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가을 지나면 전세 재계약인데 벌써부터 보증금 올려달라고 할까봐 걱정입니다. 주인과 통화해보니 오르는 전세보증금만큼 월세로 돌릴 분위기인데 그러면 월 최소 40만원대에서 60만원까지 반전세로 있어야합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에 거주하는 L모씨는 전세계약 연장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최근 부동산 대책이 쏟아지며 무주택인 자신은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전세계약 만료가 다가오며 오히려 예정에 없던 월세를 내야하는 처지에 놓였다.
15일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정부의 잇단 부동산 대책에 다주택자들이 버티기로 맞서자 전세시장 불안이 세입자들에게 뜻밖의 월세부담을 부르고 있다.
특히 최근 7·10 대책에서 종부세 등 보유세 부담이 더 커지자 집주인들이 이를 월세에 전가하는 ‘반전세’를 밀어부치며 전세입자의 경우 월세 낀 전세주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정부가 증세카드를 꺼내들자 집주인들이 월세카드로 맞서고 있는 셈이다.
■강남은 3건 중 1건인 월세 낀 거래
최근 전세값이 많이 오른 강남3구는 반전세(준전세) 거래가 부쩍 많이 늘었다.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며 지난해 말부터 눈에 띄게 증가하던 준전세 및 준월세는 최근에는 강남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에서 3건 중 1건 꼴로 자리 잡았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가 신고내역에 따르면 강남구 대치동 대장아파트인 래미안대치팰리스의 순수한 전세거래는 4월 6건에서 5월 7건, 6월 9건으로 완만한 증가세를 보였다. 하지만 월세를 낀 준전세는 4월 0건에서 5월 3건 6월 5건으로 증가폭이 훨씬 가팔랐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자료를 봐도 강남구 대치동의 6월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151건으로, 이중 월세가 끼어있는 거래(준전세·준월세)는 56건(37%)에 달했다.
송파구에 있는 리센츠 아파트는 월세를 낀 재계약 비율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올해 5월 리센츠 단지의 순수한 전세거래는 39건 이었는데 같은 달 월세가 물려있는 준전세·준월세 거래량은 25건이었다. 전월세 거래량 총 10건 중 4건이 월세를 내는 재계약인 셈이다.
실제 보증금 인상분의 일부를 월세로 돌리는 준전세 거래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리센츠 단지의 2019년 5월 준전세는 6건에 불과 했지만 1년 후인 올해 5월에는 13건을 기록해 2배 이상 늘었다.
■손발 묶인 전세입자 월세 낼수밖에
이같은 현상은 정부의 잇단 대책에 묶여 세입자가 선택할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서울 평균 아파트 매매가는 9억원에 육박하는데 최근 대출규제로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은 40%(15억원 이상은 0%)에 막혀 있다 보니 선뜻 새집을 사기가 어려워졌다. 게다가 전세대출을 받고 있다면 집을 사는 즉시 대출금이 회수되기 때문에 내 집 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다.
청약시장도 서울은 평균 가점이 60점대 후반으로 접근이 쉽지가 않은 데다, 경기권 대부분이 죄다 규제지역으로 묶이다보니 출퇴근이 용이한 수도권 분양도 힘들어졌다.
시행이 확실시되는 전월세 3법도 악재다. 임대사업자 제도 폐지 역시 양도세 비과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분이 월세로 전가될 수 있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기본적으로 저금리와 공급부족이 맞물린 상황에서 집주인의 보유세 부담은 증가하고, 임대사업 퇴로가 막혔다”며 “전월세 3법이 시행돼 소급적용이 된다며 전세보증금 5% 벽에 막혀 일부에서는 이면계약으로 월세부담을 세입자에게 전가하는 일도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kimhw@fnnews.com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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