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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전이 웃었다..산업부 '연동제-환경요금' 왜 수용했나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0.12.17 18:40

수정 2020.12.17 21:52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해 6월 한전 이사회에 참석하는 모습. 당시 한전 이사회는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결정을 보류했다. 뉴시스
김종갑 한국전력 사장이 지난해 6월 한전 이사회에 참석하는 모습. 당시 한전 이사회는 여름철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결정을 보류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한국전력이 결국 웃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7일 한전이 줄기차게 요구한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승인했다. 이날 함께 허용한 기후환경요금 별도 고지, 필수사용공제 폐지까지 모두 한전이 지난 2년여간 요구한 사안이다. 사실상 산업부가 한전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전기요금 개편은 산업부가 전권을 쥐고 있다.



■한전에 손 들어준 산업부
산업부는 그간 탈원전 정책과 연계돼 전기요금 인상을 자극하는 조치에 신중했다. 지난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 이후 "전기요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산업부는 요금체계 개편에 미온적이었다. 탈원전 갈등을 심화시킬 우려 때문이다.

소극적인 산업부와 달리, 한전은 상황이 급박했다. 탈원전 탈석탄 정책에서 요금체계를 바꾸지 않는 한 한전이 돌파구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전은 2018년 1조원, 2019년 2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냈다. 신재생, 배출권 거래 등 환경비용도 2조원에 육박했다.

산업부 관료 출신의 노장, 김종갑 한전 사장이 전면에 나섰다.

김 사장은 취임(2018년 4월) 직후 "두부(전기요금)값이 콩(연료비)값보다 싸다"며 현행 전기요금 체계가 크게 왜곡됐다고 비판했다. 원가도 안되는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난다는 것이다. 전기요금 개편에 대한 첫 언급이다.

이후 김 사장은 비판 강도를 높여나갔다.

산업용 심야요금제(경부하요금)를 일부 대기업들이 독점하고, 대규모 농장들이 값싼 농사용 전기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전력 과소비' 실태를 계속 끄집어냈다.

또 김 사장은 "(고소득자인) 한전 사장인 나도 전기요금 필수공제 할인을 받고 있다"며 필수사용 공제 폐지를 주장했다.

필수사용공제는 소득과 무관하게 월 200kWh 이하를 사용하는 주택용 가구(1구간)에 월 최대 4000원의 전기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이다. 정부의 보편적 복지정책으로 분류돼 논란이 많은 사안이어서 선뜻 손대기가 부담되는 제도다. 이 제도를 폐지하면 일부 소비자는 전기요금 인상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한전의 반기, 산업부와 여러차례 충돌
전기요금 논란은 지지부진했다. 지난해부터 우리 경제 상황도 나빠졌다. 산업부는 실물경제에 미칠 파장이 상당한 전기요금 개편에 신중한 입장을 유지했다. 김 사장의 주장도 힘을 잃어갔다.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이슈가 터졌다. 3000억원에 달하는 '여름철 주택용 누진제' 손실을 어떻게 분담할 것이냐는 문제였다. 지난 2018년 여름 유례없는 폭염으로 정부는 주택용 누진제를 일시 완화했다. 당시 한전은 3587억원의 손실을 떠안았다. 이듬해 여름 누진제 완화가 제도화됐고, 한전은 3000억원 규모의 추가 손실이 예고됐다.

이에 발끈한 한전이 반기를 들었다. 지난해 6월, 한전 이사회는 정부의 '여름철 상시 전기요금 할인'에 대한 약관 개정건을 보류해버렸다. 손실을 보전 방침을 명확히 해달라고 정부에 항의를 표시한 것이다.

갈등이 수면위로 부상했지만, 산업부가 한전에 손실 보전을 약속하는 선에서 일단락됐다. 이때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 등을 내걸고 요금체계 개편을 구체적으로 요구했다. 필수사용량 보장공제 개선(폐지), 주택용 계절별·시간별 요금제 도입 등도 끼어넣었다. 이같은 전기요금 체계 개편 방안을 2020년 상반기까지 마련하겠다고 공시했다. 국내외 상장사인 한전의 공시는 국가신뢰와 연관돼 파장이 컸다.

