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유령수술 첫 형사사건, 병원장 책임 인정될까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1.23 11:16

수정 2021.01.23 13:01

19일 서울중앙지법 결심공판
피고인 측 최후변론 '협진' 주장
"집도의보다 병원 지명도가 중요"
핵심증거·증언 "신빙성 낮아" 주장
[파이낸셜뉴스] 국내 유령수술 첫 형사사건 항소심 공판에서 G성형외과 전 원장 유모씨(49)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른 성형외과에서 유령수술이 행해진다는 얘기를 듣긴 했으나 본인 병원에서 직접 지시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유씨 측은 환자를 위해 협진을 했을 뿐이고 수사과정에서 불리한 진술을 한 의사 4명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라는 논리를 폈다.

검찰이 반대신문을 포기한 가운데 재판장이 직접 개입해 유씨 측이 진료기록부를 보관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지적하는 상황도 펼쳐졌다.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유령수술 첫 형사사건 결심공판이 열렸다. fnDB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유령수술 첫 형사사건 결심공판이 열렸다.
fnDB

■유령수술 첫 형사사건 결심공판
23일 법원에 따르면 지난 1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9부(최한돈 재판장)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유씨 측 최종변론이 진행됐다. 유씨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화우의 김유범 변호사가 시각자료를 활용해 30여분 간 최종변론을 이어갔다.

김 변호사는 △G성형외과에서 대리수술이 이뤄진 적 없고 △설령 이뤄졌더라도 유씨가 공모하지 않았으며 △성형외과 의사보다 실제 수술한 치과와 이비인후과 의사 등이 더 경력이 화려해 사기죄가 성립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함께 적용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도 사건 당시 사용량을 환자별로 기재하는 게 의무가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원심이 채택한 증거가 일부 편향적이고 징역 1년형도 무거워 부당하다는 취지다.

우선 김 변호사는 “당시 상담한 의사 조OO, 노OO, 배OO보다 수술한 의사 이OO, 이OO가 지명도가 더 높다”며 “일반인 관점에선 성형전문의인지 구강외과 전문의인지는 중요하지 않고 병원의 지명도와 수술의 완성도가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상담의사와 환자 마취 후 실제 수술을 한 의사가 달라진 것이 수익이 아닌 더 나은 수술을 위해서였다는 취지다.

김 변호사는 형사고발의 주요 증거인 ‘유령수술 피해자 리스트’ 엑셀파일도 조작됐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2014년 6월 고발인들이 ‘피해사실이 특정되지 않았다’며 고발을 취하했다”며 “(신고 당시) 수사관서에 엑셀파일 목록만 제출했다고 하는데, 파일보면 피해가 나올텐데 취하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은 G성형외과에서 위법행위가 다수 벌어졌다고 증언한 의사 4명의 진술에 대해서도 신빙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배OO 등 증인들의 기억이 서로 엇갈리고 번복되며 기억이 나지 않는데도 기억이 나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어 신빙성이 떨어진다”며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거짓으로 진술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유씨 역시 최후진술에서 "억울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2014년 G성형외과 수사당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늦어져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의무기록지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fnDB
2014년 G성형외과 수사당시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가 늦어져 핵심 증거가 될 수 있는 의무기록지가 제대로 확보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fnDB

■재판장 "진료기록부 왜 훼손됐나"
검찰은 특별한 반박을 하지 않은 가운데 재판장이 수차례에 걸쳐 피고인 측 주장의 허점을 짚어 관심을 모았다.

재판장은 “(신빙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 의사들은) 피고인 병원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며 “허위진술에 가장 큰 반대증거가 피고인이 보관하는 진료기록부인데 왜 그 기록이 다 훼손되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이에 유씨가 “사고가 나고 큰 시위가 벌어지고 기자들이 상주하는 상황에서 정상운영이 안 됐다”고 변명하자 재판장은 “진료기록부는 이런 사고가 발생했을 때 사후적으로 심사하고 판단하기 위한 것으로 그 의무가 의사에게 있다”고 설명했다.

재판장은 이밖에도 유씨에게 “대리수술이라고 진술한 의사들은 본인들도 형사책임에 대한 위험에 빠지게 되는데 그럼에도 (진술)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직접 묻기까지 했다.

1심 판단에 편향적 증거채택 등 오해가 있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장은 “살펴보긴 하겠지만 환자가 자기가 수술 받을 거라고 생각한 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수술을 받았다고 하면 결과를 떠나 정당한 것인가가 핵심”이라며 “협진이라고 주장하니 과연 협진이 되는지에 대해, 진술한 의사들의 증언에 신빙성이 있는지 살펴보겠다”고 공판을 마무리했다.

G성형외과 유모 전 원장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성형수술 환자들에게 상담한 의사와 다른 치과와 이비인후과 의사 등이 실제 수술을 담당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fnDB
G성형외과 유모 전 원장은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성형수술 환자들에게 상담한 의사와 다른 치과와 이비인후과 의사 등이 실제 수술을 담당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fnDB

■유죄판결시 민사소송 이어질 듯
앞서 유씨는 지난 2012년 11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성형외과 전문의가 수술할 것처럼 속이고 실제로는 치과와 이비인후과 의사 등에게 수술을 맡긴 혐의로 2016년 4월 뒤늦게 기소됐다. 사기와 의료법 위반 등의 혐의가 적용됐다.

지난해 1심 법원은 기소된 지 4년 만에 유씨에게 징역 1년형을 선고했다. 벌금 300만원도 함께 주어졌다.

사건을 담당한 장영채 판사는 “의사에 대한 우리 사회의 높은 신뢰를 악용하고 피해자들을 기망했다”며 “직업윤리의식 부재로 인한 도덕적 해이의 정도가 자정능력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수준에 이른 것이 아닌지에 관해 우려를 금치 않을 수 없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유씨 측은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

판결 이후 그간 피해자들이 낸 민사상 손해배상청구소송 결과도 줄줄이 나왔다. 모두 유씨 측에게 배상의무를 인정했다. <본지 1월 8일. ‘[단독] 7년 만의 승리··· 유령성형 위자료 5000만원 [김기자의 토요일]’ 참조>

수술이 침습적 의료행위임에도 상해가 아닌 사기죄만 적용한 검찰에 대해 비판도 나온다. G성형외과 유령수술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한모씨는 지난해 9월 유씨 등을 중상해와 살인미수 혐의로 고소해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전 간부들도 같은 달 유씨 등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추가 고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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