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김훈 "역사 이전의 이야기 통해 현시대의 폭력과 야만을 비추려 했다"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6.18 13:48

수정 2020.06.18 13:48

작가 김훈 / 파람북 제공
작가 김훈 / 파람북 제공
"내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어떤 인간 집단들 사이에 존재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적대감, 이 적대시하는 뿌리에 대한 무서움, 이 세상의 기초를 이루고 있는 야만적 폭로. 이 양극이 부딪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작가 김훈(72)이 신작 장편소설 '달 너머로 달리는 말'(파람북)을 들고 돌아왔다. 그간 역사적 인물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던 그는 이번 소설에서 완전한 판타지의 세계로 향하며 새로운 문학 세계로의 문을 열어 젖혔다. 김훈은 이 소설의 집필을 마치기까지 3년 이상의 시간을 보냈다. 그 와중에 지난 겨울 심장 질환으로 한 달간 입원하고, 이후 통원 치료를 받기도 했다.

지난 16일 서울 서교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훈은 "이번 작업을 하면서 건강이 악화돼 갈팡질팡했던 적도 있다"며 "책을 써서 세상에 내보내는 일이 그걸로 끝을 내야 하는데, 이런 자리를 만들어 글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한다는 것은 매우 쑥쓰럽고 어색한 자리라고 생각한다.
다신 이런 자리를 하지 않으려고 매번 결심을 했는데 또 세속의 일이란 것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고 해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글에 관한 나의 사사로운 성향을 말하는 것이 가치가 있는지 어떤지도 잘 모르겠다. 이런 자리에서 사람이 과장되지 않고 정직하게 말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말을 해보겠다"며 신작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이번 소설에서는 역사 이전, 시원(始原)의 한 지점을 배경으로 유목 집단인 북의 초나라와 농경 집단인 남의 단나라가 전쟁을 벌인다. 서로 다른 가치관, 야만과 문명이 부딪치면서 세상과 인간의 공허한 민낯을 드러낸다. 김훈은 "이번 소설은 인간의 문명을 그리고 있는데 그에 대한 판단은 유보하고 있다"며 "고대사에서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의 사람들은 수백년간 싸우는데 보면 거의 매달, 매일 싸운다. 삼국사기엔 '피가 강물처럼 흘러 방패가 떠내려갔다"는 시도 있는데, 불교를 국교로 부처의 자비를 내세웠던 나라들조차 어떻게 이렇게 싸울 수 있는지, 이 세계의 기초로서 폭력과 야만의 의미, 또 공포심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끝없이 짓밟히면서도 도망치고 저항하는 모습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달 너머로 달리는 말/김훈/파람북
달 너머로 달리는 말/김훈/파람북
한편 이 소설의 중심에는 두 마리의 말도 등장한다. 이 두 말은 초와 단의 장수를 태우고 전장을 누비며 인간의 참혹하고 허망한 전쟁을 목도하고 전후의 폐허에서 조우한다.

김훈은 "말에 대해서 사사로운 체험이 있다. 10년 전 미국 그랜드 캐년에 인디언들이 사는 마을을 여행하다가 저녁 무렵에 야생말들을 봤는데 수백 마리의 말들이 어둠속에서 각각 홀로있는 것처럼 아주 조용하게 어둠을 맞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언젠가 저 말들에 대해 써야겠다는 이상한 충동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말에 대해 공부하면서 문명과 야만의 동반자로서의 말, 인간에게서 탈출하는 말의 자유를 생각했고 새로운 시공간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소설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말을 길들이기 시작하던 역사의 시작점을 그려낸 작가는 "현대의 야만도 초원에서의 야만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인류사의 모든 혁명은 인간이 약육강식을 견딜 수 없기에 벌어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은 약육강식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지 못했다"며 "결국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체념하는데 이것이 일상화되고, 제도화되어서 '이 세계는 본래 이렇게 생겨먹은 세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시대의 야만성이 선명하고 분명하게 보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훈은 특히 코로나 시대를 맞이하면서 시대의 야만성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결국 이 사태로 인해 세계의 약육강식이 심화되고 굳어질까 걱정된다"며 "코로나에 이어 최악의 더위도 다가오고 있는데 결국 이는 최하층부를 강타하게 될 것이다.
어떻게 이 시기를 지내게 될지 걱정이다. 결국 인간의 선의에 호소해야 하는데 우린 역사적 교훈이 없고, 무조건 양보를 바라는 방식으론 해결할 수 없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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