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스포츠일반

국대 감독도 반한 이정후 스윙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성일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7.15 13:31

수정 2020.07.15 13:31

[파이낸셜뉴스]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10호 홈런을 터트린 이정후. /사진=뉴스1화상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와의 경기에서 10호 홈런을 터트린 이정후. /사진=뉴스1화상


30살의 장효조(당시 삼성)는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다. 장타력과 정확도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 갈 수 있을까. 30살이면 한창 타격에 물이 오를 시기지만 1986년 무렵엔 달랐다. 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5년 째.

아직 아마야구의 잔재가 남아 있던 시절이었다. 30살이면 슬슬 퇴보하는 느낌이었다. 장효조는 교타자의 아이콘이지만 1983년 데뷔 첫 해 18개 홈런(3위)을 기록한 홈런 타자이기도 했다.

장효조는 만 29살이던 1985년 두 자리 수 홈런(11개)을 때려냈다.
타율도 1위(0.373)였다. 장타율(0.543)은 3위. 이렇게 계속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드는 게 맞는 일일까. 장타력과 정확도 둘 중 하나만 쫓아야 되지 않나. 자칫하면 게도 구럭도 다 놓치고 만다는데.

장효조의 선택은 정확도였다. 장타에 대한 미련은 버리기로 했다. 이후 홈런 수는 6개(1986년) 2개(1987년)로 뚝뚝 떨어졌지만 타격왕 타이틀은 3년 연속 지켜냈다. 특히 1987년엔 3할8푼7리로 생애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1994년 이종범(당시 해태·0.393)의 미러클 시즌 전까진 ‘넘사벽’으로 남았다.

이정후(24·키움)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이정후는 14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NC와의 홈경기서 5회 솔로 홈런을 터트렸다. 4-1에서 팀 승리에 쇄기를 박는 소중한 한 점. 팀을 3연패에서 건져내 더욱 값진 한 방.

이 홈런으로 이정후는 데뷔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홈런을 달성했다. 신인 시절 2개의 홈런에 그친 이정후는 2,3년 째 6개씩의 홈런을 기록했다. 올 해(10개)는 지난 3년 통산(14개) 숫자를 넘길 게 확실하다. 이런 추세면 23홈런도 가능하다.

이정후는 정확도와 장타력 가운데 확실히 전자를 선택했다. 이는 아버지 이종범의 바람이기도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쫓는 위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아버지였기에 일찌감치 하나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이종범은 1994년 타격 1위(0.394) 홈런 4위(19개)에 올랐다. 1996년과 1997년 25개(3위) 30개(2위)로 홈런 수를 끌어 올렸지만 더 이상 타격왕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이후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로 이적했다.

이정후는 2017년 179안타를 생산했다. 아버지 이종범이 MVP를 차지한 해 세워진 서용빈(당시 LG)의 신인 최다안타 기록을 23년 만에 경신했다. 섣부르게 메이저리그 진출 가능성이 점쳐졌다.

이종범은 당시 “어림없는 얘기다. 펀치력이 떨어져 메이저리그는 언감생심이다. 정확도를 보완해 나중에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했으면 좋겠다”는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말에 불만이었다고 한다. 겉으로 내색은 하지 못했지만.

대신 이정후는 파워를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에 집중했다. 그 사이 타구에는 점점 힘이 실렸다. 깊숙한 외야 플라이가 담장을 때리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훌쩍 치솟아 관중석에 떨어졌다.

이정후의 최근 스윙은 김경문 국가대표 감독을 흡족하게 만들고 있다. 김경문 감독은 “이정후는 하체의 흔들림이 없다.
아래쪽이 무너지지 않고도 마음먹은 대로 스윙한다. 정확하면서 멀리치는 이유다”고 칭찬했다.
타격 3위(0.357) 장타율 2위(0.613)에 올라 있는 이정후. 두 마리 토끼 모두 사정권이다.

texan509@fnnews.com 성일만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