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단독] 유령수술 공론화 앞장선 현직 의사 '명예훼손' 혐의 벗어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09.19 15:00

수정 2020.09.19 15:00

11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 검찰 항소 기각
일부 사실관계 달라도 공익성 인정 처벌 못해
재판과정서 불법 유령수술 충격적 실태 확인
''[파이낸셜뉴스] ‘유령수술’의 위법성을 널리 알려온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가 명예훼손 혐의를 일부 벗게 됐다. 1심 재판부가 김 전 이사가 특정 성형외과 및 그 관계자를 비방했다며 명예훼손 혐의로 처벌해달라는 검찰 항소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공표된 내용이 일부 사실과 다를지라도 공공의 이익이 주목적이라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게 판결의 요지다.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의 명예훼손 혐의 공판에서 김 전 이사와 지지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사진=김성호 기자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의 명예훼손 혐의 공판에서 김 전 이사와 지지자들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은 모습. 사진=김성호 기자

■검찰 항소에도 '공익성 우선' 원심판단 수긍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재판장 성수제 부장판사)는 지난 11일 김 전 이사에 대해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명예훼손) 혐의를 묻는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의 무죄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 전 이사는 2018년 2월 4일 새벽 인터넷 포탈사이트에 올라온 한 언론사 기사 댓글란에 ‘여긴 OOO이지만 OOO, OO, OOO, OOO 등등에서 유령수술하다가 죽인 사람 꽤 많다고 알려져 있죠. 복지부는 아예 실태조사도 안 해요. 의사들 사이에서는 대충 2-300명은 죽인 걸로 소문 파다함. 수술하다 죽이고 3억5천 쥐어주고 보험처리 하고 보호자들 입막고 병원장은 보험회사에서 3억5천 돌려받고’라는 내용을 게시했다.

해당 기사는 김 전 이사가 전문가로 직접 출연한 한 방송국 시사프로그램에 대한 것으로, 해당 방송은 성형외과에서 발생한 유령수술 문제를 고발하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해 검찰과 피고인 김 전 이사 측이 제출한 증거자료를 바탕으로 사실관계를 판단한 1심 법원은 200~300명의 사망자를 특정한 내용은 허위로, 사망자 발생 시 유족에게 3억5000만원을 지급하고 이를 보험사로부터 돌려받은 내용은 사실에 부합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고등법원 재판부는 추가 증거를 받아 살펴본 결과 ‘원심의 판단을 수긍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주요 쟁점이 된 부분은 ‘공익성’에 대한 것이었다. 명예훼손이 성립하기 위해선 비방할 목적이 인정돼야 하는데 적시한 사실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인 경우엔 비방할 목적을 부정하는 게 사법부의 통례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김 전 이사가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 자격으로 2014년 유령수술이 불거진 그랜드성형외과에 대한 진상조사에 참여하고, 이후 이를 지속적으로 언론에 공표하는 등 공론화해온 사실을 들어 공익성을 인정했다.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가 지난주 유령수술 의혹을 제기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fnDB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가 지난주 유령수술 의혹을 제기하다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선웅 전 대한성형외과의사회 법제이사에 대한 검찰의 항소를 기각했다. fnDB

■명예훼손 판결에서 확인된 유령수술 실태
재판부는 판결에서 당시 의사회가 꾸린 진상조사위원회가 그랜드성형외과의 전반적인 운영실태를 점검한 결과도 언급해 눈길을 끌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상담을 하고, 실제 수술은 경험이 짧은 성형외과 의사, 치과의사,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등 다른 과 의사가 하는 대리수술이 일상적으로 행해져 왔고 △일상적으로 많은 양의 마취제를 사용하며 주입한 마취제의 양을 기록하지 않았고 △집도의사가 수술 도중에 불려나가 다른 환자와의 상담을 하느라 수술을 중단했다 재개하는 경우도 허다했으며 △수술이 중단되면 환자를 계속 재우기 위해 추가로 마취제를 투여한 사실 △때로는 실습 나온 간호조무사 학원생들에게 마취약을 주사하도록 한 사실 △나아가 그랜드성형외과 뿐 아니라 대형 성형외과 병원에서 대리수술 행태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파악한 내용 등이다.

이러한 행각으로 인해 그랜드성형외과 유모 전 원장은 사기죄로 기소돼 최근 1심에서 징역1년의 실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재판부는 위와 같은 사정을 들어 김 전 이사가 온라인 신문기사에 남긴 댓글이 “시민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공공의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며 검사의 항소를 기각했다.

한편 김 전 이사는 2018년 8월 성형외과 전문의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인 ‘성형코리아’에 ‘2006년 이후 ㄱ성형외과에서 5~10명의 환자가 사망했다’, ‘유령수술이라는 사실을 숨긴 채 무과실 마취사고로 조작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글을 게시했다 명예훼손 혐의로 추가 고발돼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본지 5월 30일. ‘의무기록지 고치고 의사끼리 입 맞추라 지시 "처벌은 없었다"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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