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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넘었더니 치솟는 가격, 글로벌 식량대란 현실로

박종원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1 15:23

수정 2021.02.21 15:23

지난해 7월 11일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농장 인부가 곡물을 트럭에 싣고 있다.로이터뉴스1
지난해 7월 11일 러시아 스타브로폴 지역에서 농장 인부가 곡물을 트럭에 싣고 있다.로이터뉴스1


[파이낸셜뉴스] 쌀과 밀, 보리, 콩, 옥수수 등 세계인의 밥상을 책임지는 주요 곡물들이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 이후 급등세를 보이면서 지난 2008년 세계 곡물 대란이 재현된다는 공포가 커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주요 생산국을 강타한 이상기후와 물류대란으로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중국 등 주요 소비국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다며 팬데믹을 극복하는 속도가 빨라질수록 곡물 가격이 가파르게 오른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21일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식품가격지수는 지난달에 113.3포인트로 8개월 연속 상승해 전년 동기대비 10.5% 올랐다.

같은 기간 곡물가격지수 역시 7.2% 상승했다.
미국 시카고선물거래소(CBOT)에서 지난 17일 거래된 대두 가격은 1t에 508달러로 1년 전보다 55% 올랐다. 밀 가격은 t당 237달러로 같은 기간 13% 올랐고, 옥수수는 t당 218달러로 44% 상승했다. 태국 방콕포스트는 지난달 보도에서 주요 아시아 생산국의 쌀 시세가 지난해 20~45% 가까이 뛰었다고 전했다.

■이상기후와 식량안보로 공급 줄어
가격이 치솟는 1차 원인은 이상기후로 곡물 작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해 하반기에는 동태평양의 적도 지역에서 수온이 평년보다 0.5도 이상 내려가는 현상이 5개월 넘게 지속되는 '라니냐' 현상이 발생해 세계 곳곳에 가뭄과 한파를 초래했다. 특히 대두와 옥수수 등 7개 식품 수출 세계 1위인 브라질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 홍수에 이어 하반기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었다. 여기에 팬데믹에 따른 사회적 봉쇄까지 겹치면서 수확에 차질을 빚고 있다.

인근 아르헨티나의 밀 생산량은 전년 대배 11% 이상 줄어들 전망이며 지난해 6월 미국 밀 농가의 약 25%가 가뭄 피해를 입었다. 지난해 6월 지하수까지 말라붙을 정도로 기록적인 가뭄을 겪은 유럽도 사정이 비슷하다. 유럽연합(EU) 내 최대 밀 생산국인 프랑스의 밀 생산량은 건조 기후 등 요인으로 25% 이상 급감할 전망이다.

식량 유통 규모는 팬데믹으로 식량 안보를 걱정하는 주요국들이 수출을 제한하면서 더욱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주요 식량 수출국인 러시아는 지난해 곡물 수확량이 전년 대비 9.7% 증가했지만 지난달 발표에서 이달부터 6월말까지 옥수수와 보리에 각각 수출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동시에 밀에 붙이는 수출 관세를 t당 50유로(약 6만7000원)로 기존보다 2배 올리기로 했다. 러시아 정부는 팬데믹 가운데 생필품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운임 오르고 배 못구해 공급 말라
전세계 곡물가격의 또 다른 상승 요인은 물류대란이다. 곡물을 실어나르는 벌크선의 운임 변동을 나타내는 발틱건화물선지수(BDI)는 17일 기준 1756포인트를 기록했다. 벌크선은 철광석 등 원자재와 더불어 곡물 운송에도 주로 쓰인다. 해당 지수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지난해 5월 15일 407포인트를 기록했지만 지난달 1810포인트까지 올라 344% 뛰었다. 중국 춘제 이후 소폭 하락했지만 여전히 1년전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한국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곡물 가격은 CBOT 옥수수 기준으로 지난해 11월 t당 164달러에서 현재 212달러로 50% 가까이 올랐지만 같은 기간 미국·중국간 곡물 운송 가격은 약 23%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곡물 가격과 운임의 연관성에 대해 "보통 2~3월은 남미에서 곡물을 수확하는 기간인데 브라질의 경우 곡물 수확이 (팬데믹 등으로) 늦어졌다. 1월부터는 선적이 시작되어야 하나 브라질에 갔던 배들이 돌아오질 못하면서 연쇄적으로 선박 공급이 부족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그동안 곡물 운임 자체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며 "선사들이 최근 몇 년동안 곡물 운임이 낮은 수준을 유지하면서 신규 선박을 주문하지 않아 공급이 원활하게 늘어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中 사재기에 곡물 시장 움찔
일단 업계에서는 이번 곡물 시세 상승의 가장 큰 원인이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식량을 수입하는 중국이라고 보고 있다. 지난달 호주 곡물매체 그레인센트럴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상품 수입가운데 곡물의 양은 역대 최대 규모였다. 대두 수입량은 지난해 1억33만t으로 세계 1위였으며 역대 수입 기록중에서도 가장 많았다. 옥수수 수입량도 1130만t으로 통계 시작 이후 가장 많았다.

대두와 옥수수 수입이 급증한 이유는 돼지 때문이다. 2019년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대유행했던 중국에서는 사육 두수가 4억마리에서 2억2000만마리까지 급감했다가 지난해 3억8000만마리까지 다시 늘었다.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돼지 사료는 기본적으로 대두박(대두 부산물)과 옥수수를 섞어 쓰는데 옥수수가 더 많이 들어간다”며 “중국도 옥수수를 많이 기르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부족분을 수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중국에서는 지난해 7월 양쯔강 대홍수로 농경지 대부분이 물에 잠겨 곡물 가격이 20% 급등하기도 했다.

동시에 중국 경제가 팬데믹을 극복하고 점차 살아나면서 외식 등 식품 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이다. 미 농무부는 지난 9일 보고서에서 중국이 2020년 7월~2021년 6월 사이 1000만t의 밀을 수입해 수입량이 25년만에 최고치를 기록한다고 예상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외 다른 국가들이 팬데믹을 극복하면서 식량 공급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해양진흥공사 관계자는 각국이 그동안 막대한 경기부양책을 실시해 시장 내 자금 유동성이 많이 풀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동성 확대로 인한 물가상승이 걱정되는 상황에서 곡물 수출국들이 물가 안정을 위해 러시아처럼 수출 제한을 걸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 경제매체 CNBC는 지난해 아시아의 쌀 가격 인상에 대해 생산량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나 각국이 팬데믹으로 식량 수출을 막으면서 가격이 올랐다고 지적했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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