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종목▶
이 회장의 탁월한 경영은 확신에 찬 도전과 열정, 끝없는 혁신의지에서 나왔다. 1993년 삼성전자 임원들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모아 작심하고 내놓은 신경영 선언은 한국 기업사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초일류를 향한 이건희식 스타일은 거침이 없었다. 반도체를 과감히 삼성의 먹거리로 삼은 이가 그였다. 세계 시장을 석권한 TV, 애니콜 신화 등 혁신의 고비마다 그의 투지가 있었음은 물론이다. 1995년 불량 무선전화기 15만대를 사업장에서 불태운 일화는 품질 제일 삼성의 이미지를 전 세계에 각인시킨 사건으로 남았다.
그는 양보다 질에 승부를 걸었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말라" "21세기는 탁월한 한 명의 천재가 10만∼20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어록에서 이 회장의 결기를 느낄 수 있다. "정치는 4류, 정부는 3류, 기업은 2류"라는 솔직한 평가는 제 발 저린 정치권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항상 성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젊은 시절 꿈이었던 자동차 사업의 실패는 아픈 기억이다. 김용철 변호사 폭로로 시작된 비자금 사건 등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순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27년이 삼성의 눈부신 성장의 시간이었다는 건 변함이 없다. 그룹 시가총액은 1987년 9000억원에서 2014년 318조원으로 348배나 늘었다. 이 회장이 만든 토대 위에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글로벌 5위까지 올랐다. 그의 삶은 기적의 한국경제와 궤를 같이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