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불멸의 존재에 바친 3년, 시련이자 행복이었다" [Weekend 문화]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04 04:00

수정 2020.09.04 04:00

2017년 시작, 베토벤 소나타 전곡 연주 마무리 앞둔
피아니스트 손민수
이달 전국투어가 대장정의 끝
마지막 무대에선 고난도 작품 연주
"32개 소나타 하나하나 별처럼 빛나
그의 마음과 혼 반영하고 싶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 벌어지는 세상
음악가로서 뭘 해야할지 자문
더 순수한 음악으로 내실다질것"
목프로덕션 제공
목프로덕션 제공
"지난 3년은 제 모든 것을 베토벤에 바쳤던 시간이었습니다. 베토벤의 모든 말들을 제 마음 속에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그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며 온갖 시련과 역경을 견뎌내는 인간의 정신과 의지가 순수한 음악으로 투영되는 것을 보았고 조금이라도 그 마음과 혼을 제 음악에 반영하고자 했습니다."

독창적인 해석과 도전적인 테크닉으로 국내외 여러 무대에서 호평을 받아온 피아니스트 손민수(44·사진). 그는 베토벤 서거 190주년인 2017년부터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를 시작해 탄생 250주년인 올해 3년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한다. 오는 11일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앨범인 '베토벤 컴플리트 피아노 소나타' 발매와 함께 이날부터 23일까지 피날레 무대로 통영, 광주, 서울, 인천, 대구로 이어지는 총 5회의 전국투어 여정에 오르는 손민수를 지난 1일 서울 서초동 한국종합예술학교 연구실에서 만났다.

"오늘이 개강인데 학생이 한 명도 없는 학교에 들어서면서 굉장히 낯선 느낌을 받았다"는 손민수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팬데믹의 시대에 오히려 자신에게 음악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됐다"며 "이런 때일수록 더욱 순수한 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내실을 다지고 지켜야할 것들을 지켜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태어나 3살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손민수는 1994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에 수석 입학해 김대진 교수에게 사사한 후 19세에 미국으로 이주해 뉴잉글랜드 음악원(NEC)에서 '건반 위에 철학자'로 불리는 러셀 셔먼과 그의 아내 변화경 교수로부터 오랜 가르침을 받았다. 손민수는 2006년 캐나다 호넨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 우승 및 및 호넨스 프라이즈를 수상하며 국제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수상 직후 한국으로 바로 입국했다면 스포트라이트 세례를 받았겠지만 그는 바로 돌아오지 않고 북미에 남았다. 그가 뉴욕 카네기홀에서 공연할 당시 뉴욕타임스는 "사려깊은 상상력과 시적인 연주"라고 평했고, 2011년에 발매한 바흐 음반에 대해선 '아름답고 명료하며 빛나는 해석을 가진 음반'이라는 평과 함께 그해의 최고의 클래식 음반 중 하나로 선정했다. 그는 미시간주립대에서 5년간 교수로 재임하던 중 2015년 모교인 한예종으로 돌아와 후학 양성에 매진해왔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3년째가 되던 그해 베토벤 소나타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

손민수는 "이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마음먹게 된 밑바탕에는 나의 스승인 셔먼 교수가 자리잡고 있다"며 "미국인 최초로 70대의 나이에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을 녹음하셨는데 그 음반 제작과정에 참여했던 것이 이번 프로젝트에 영향을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연주와 음반 제작을 목표로 도전한다는 것은 연주자에게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를 요구하는 일이다. 단지 연주뿐 아니라 베토벤이라는 인물을 통해 음악사를 재탐색하고 의미를 발견해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손민수는 "베토벤은 내 마음 속에서 가깝게 느꼈지만 또 제일 이해하기 힘들었던 존재였으며 나를 음악가로서 가장 곤혹스럽게 만들고 곤경에 빠뜨리며 한계를 시험했던 존재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 안에서 무한한 음악적인 경험을 하게 해줬고 나를 변화시키고 성숙시킨 존재였다"며 "복잡한 일들이 벌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간다면 음악밖에 없음을 깨닫게 해준 것도 역시 베토벤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마지막 베토벤 소나타 리사이틀에서 손민수는 베토벤 최후의 역작이자 낭만시대의 교량적 역할을 한 3개의 소나타를 연주한다. 32개의 소나타 중 가장 고난도로 알려진 곡들이다. 손민수는 "마지막 3개의 소나타는 베토벤의 꿈과 천국을 향한 소망, 세상을 넘어선 초월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며 "1번부터 끝까지 베토벤의 인생 여정을 통해 마지막 소나타가 만들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32개의 소나타 모두 각각 별처럼 빛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프로젝트가 마무리된 후 손민수는 "연말에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을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후엔 "아마도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연주하는 작업에 돌입하게 될 것 같다"며 "이밖에도 병원 의료진을 위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업을 진행하거나 베토벤이 좋아했던 자연의 가치를 지켜나가고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일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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