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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권대희 사건' 병원 "출혈 더 적었다" 감정인 "입장바꿔 생각해봐"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20 14:30

수정 2020.06.20 16:37

'권대희 사건' 성형외과 신청 감정회신
감정인 "수술 후에도 면밀한 관찰 필요해"
'2000cc만 흘렸다' 주장에 질책성 답변도
재정신청·형사1심 결과에 영향 가능성
[파이낸셜뉴스] '고 권대희씨 사망사건' 민사재판 당시 병원 측 감정회신에서 병원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확인됐다.

특히 흡인장치에 담긴 혈액량 외에도 수술부위 근처 조직으로 출혈이 진행될 수 있어 면밀한 관찰이 필요했다는 내용이 확인돼 관심을 모은다. 성형외과에서 중앙대학교 응급실로 이송됐을 당시 얼굴과 목부위에 부종이 상당했던 것이 내부 출혈이 외부로 배액 되지 않아 발생한 것일 수 있다는 언급도 확인된다.

한 기관 감정회신에선 ‘출혈량이 기존에 알려진 것보다 적다’는 취지로 병원 측이 질의하자 감정의가 질책성 답변을 한 내용까지 발견된다. 집도의 자신에게 그만한 출혈이 있었어도 수혈을 안 했겠냐는 취지의 답변이다.

권씨가 수술 중 흘린 피가 45kg 성인 여성 전체 혈액량인 3500cc를 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권씨는 이 병원에서 한 차례도 수혈을 받지 못한 바 있다.


본지는 지난 몇 달 간 권대희씨 수술 당시의 CCTV영상 및 의무기록지, 관련자 증언 등을 모두 분석해 관련 보도를 이어왔다. 이번 보도는 권씨 유족과 경찰이 각각 별도의 전문기관에 감정을 신청해 받은 회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사진=김성호 기자
본지는 지난 몇 달 간 권대희씨 수술 당시의 CCTV영상 및 의무기록지, 관련자 증언 등을 모두 분석해 관련 보도를 이어왔다. 이번 보도는 권씨 유족과 경찰이 각각 별도의 전문기관에 감정을 신청해 받은 회신 내용을 분석한 결과다. 사진=김성호 기자

■끼니 아껴 모은 돈으로 수술 받았는데

20일 본지가 민사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8년 권씨를 수술한 성형외과 측이 전문 감정기관에 감정을 신청해 받은 회신내용을 입수해 분석한 결과 의료진의 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내용이 다수 들어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권대희 사건은 지난 2016년 경희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고 권대희씨(당시 25)가 군 전역 후 모은 돈으로 가족 몰래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은 뒤 중태에 빠져 49일 만에 숨진 사건이다. 하루 한 끼만 먹어가며 각종 아르바이트를 통해 모은 돈으로 수술을 받았지만 상담 때 들은 말과 달리 집도의가 뼈만 절개하고 나가버리고 경력이 일천한 20대 일반의가 수술을 이어받는 등 총체적 부실 속에 수술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수사결과 권씨 수술 당시 동시에 진행된 수술만 3건으로, 집도의 장모씨와 마취과 의사 이모씨, 그림자의사 신모씨가 수술방을 돌아다니며 연속으로 수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의사가 자리를 비운 가운데 간호조무사 홀로 수술실에 남아 권씨를 지혈한 시간만 35분에 이르렀다. 권씨는 이 같은 사실을 수술 전에 듣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병원 의료진 일부는 현재 형사1심에서 이 같은 수술행태를 ‘분업화’라며 업무상 과실이 없다고 다투고 있다.

현재 사건은 의료진의 업무상 과실치사와 의무기록지 허위기재 등 가벼운 처벌이 예상되는 혐의로 형사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당시 부장 강지성·현 부장 이창수) 소속 성재호 검사는 상해치사나 사기는 물론 핵심쟁점으로 떠오른 무면허 의료행위 교사·방조 혐의도 적용하지 않아 유족의 분노를 샀다. 전문기관 감정과 경찰의 기소의견 송치를 뒤집은 결정으로 본지가 당시 불기소처분이유서를 단독 입수해 보도해 논란이 된 바 있다.

