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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소리도없이' 감독 "문승아는 놀랍도록 탁월했다"[인터뷰]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0.22 18:00

수정 2020.10.22 18:16

'소리도 없이' © 뉴스1 /사진=뉴스1
'소리도 없이' © 뉴스1 /사진=뉴스1

[서울=뉴시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뉴시스
[서울=뉴시스] 영화 '소리도 없이'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익숙한 듯한데, 낯설었어요. 낯설다가 기묘해지고, 기묘해지다가 충격적이고, 그런데 웃기고. 중간 이후로 이야기들이 예상할 수 없게 전개됐죠. 도대체 이 감독님은 어떤 분이지? 궁금했어요." 영화 ‘소리도 없이’에서 범죄조직의 뒤처리를 해주는 ‘창복’ 역할의 유재명이 한 말이다.

유아인 유재명 문승아가 주연한 영화 ‘소리도 없이’는 유괴된 아이를 의도치 않게 맡게 된 두 남자가 그 아이로 인해 예상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다. 범죄드라마의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기존 범죄물과 결이 다르다. 예상을 뒤엎는 캐릭터부터 유려한 미쟝센까지 세밀하게 직조된 이 영화는 단지 겉으로 드러난 이야기가 아니라 그 이면을 자꾸 들여다보게 만든다.

홍의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그는 한국예술종합합교 영상원과 런던필름스쿨 영화과에서 수학했으며, 영상광고 제작 프로덕션 등에서 경력을 쌓기도 했다.
2017년 변희봉 주연의 단편 ‘서식지’가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다. '소리도 없이'는 시나리오 상태로 2016년 베니스국제영화제의 '비엔날레 컬리지 시네마 톱12'에 선정됐다. '괴물' '해무' '옥자' '인랑'에 참여한 루이스픽쳐스의 김태완 대표가 제작자로 참여했다.

햇빛 좋은 오후, 천정에 대롱대롱 달린 피투성이 남자 아래로 투명 비닐이 깔리고, 각종 흉기가 가지런히 나열된다. 조폭 무리들의 일이 끝날 무렵, 다리를 저는 시체 청소부 창복(유재명)은 ‘클라이언트’의 눈치를 살피며 박카스를 돌린다. 그들은 보통의 직장인마냥 행동하고, 범죄는 일종의 밥벌이 수단처럼 보인다. 말을 잃은 태인(유아인)은 조폭의 차에서 담배를 훔쳐 피고 창복은 헛바람이 든 태인을 혼낸다. 둘은 고용주의 요구로 어쩔 수 없이 유괴된 아이를 며칠 돌보기로 한다.

영화는 무겁고 어두운 소재를 다루지만 화면은 가족영화처럼 화사하다. 주인공들은 선과 악의 경계에 서 있다. 창복과 태인은 조폭은 아니지만, 악의 언저리에 있다가 악의 없이 범죄에 발을 담그게 된다. 유괴된 아이 초희(문승아)는 우리가 흔히 상상하는 피해자가 아니다. 살아남기 위해 영리하게 행동하고, 역시 의도치 않게 두 남자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킨다. 특히 태인은 초희 덕분에 가족의 따뜻함을 알게 되고, 자기의지를 갖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홍의정 감독은 데뷔작을 연출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으로 ‘아이러니함’을 꼽았다. 그는 “기존 범죄물에서 볼 수 없는 무심하고 일상적인 톤을 사용해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 싶었다”고 전했다.

- 영화를 기획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처음엔 비틀어진 생존 성장물을 쓰고 싶었다.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내가 어디에 있어도, 자라온 환경이나 가치관에 따라 편견을 갖고 상대를 판단한다고 느꼈다. 나는 왜 이런 괴물이 됐을까, 소리도 없이 살살 변해서 (지금의 나와 같은) 형태가 되었구나, 그런 생각에서 시작됐다.

- 데뷔작인데 충무로의 유명 배우들이 붙었다. 시나리오를 읽은 첫 반응은?

배우 유아인이 ‘시나리오가 좋으니까 (수정 없이) 이대로 가면 좋겠다’고 했다. 신인 감독을 지지해주는 사람 같아서 고마웠다. 유재명 배우도 시나리오를 좋게 봐 주셨다. 개인적으론 너무 젊어서 깜짝 놀랐다. 스크린에선 본인보다 늘 나이가 많은 캐릭터를 연기한 것 같다.

- ‘인간은 선과 악이 모호한 환경에서 각자의 생존을 위해 변화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주제 전달을 위해 범죄물이라는 장르를 가져온 것인가?

그렇다. (결핍이 있는) 덜 자란 남자와 어른스런 소녀, 둘을 붙여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사회적 시선에서 봤을 때 사회가 정한 가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범죄물의 형태를 가져왔지만 우리의 일상과 다르지 않게 보이길 바랐다. 자기반성에서 비롯된 영화니까.

- 연출에 있어 아이러니함을 가장 중점을 뒀다고 했는데,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서도 이러한 톤을 유지한다.