이후 김 사장은 필수사용공제 폐지, 연료비 연동제 등을 언론, 세미나 등을 통해 강하게 주장했다.

이런 와중에 한전과 산업부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해 10월, 산업부는 "한전 사장이 언급한 전기요금 체계 개편에 대해 협의한 바 없다"며 제동을 걸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은 당시 국회에서 "한전이 각종 전기요금 특례할인 제도에 대한 폐지 여부를 논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대했다.

김 사장은 "정부와 한전의 (갈등) 이야기가 (사실과 달리) 잘못 나가지 않도록 더욱 신중하게 소통하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 사장 앞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발언하는 모습. 김 사장 앞에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뉴스1

■코로나-저유가가 분위기 반전
전기요금 개편 논의는 코로나19 사태와 겹치면서 답보상태가 이어졌다. 한전은 전기요금 개편안 마련을 올 하반기로 늦추겠다고 다시 공시했다.

뜻하지 않게 상황이 반전됐다. 코로나19 사태로 세계경제가 멈춰서면서 유가는 급락했다. 한전은 이익의 70%이상을 차지하는 연료비 덕을 봤다. 전력 판매량이 감소했으나 저유가 덕에 올 상반기(1~6월 연결기준) 8200억원의 영업흑자를 냈다.

한전은 이 때를 연료비 연동제 도입 적기로 봤다. 이런 저유가 추세라면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해도 최소 1년 정도는 전기요금이 오르지 않아 요금 저항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한전은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전제로 전문가·시민단체 토론회를 수차례 열면서 전기요금 개편 여론을 적극 조성했다.

우호적인 환경도 이어졌다. 지난달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기후환경회의가 환경 비용과 연료비 변동을 연계하는 전기 요금제 도입을 제안했다. 이어 이달초 정부가 '2050 탄소중립 추진 전략'을 발표하면서 전기요금 개편이 가시권에 들었다.

산업부와 한전의 협의도 빨라졌고, 올해를 넘길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날 전격적으로 전기요금 개편 체계를 확정지었다. 산업부 입장에서 전기요금 개편을 더 늦추는 것이 더 큰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있다.

■한전에 '고강도 경영효율' 단서
한전도 아킬레스건이 있다. 막대한 손실이다. 탈원전과 연료비 상승, 환경비용 급증 등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이 전제된 요금체계 개편이 손실을 메우기 위한 수단이 아닌가하는 비판에서 한전은 자유롭지 못하다. 김 사장이 "한전의 재정상태를 전기요금 인상으로 메워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밝힌 것도 이런 비판을 의식해서다. 실제 한전이 연료비 연동제 시행으로 얻는 영업이익은 1조원에 달한다.

산업부는 한전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고강도 경영효율화'라는 단서를 붙였다. 수차례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비대해진 관료조직 방만 경영 쇄신이 그것이다.

이날 산업부 관계자는 "한전 및 전력그룹사의 고강도 경영혁신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경영혁신위원회를 설치, 한전의 이행실적을 모니터링해서 외부에 공개할 방침이다.

산업부는 현재 5% 선인 한전의 전력공급비용 증가폭을 3% 이내로 제한하고, 이를 초과하는 비용은 전기요금에 연동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렇게 하려면 한전은 인건비, 판매관리비, 설비투자비 등 전력공급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것이 향후 5년간 7조~8조원 정도다.

관건은 개편된 전기요금 체계가 안착하느냐다. 정부는 "2030년까지 전기요금 인상폭을 10% 선에서 억지한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지나면 유가는 다시 상승사이클이 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신규 원전 백지화, 노후 석탄발전 페쇄, 신재생 확대 등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겹겹이 쌓여있다. 이번 조치가 '탈원전 청구서'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skjung@fnnews.com 정상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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