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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고아 보호'서 시작한 아동복지법, 아동권리강화 법적장치 필요"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김주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2 17:45

수정 2020.09.02 17:45

<3부> 아동학대 근절책 찾아라
2. 아동중심 복지정책 짜라
조두순 사건 피해자 나영이 주치의였던
신의진 교수 인터뷰
매년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
정부-국회 대책 실효성 의문
조기발견·예방 위해서는
학대 가해 부모 의지 상관없이
강제조사할 수 있게 시행령 바꿔야
피해아동 심리치료 전문가 육성도
"‘전쟁고아 보호'서 시작한 아동복지법, 아동권리강화 법적장치 필요" [아동학대 더이상은 안된다]
충남 천안 아홉살 아동 여행용가방 속 질식사 사건, 쇠사슬 생활 중 4층 베란다로 탈출을 했던 경남 창녕의 아동학대 등 아동을 상대로 한 잔혹한 사건이 국민의 공분속에 정국을 뜨겁게 달궜다. 하지만 코로나19 등 메가톤급 이슈가 이어지면서 벌써 여론에선 아동학대는 잊혀진 이슈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 조두순 사건 피해아동의 주치의였던 신의진 연세대 소아정신과 교수(19대 국회 새누리당 의원)는 2일 파이낸셜뉴스와 인터뷰에서 "국회에서도 이슈가 있을 때만 단발성 법안이 발의되고 곧 잊혀지는데, 이와 관련해 장기적인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두순 사건은 2008년 경기 안산시에서 8세 여아를 납치·성폭행한 사건으로 당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신 교수는 피해아동의 주치의 활동 뒤 국회에 입성해 제도개선을 위해 노력한 주인공이다.

신 교수는 "현장에서 가장 무기력함을 느끼는 점은 매년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건에도 제도적 지원이 없다는 것"이라고 일침을 놨다.


신 교수가 말하는 아동학대 제도 개선과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아동학대가 사건의 특성상 타인보다 피해아동의 친권자인 부모에 의해 자행되는 비율이 많다는 점 때문이다. 신 교수는 친권자인 부모가 학대 피해 조사에 불응하고 저항하면 이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다.

신 교수는 "아동학대 조기발견을 위해 저항하는 부모의 의지에 상관없이 조사가 가능토록 시행령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신의진 교수와의 일문일답.

ㅡ현장에서 보고 느낀 아동학대의 현실은 어떤가.

▲끔찍한 사건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될 때마다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지만 곧 잊혀지고 나면 제도적 개혁은 흐지부지되는 패턴이 무한반복되는 현상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특히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고 개인 간 유대감이 디지털 기기로 대체되면서 개인의 마음건강 문제가 더 심각해지면서 자녀를 학대하는 부모가 증가하고 이웃들의 감시도 더 느슨해졌다. 아동학대 사건 신고비율은 선진국의 경우 70% 가까이 되지만 한국은 아직 30% 이하에 그치는 수준이다.

ㅡ2020년 현재, 우리나라의 아동학대 관련 정책 수준을 평가한다면.

▲1998년 한국 입양아의 적응에 대한 논문을 쓰면서, 당시 한국이 아동복지에 쓰는 예산이 너무 적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제도나 예산에서 아동들이 극히 소외돼 있었던 것이다. 현재 부모들에게 직접 지급되는 보육비, 양육비로 인해 아동 관련 예산이 증가된 것으로 보이지만, 아동복지 자체에 쓰는 비용은 예전과 비슷하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과 비교했을 때 일본이 우리나라 GDP의 3배에 불과한 데 비하면 우리나라가 아동학대 예방과 처리에 쓰는 예산은 일본의 70분의 1 수준이다.

ㅡ매년 반복되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

▲아동학대 근절 정책은 크게 △아동학대 예방·조기발견을 위한 정책 △학대 이후 아동의 보호와 치료, 가해부모 교정, 가해부모와 아동의 관계개선 및 전문적 모니터링 △학대의 대물림 방지책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세가지는 모두 중요한데, 현실은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것이 없다. 그나마 지난 2014년 아동학대처벌특례법이 신설된 이후 학대부모들로부터 아이들을 분리해 가해부모를 조사하는 길이 겨우 열렸다. 그러나 가해부모들은 일반 부모들과 달리 정서·분노조절 능력이 극히 미약한 경우가 많아 경찰이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과 함께 조사하러 나가도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다. 법에 제대로 보장돼있지 않고 이에 대한 지원이 없으니 현장에서는 무기력함을 느낀다.

―아동학대 가해자 대부분이 '친부모'라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전 세계적으로 아동학대 가해자는 아동을 보호하는 위치에 있는 자(친부모 포함)가 대부분이다. 아동과 매일 접촉을 하는 위치에 있으니 폭력을 행사하기 쉬운 것이다.

―부모의 훈육과 학대는 어떻게 구별해야 하나. 아울러 부모의 훈육권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하나.

▲훈육 상황이라고 해도 아동이 육체적·심적으로 고통을 느낄 정도로 야단 치고, 때리고, 방임하면 학대라고 본다. 물론 이런 상황이 한두번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학대다. 이 같은 학대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제도가 필요하다. 현재 예산과 제도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새로운 틀을 짜야 한다.

―매 국회마다 아동학대 이슈가 있을 때면, 앞다퉈 관련법안 발의에 분주하다. 그러나 정작 본회의 통과율은 저조한 이유는 뭘까.

▲국회의원들이 단발성 법안만 발의를 해서 주목받은 다음 곧바로 잊혀지는 현상은 너무 안타깝다. 그러나 아동학대에 대한 법률 자체는 현재의 아동복지법에 포괄적으로 묶여 있다. 아동복지법의 출발은 6·25전쟁 이후 고아들을 돌보는 기능에서 시작했다. 아동복지법에 아동학대 문제 해결까지 포함시키니 현재 대한민국 아동들은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법적 보호를 받고 있는 셈이다.

―보다 실효성 있는 아동학대 근절을 위해 어떤 법적장치가 필요할까.

▲제가 19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던 당시 발의해 폐기된 아동기본법안과 같은 전반적인 아동보호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꾸는 법이 선행돼야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제대로 된 법적·제도적 틀이 만들어질 것이다. 아동학대 예방과 조기발견을 위해 경찰이 저항하는 부모의 의지와 상관없이 조사가 가능하도록 시행령이 바뀌어야 한다.
또 선진국처럼 민관 협동사업을 통해 학대 가해부모 조기신고 및 아동양육 관련 문화를 바꿔야 한다. 지금처럼 전문성이 부족한 심리치료사를 무작정 배정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을뿐더러 학대아동에게 2차 가해 우려도 있다.
아동심리 치료 전문가 육성이 그래서 필요하다.

ju0@fnnews.com 김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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