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단독] 공들여 만든 '상어' 책, 창고에 처박힌 이유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06 09:30

수정 2020.06.06 22:55

지성사 "유모 본부장 연락받고 제작"
자원관 "절차 부적절"··· 중징계 처분
6개월째 연락없어··· 출판사는 '울상'
[파이낸셜뉴스] 한국에서 찾기 힘든 상어에 대한 서적인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가 반년 째 창고에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성사가 공들여 출판물로 냈음에도, 저자 유모씨가 속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 내부 문제로 출판사 측에 판매중지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자원관은 반년 가까이 지성사에 판매중지에 대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어, 책이 언제쯤 독자들과 만날 수 있을지 미지수인 상황이다. 이 책 출판을 위해 매달린 지성사는 피해를 고스란히 껴안을 수 밖에 없는 처지다.

지성사가 지난 1월 펴냈다 회수한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책 표지. 지성사
지성사가 지난 1월 펴냈다 회수한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 책 표지. 지성사

■한 달 공들여 기껏 내놓았더니···

6일 출판계에 따르면 지난 1월 출판된 자연과학도서 ‘상어, 세상에서 가장 신비한 물고기’가 창고에서 잠자고 있다. 상어와 관련한 몇 안 되는 양질의 대중서로 주목받았으나 일찌감치 일선 서점에서 회수조치된 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공동저자 중 한 명인 유모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해양생물연구본부 본부장이 적절한 절차를 밟지 않고 저작자로 이름을 올리면서 비롯됐다. 자원관 측이 출판사에 유 본부장이 적법한 권리자가 아니고 절차 역시 부적절했다며 계약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통보한 것이다.

유 본부장이 해당 연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등 출판에 기여한 건 사실이지만, 저작권자는 자원관이 돼야 한다는 게 이유다.

지성사 관계자는 “유 본부장에게 연락이 와서 책을 1월에 출판해야 한다고 일정을 정해줘서 다른 일도 미뤄가며 서둘러 준비했다”며 “본부장이란 직함을 믿고 일을 진행한 것인데 내부 문제로 책이 출판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이어 “상어와 관련해선 한국에선 찾아보기 힘든 좋은 책을 만들었는데 (자원관이) 6개월째 결정을 못 내려 1000권 넘는 책이 창고에만 있다”며 “세금을 받아쓰는 기관이 이렇게 일처리를 해서야 되겠나”하고 분개했다.

유 본부장이 권한 없이 책을 출판했다며 중징계 처분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책 회수요청 반년이 다 되도록 출판사 측에 해당 책 유통과 관련한 제안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fnDB
유 본부장이 권한 없이 책을 출판했다며 중징계 처분한 국립해양생물자원관은 책 회수요청 반년이 다 되도록 출판사 측에 해당 책 유통과 관련한 제안을 하지 않고 있는 상태다. fnDB

■유모 본부장은 '중징계'

앞서 자원관은 지난 2월부터 보름여 동안 내부감사를 벌여 유 본부장에게 중징계를, 계약 부서 실무자에겐 경고 처분을 내렸다.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책을 출판·유통되도록 해 자원관 등 적법한 권리자의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게 징계의 이유다.

하지만 징계 이후 2개월이 지나도록 자원관은 출판사에 아무런 통보를 하지 않고 있다. 계약기한을 맞추려 책을 서둘러 출판한 지성사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이다.

그렇다고 자원관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기엔 부담이 적지 않다. 피해금액보다 감당해야 할 비용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들과 지속적으로 거래해온 지성사 입장에선 기관과 소송을 벌이기에도 부담이 적지 않다.

책의 실제 저자인 유 본부장이 자신의 성과물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일부 절차상 오류를 범했다는 이유로 중징계까지 한 것이 적절했느냐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유 본부장은 자원관에 재심을 신청한 상태로 알려졌다.

한편 자원관은 내부적으로 절차를 밟아 사건을 매듭짓겠다는 방침이다. 자원관 관계자는 “저작권법 위반 혐의로 보면 지성사가 주범이고 유 본부장이 종범인 상황이라 외부기관에 조사를 의뢰할 실익은 없다고 판단했다”며 “내부에서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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