권씨 유족 측은 병원 측 변호사 윤모씨와 사건을 수사한 성 검사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사법연수원을 함께 나온 동기동창으로 '봐주기 수사'가 의심된다며, 불기소 처분의 당부를 가리는 재정신청을 서울고등법원에 접수한 상태다. <본지 2월 22일. ‘[단독] 법원 '권대희 사건' 불기소 들여다본다... 성재호 검사 녹취록 증거 제출’ 참조>

지난 2016년 서초구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중태에 빠져 사망한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당시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수술실 CCTV 화면 캡처.
지난 2016년 서초구 한 성형외과에서 수술 중 중태에 빠져 사망한 고 권대희씨를 앞에 두고 당시 간호조무사가 화장을 고치고 있다. 수술실 CCTV 화면 캡처.

■책임 피하려 물었는데 줄줄이 '문제 지적'

최근 본지가 단독 입수한 순천향대학교 병원과 이화여자대학교 부속 목동병원 감정회신에는 재정신청에서 유족 측 입장이 반영될 가능성이 있는 사실이 여럿 발견돼 눈길을 끈다. 권씨 사망에 성형외과 및 의료진의 과실이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질문한 내용이 도리어 중대한 과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2018년 4월 순천향대학교 서울병원 응급의학과 박모 교수가 작성한 병원 측 신청 감정회신에서 박 교수는 ‘(당시 권씨 상태가) 빠른 수혈로 생체징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면서 출혈부위에 대한 추가적인 지혈이 필요했을 것’이라며 ‘수액투려량을 감안하더라도 혈액 검사상의 헤모글로빈과 헤마토크리트 수치는 환자가 저혈량성 쇼크 상태임을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시 성형외과에선 권씨가 수혈 받을 수 있는 혈액이 준비되지 않은 채 수술을 진행해 권씨는 단 한 차례로 수혈을 받지 못한 바 있다. 권씨 수술은 오후 4시 17분 끝났는데,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이송을 요청한 밤 11시 29분에야 수혈할 수 있는 혈액이 도착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의료진은 이 혈액조차 권씨에게 수혈하지 않았다.

앞서 경찰과 유족 등이 서로 다른 전문기관에 요청해 받은 감정서에선 각 ‘오후 5시 이후’와 ‘늦어도 오후 9시’에는 수혈이 이뤄졌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다.

병원 측 요청 감정서에선 환자가 흘린 피가 봉합된 상처부위 밖으로 흘러나오지 못했을 수 있다는 추정도 확인할 수 있다. 박 교수는 ‘환자의 얼굴과 목부위에 부종이 상당했다는 기록으로 미루어볼 때 출혈이 잘 배액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배액백의 혈액량만으로 환자의 출혈량을 가늠하기 어렵다’고 적고 있다.

이는 총체적 부실이 드러난 수술 뿐 아니라 이후 회복과정에서도 환자의 상태에 대한 적합한 관리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을 내보인다. 실제 오후 9시 이후에 회복실에 있던 환자의 맥박과 호흡이 떨어지는 등 이상 징후가 있었고, 환자의 상태가 좋지 않아 수술이 종료되고도 3시간 이상 회복실에 올라가지 못하는 등 문제가 있었음에도 권씨의 상태를 체크한 의료진이 전무했다는 사실이 환자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한편 경찰 조사결과 환자를 두고 퇴근한 집도의 장모 원장이 병원에 있던 간호조무사에게 환자에게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시각은 오후 10시 30분께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장모 원장이 수술실로 돌아온 시각은 그로부터 47분이 더 흐른 뒤인 11시 27분께였다. 119 신고 접수는 장모 원장이 온 뒤에야 이뤄졌다.

17일 밤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자택에서 권씨가 수술 중 흘린 혈액과 안면윤곽수술의 평균 실혈량을 비교하기 위해 붉은 물감을 푼 물을 종이컵에 부어보이고 있다. 권씨가 수술 중 흘린 혈액 추정치인 3500cc(종이컵 약 20개)와 평균 실혈량 300cc(종이컵 2개)가 확연히 비교된다. 사진=김성호 기자
17일 밤 권대희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자택에서 권씨가 수술 중 흘린 혈액과 안면윤곽수술의 평균 실혈량을 비교하기 위해 붉은 물감을 푼 물을 종이컵에 부어보이고 있다. 권씨가 수술 중 흘린 혈액 추정치인 3500cc(종이컵 약 20개)와 평균 실혈량 300cc(종이컵 2개)가 확연히 비교된다. 사진=김성호 기자

■'2000cc만 흘렸다' 주장에 질책성 회신

병원 측이 출혈량을 실제보다 적은 1000~2000cc로 상정하고 질의한 내용도 확인됐다. 2019년 3월 권대희 사건 민사1심 재판부에 제출된 이화여대 서울병원 감정서에선 ‘출혈량이 1000~2000cc라고 하더라도, 얼굴뼈 수술에서 날 수 있는 출혈량보다 매우 많은 것으로 생각된다’며 ‘메이저 수술에서 출혈이 많이 되는 경우와 맞먹는 출혈량이라 생각한다’는 문장이 등장한다.