캐릭터 설정부터 전반적 형식까지 어떻게 하면 더 어긋나게 만들까 고민했다. 선과 악이 모호하고 뒤죽박죽 섞이길 바랐다. 끔찍한 이야기인데 영화 전체에 밝은 톤을 사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유괴된 아이, 초희의 비중이 꽤 높다.

원래는 초희가 중심인 이야기였다. 초희란 존재는 아이러니의 완성체다. 분명히 약자인데 약자가 아니고, 피해자인데도 새로운 환경에서 주도권을 갖기도 한다. 초희야 말로 사람들이 쉽게 편견을 갖고 볼 수 있는 대상이다.

- 초희가 태인의 집에 오기까지 태인은 여동생과 함께 거의 동물처럼 살고 있었다.

태인을 동물처럼 묘사하고 싶었다. 초희를 통해 가족애와 따뜻함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태인은 환경적 한계로 인해 스스로 (자신이 삶에 대해) 판단할 기회가 없었다. 그런 태생적 결핍 때문에 어떤 욕망을 갖지만 그 욕망의 대상이 (사회적 기준에선 악당이지만) 자기 눈엔 가장 권력자인 조폭이다. 태인의 한계를 깨는 이가 바로 초희다.

- 감독의 의도와 상관없이 영화를 보면서 밥벌이가 우리사회 최우선가치가 되면서 점점 하찮게 여기는 도덕성에 주목하게 됐다. 창복의 최후라든지 태인이 자신의 일에 무감하다 점차 죄의식을 느끼게 되는 변화가 인상적이었다.

심판자의 입장에서 캐릭터에 접근한 건 아니다. 또 창복이 범죄를 저질렀으니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게 악한 사람은 아니지 않나? 그래서 그를 제거하기 위해 악인을 따로 투입하지 않았고, 그가 쓰러진 건물의 유리창에 ‘잘 가세요 편안히’라는 문구도 넣었다. 나도 선과 악의 기준을 잘 모르겠다.

- 조폭의 슈트나 토끼가면 등 소품의 활용이 흥미로웠다.

슈트에도 아이러니함을 담고 싶었다. 슈트엔 태인의 욕망이 투영돼있다. 힘센 사람이 될 수 있는 옷. 초희를 구하러가는 건 선의에서 비롯된 일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태인은 악당의 유품을 입고 달려간다. 우리네 삶에서 흔히 보듯, 선한 의지가 꼭 선한 결과로 이어지는 건 아니다.

- 불안과 긴장을 자아내는 초희의 등장도 인상적이었지만 그녀의 마지막 표정도 의미심장했다. 자신의 본심을 감춘다고 할까?

초희는 (3대 독자) 남동생이 태어난 뒤로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이답지 않게 집안일을 도우면서 착하게 행동했을 것이다. 실제론 부모가 창복에게 자신의 몸값을 줬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초희는 자신이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보다 더 착하고 성숙하고 훌륭한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길 거라 봤다.

- 초희를 연기한 문승아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 놀랐다.

오디션에 문승아 배우가 들어오는 순간 ‘저 사람이다’라고 느꼈다. 굉장히 여유로운 모습으로 들어왔고, 오디션 전에 배포한 3장의 시나리오를 통해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내가 현장에서 대사와 동선을 많이 바꾸는 스타일이라는 것을 알게 돼 아역배우를 뽑을 때 유연함을 중점적으로 봤다. 다들 대사를 잘 외워왔는데 중간에 조금만 바꿔도 경직된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문승아 배우는 달랐다. 내가 딴 이야기를 해도 초희처럼 답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싶을 정도로 그녀는 탁월했다.

문승아는 2019년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흩어진 밤’으로 배우상을 수상했다. 홍감독에 따르면 문승아는 오디션에서 이 사실을 어필하지 않았다. 문승아를 초희 역에 점찍은 후 촬영감독이 어느날 전화해 말했다. “전주영화제에서 영화를 보다 굉장한 배우를 찾았어요!" 그 배우가 바로 문승아였다.

‘소리도 없이’는 영화가 끝날 무렵, 창복과 태인, 초희와 태인의 여동생이 푸르른 녹음을 배경으로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는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처음에는 이 장면을 왜 다시 보여주는지 의아했다. 마치 이 영화가 기존과 전혀 다른 캐릭터와 이야기 전개로 의아함을 안겨주었듯.

다시 곱씹어보니, 감독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압축된 장면처럼 느껴졌다.
겉모습과 속사정의 간극이 얼마나 큰 장면인가. 동시에 유괴범과 피해아동이 한가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자체가 아이러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어봤다.
영화를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홍 감독은 말했다. “어떤 상황을 판단할 때,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그게 범죄건, 사람의 말이건 섣불리 판단하지 말고, 그 이면엔 아주 많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고 할까요.”

“태인의 끝을 보여주지 않은 게 제 나름대로는 희망적인 엔딩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행동에 대한 단죄를 내리기 위해 쓴 이야기가 아니니까. 플롯보다는 분위기가 더 중요한 영화니까요.”

jashin@fnnews.com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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