문화자원을 찾게 됐고 주민을 설득해 조리읍의 마을 스토리를 토대로 역사적 가치를 되살려 마을살리기에 나섰다.

조리읍 ‘봉일천 숨길’ 대상지는 봉일천주재소, 민영달불망비, 3.1운동기념비, 송암농장터, 봉일천주막, 1사단CP(봉일천초등학교), 대원교회, 봉일천시장(공릉시장) 등 봉일천 시장을 중심으로 밀집된 역사자원 총 8곳이다. 이들 장소는 각기 다른 사연을 품고 있다.

파주시 조리읍 민영달 불망비.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민영달 불망비.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3.1만세운동 기념비.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3.1만세운동 기념비.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주재소(예상 이미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주재소(예상 이미지). 사진제공=파주시

◇ 민영달-심상각-조병학 숨결 부활

봉일천 숨길에는 1894년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민영달 불망비’가 있다. 조리읍행정복지센터 앞 오른쪽 길가에 자리한 ‘민영달 불망비’는 조선 말기 문신이자 명성황후의 종형제로 내무대신을 지낸 민영달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으며 지역 민원을 처리해준 데 대한 감사 마음을 담고 있다. 민영달은 당대 정객인 이완용, 이윤용을 조종할 정도로 수완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1986년 대한민국 정부는 독립유공자로 지명했다.

조리읍의 봉일천주재소는 공릉장터에서 3000명이 만세시위를 하던 중 일본순사의 총탄에 6명이 순국한 역사적 장소다. 봉일천 장날의 만세사건은 심상각이 주도하고 김웅권, 권중환, 심의봉, 이근영, 이종구, 유영 등이 뒤따라 광탄면 발랑리에 본부를 두고 파주는 물론 고양 일부까지 대규모 시위 전개를 기획했다.

1919년 3월28일 거사 당일 광탄면 등지에서 2000여명이 봉일천시장으로 몰려와 그곳에 있던 1000여명과 합세해 3000여명이 격렬한 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이 와중에 시위 군중이 봉일천 헌병주재소를 공격하자 일본 헌병이 시위대를 향해 무차별 발포해 6명이 사망하고 수십명이 부상당했다. 이날 시위는 파주에서 전개됐던 3.1운동 중 가장 크고 치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78년 3월1일 3.1운동 기념비가 건립됐다. 3단으로 된 대석 위에 비신을 올렸으며 전면에 ‘파주 3.1운동 기념비’라 새겨져 있고 음기로 비문의 글이 적혀 있다. 기념비문 뒷부분에는 파주 3.1운동을 주도한 심상각 선생을 비롯해 19인의 명단과 당시 만세를 부르다 희생된 김남산 선생 등 8인의 명단, 옥고를 치룬 22명의 명단 등 파주지역 3.1운동 관련 인물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광복 이전을 기준으로 조리읍 봉일천에 위치한 마지막 역사 명소는 ‘송암농장 터’이다. 봉일천 4리에 위치한 송암농장은 1930년대 초 조병학씨가 조리읍 봉일천4리의 전답 약 13만평에 설립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경지정리작업을 시행한 곳이기도 하다. 당시 ‘경지정리’는 혁신적인 과학영농이었는데 경지정리에 따른 소출 증가로 재산도 많이 불어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학생들이 경지정리 기법을 배우기 위해 송암농장으로 견학을 왔다고 전해진다.

조병학씨는 일제 말기 일제 탄압에 의해 어려움에 빠진 세브란스의과대학에 파주 땅과 양주, 당진, 아산 등 농지와 대지 60만평을 기부하고자 했으나 갑자기 병환을 얻어 작고했다. 이후 아들 조중환씨가 선친 유언을 받들어 아버지 이름으로 재산을 기부했다는 내용이 ‘연세대학교 백년사’와 ‘의학백년사’에 기록돼 있다. 봉일천4리는 조병학씨의 호 ‘송암’을 따서 송암동이라 불린다.

파주시 조리읍 공릉시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공릉시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송암농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송암농장.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대원교회.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대원교회. 사진제공=파주시

◇ 대원교회-봉일천초등학교-조지훈 초대

조리읍 대원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대원교회는 1901년 설립돼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다. 1949년 대원교회 소속 주일학교 학생 36명이 봉일천초등학교에 다녔는데 우상 숭배라고 해서 국기배례를 거부하다 퇴학 처분을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승만 대통령이 국기배례를 주목으로 바꾸는 국민의례를 결정해 학생들이 다시 복교됐다고 한다. 대원교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 방식을 바꾼 곳이다.

봉일천은 6.25전쟁 발발 직후 일선에서 밀려 내려오던 1사단이 1950년 6월28일 봉일천국민학교에 1사단CP를 차리고 마지막 저항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국군은 수일간 적과 맞서 끈질기게 싸웠지만 더 이상 항전이 불가함을 알고 후퇴를 결행, 경기 시흥에서 합치거나 지리산에 들어가 게릴라가 되자며 철수한 곳이 바로 봉일천이다. 1사단CP는 1사단이 6.25전쟁 역사상 최초의 반격작전을 짰던 곳으로 역사적 의미가 있다.

한국 현대시 주류를 완성했다고 평가받는 청록파 시인 조지훈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봉일천 주막’도 문화역사자원이다. 조지훈은 ‘봉일천주막에서’를 통해 “여기는 파주땅 봉일천리, 주막집 툇마루에 앉아 술을 마신다”라고 읊었다. 현재는 터만 남아있지만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조지훈 시인 작품을 토대로 봉일천 주막을 복원해 마을 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 주막(예상 이미지). 사진제공=파주시
파주시 조리읍 봉일천 주막(예상 이미지). 사진제공=파주시

◇ 11월 근대문화거리축제 개최…봉일천주막 복원

조리읍 마을공동체협의회는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를 1단계(단기), 2단계(중기), 3단계(장기)로 나눠 마을살리기에 나설 계획이다. 우선 1단계 단기계획으로 공동체 활동과 근대문화유산을 홍보하기 위해 마을소식지를 발행할 예정이다. 마을소식지는 주민자치위원회에서 2019 파주시 주민자치 우수사례 대상을 수상하며 받은 상금 500만 원으로 발행되며 ‘봉일천 숨길’을 알리는 첫걸음이 될 것으로 보인다.

‘봉일천 숨길’ 프로젝트 2단계 중기단계로 오는 11월 근대문화거리축제를 개최한다.
타 지역과 차별화된 거리축제를 기획하기 위해 근대문화 유-무형 역사자료를 이용한 축제 콘텐츠를 개발할 방침이다. 주민자치위원회와 전통시장상인회, 지역공동체가 협업해 공릉장터 재현, 근대의상 체험, 봉일천 숨길 탐방 등을 선보일 계획으로 스태프와 운영진이 일본헌병, 독립군, 학생 등 의상을 입고 축제를 진행할 예정이다.


봉일천 숨길 3단계 장기계획은 조지훈 시인의 작품에 등장하는 봉일천 주막을 복원해 공릉장터국밥을 재현하고, 봉일천주재소를 복원해 근대문화전시관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kkjoo0912@fnnews.com 강근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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