이는 문제 병원 측이 ‘세척액의 양 2000cc를 고려하면 실제 출혈량은 1000~2000cc’라며 질의한 내용으로, 지난 보도에서 살폈듯 실제 출혈량이 3500cc를 넘어설 가능성을 고려하면 그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본지 6월 13일. ‘[단독] 많은 피 쏟았다.. 충격 더하는 '권대희 사건'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감정회신을 작성한 감정인은 ‘(1000~2000cc의 출혈이 발생했다 해도) 즉시 피검사 확인 및 출혈이 멎지 않는 경우 수혈에 대한 적극적 준비, 바이탈(생체징후) 체크 등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라며 당시 권씨 상황이 심각했음을 확인한다. 실제로 권씨 수술 당시 혈압과 맥박 등 생체징후를 확인해야 할 마취과의사는 여러 수술실을 오가느라 권씨가 얼마나 피를 흘렸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원장 장모씨와 그림자 의사 신모씨 등도 관련된 조치를 하지 않았다.

이 감정서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출혈량이 알려진 것보다 적다고 주장하는 병원 측에 감정인이 도리어 질책하는 듯한 답변을 보낸 부분이다. 감정인은 ‘질문자(민사 피고인 병원 측)에게 반대로 본인(질문자인 성형외과 원장)에게 혹은 본인의 환자가 1000~2000cc의 출혈량을 보인 상황에서 수혈을 안하는 것이 맞는지에 대해서 반대로 제가 묻고 싶다’라며 과실책임을 피하려는 병원 측 주장을 일축한다.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져 사망한 고 권대희씨가 수술 중 흘린 피와 통상 같은 수술로 흘릴 수 있는 피 양을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비교한 모습. 사진=김성호 기자
2016년 신사역 인근 한 성형외과에서 안면윤곽수술을 받다 과다출혈로 중태에 빠져 사망한 고 권대희씨가 수술 중 흘린 피와 통상 같은 수술로 흘릴 수 있는 피 양을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가 비교한 모습. 사진=김성호 기자

■500cc만 흘려도 많이 흘린 건데

한편 통상적인 안면윤곽수술은 출혈량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법제이사 김선웅 원장은 평균 200cc 정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다른 전문의들도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통상 출혈이 많은 수술은 아니라는데 동의하는 편이다. 위 감정인 역시 ‘출혈량이 일반적인 턱뼈 수술에 비해 매우 많았던 것은 사실’이라고 확인한 바 있다.

이처럼 수술 당시 흘린 출혈량이 통상의 경우보다 매우 많았고, 흡인장치 3000cc들이 통에 담긴 혈액을 두 차례 비운 사실, 이 외에도 바닥에 고인 피를 10여 차례나 밀대걸레로 닦아낸 사실, 무엇보다 환자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수술 이후 3시간 이상 회복실로 옮겨지지 못했음에도 이를 인지한 집도의와 그림자의사 등 의료진이 권씨를 두고 퇴근해 버린 건 이들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가 인정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러한 사실은 서울고등법원이 접수한 간호조무사의 무면허 의료행위 및 그 교사·방조 혐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인 환자를 35분 간 간호조무사 홀로 지혈하도록 하고, 추가적인 관리가 필요한 환자를 간호조무사 감독 아래 놓아둬 환자가 중태에 빠지게끔 했다고 인정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권씨 어머니 이나금씨(60·여)는 “온 몸의 피가 60%가 넘게 빠져나갔는데도 피 한 방울 주지 않고서 퇴근해버린 의사들이 법적인 잘못은 없다고 저러고 있다”며 “대희랑 2살밖에 차이가 안 나서 사실을 말하고 사과해줄 거라고 기대했던 그림자 의사까지 사과 한 마디 없이 뻔뻔히 재판에 오고 그냥 나가버리는 모습을 보며 이 사람들은 정말 사람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분개했다.

이씨는 진정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는 이들 의료진에게 법원이 제대로 처벌을 내려야 한다며 법원과 검찰, 대학가 등에서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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