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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정한밀, "올 시즌 생애 첫 우승 거두겠다"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2.23 11:40

수정 2021.02.23 14:45

고2때 자퇴 후 골프에 입문
필리핀과 미국서 9년간 생활
2017년에 코리안투어 데뷔
 
해외 생활을 9년여 끝에 돌고돌아 국내로 돌아와 KPGA코리안투어 5년차를 맞는 '노마드' 정한밀이 올 시즌 생애 첫승을 다짐하며 엄지척을 해보이고 있다.
해외 생활을 9년여 끝에 돌고돌아 국내로 돌아와 KPGA코리안투어 5년차를 맞는 '노마드' 정한밀이 올 시즌 생애 첫승을 다짐하며 엄지척을 해보이고 있다.
제주=정대균 골프전문기자】'메이저 사나이' 브룩스 켑카(미국)는 미국프로골프(PGA)투어의 대표적 '노마드'다. 그는 대학 졸업 후 도전했던 PGA투어 Q스쿨에서 낙방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2012년에 유러피언 투어의 2부인 챌린지 투어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며 하류인생을 시작했다.

오로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고생 끝에 2015년에 PGA투어 입성에 성공한 그는 그해 2월 웨이스트 매니지먼트 피닉스 오픈을 시작으로 PGA투어 통산 8승(메이저 4승 포함)을 거두고 있다.
현재 12위인 세계랭킹이 한 때 1위까지 오른 적이 있었을 정도로 세계 남자골프의 간판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이다.

한국프로골프(KPGA)코리안투어에도 파란만장한 골프 커리어를 가진 선수가 있다. 올해로 투어 5년차가 된 정한밀(30)이다. 그의 골프 역마살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8살 때부터 시작된다. 정한밀은 특이하게도 작은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골프를 하기 위해 학교를 자퇴하고 필리핀으로 건너갔다.

경제적 여건이 넉넉치 않아 변변한 레슨도 받지 못했다. 왕정훈의 부친 왕영조씨가 시간날 때마다 스윙을 체크해주었으나 아들이 유러피언 투어로 진출하면서 그것도 어려워졌다. 설상가상으로 두 차례의 사기 피해까지 당했다. 또래 선수들에 비해 가뜩이나 늦게 시작한 골프는 전혀 진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6년간의 필리핀 생활을 접고 PGA투어 진출이라는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정한밀의 미국행은 말그대로 무모한 도전이었다. 경제적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사전 답사를 위해 먼저 미국으로 들어간 아버지가 현지에서 후견인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는 "우리 사정을 듣고 도와주겠다는 교포 분을 만났다는 아버지의 연락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갔다"며 "교민들이 거의 없는 시골이어서 하루 종일 말 한 마디를 못한 때도 있었다. 그 덕에 골프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당시를 뒤돌아 보았다.

PGA투어 진출을 위한 프로젝트가 착착 진행돼 가는 듯 했다. 하지만 2부인 웹닷컴투어(현 콘페리투어) 데뷔를 얼마 앞두고 부상을 당하는 불운으로 프로젝트 가동을 일시 중지할 수 밖에 없었다. 3년간의 미국 생활을 청산하고 국내로 돌아온 그는 2016년에 KPGA정회원과 2017년 코리안투어 시드를 동시에 획득하며 돌고돌아 국내 정착에 성공했다.

하지만 적응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정한밀은 "다른 선수들과 달리 골프를 늦게 시작했던 터라 알고 지내는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면서 "처음 몇 년간은 그야말로 외톨이나 다름없었다"고 데뷔 시절을 뒤돌아 보았다. 고향 순천에서 서로의 스윙을 체크해주며 '품앗이 골프'를 하던 절친 염서현(30)이 없었더라면 그야말로 고립무원이나 마찬가지였다.

2017년에 데뷔한 정한밀은 아직 첫 우승과는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2019년 KEB하나은행 인비테이셔널 공동 2위가 최고 성적이다. 작년에는 11개 대회 출전, 9개 대회서 본선에 진출했으나 '톱10' 입상이 한 차례도 없이 상금과 제네시스 포인트 41위로 시즌을 마쳤다. 최고 시즌은 제네시스 포인트 15위, 상금 순위 19위에 올랐던 2019년이다.

물론 우승 기회가 없었던 게 아니다. 그 중 가장 아쉬운 대회는 루키 때인 2017년 현대해상 최경주인비테이셔널과 2018년 제네시스 챔피언십이다. 최경주인비테이셔널은 마지막날 16번홀까지 공동 선두였다가 17번홀(파3)에서 티샷볼이 스프링클러에 맞고 다른 홀로 가는 불운이 겹치는 등 5타를 잃고 공동 4위로 대회를 마쳤다.

투어 최고 상금이 걸린 2018년 제네시스 챔피언십 때는 2라운드까지 5타차 단독 선두를 달리며 생애 첫 우승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긴장한 나머지 전날 뜬 눈으로 밤을 샌데다 2번홀서 자신이 친 타구에 여성 갤러리가 맞아 앰뷸런스에 실려가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꼬이기 시작했다. 경황이 없던 나머지 설상가상으로 드롭을 잘못해 경기를 마친 뒤 벌타까지 받았다. 무빙데이서 8타를 잃은 그는 공동 4위의 성적표를 받는데 만족해야만 했다.

그랬던 정한밀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2년전 이경훈(52)프로를 만나면서 부터다. 제주도에서 스승과 함께 동계 전지 훈련을 하고 있는 그는 "내 골프는 제대로 된 레슨을 전혀 받지 않아서 기본기가 탄탄하지 못하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기본으로 돌아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한밀은 "작년부터 스윙 교정을 하고 있다. 아이언 스윙이 백스윙톱 때 클럽 헤드가 너무 세워진데다 스트롱 훅그립을 하고 있어 정확도가 떨어졌다. 그러면서 내 스윙에 대한 확신도 생기지 않았다"면서 "아주 기본적인 것이지만 1년여 교정을 거쳐 이제는 정착단계에 접어 들었다. 올해는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정한밀의 올 시즌 목표는 생애 첫 우승이다. 그는 "전에는 우승보다는 골프를 하는 것 자체를 행복해 했다. 열심히 하다 보면 우승은 따라 올 것으로 생각했다"면서 "그런데 작년부터 우승을 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게 됐다.
올 시즌 목표는 당연히 생애 첫 우승이다"고 각오를 다졌다.

'노마드' 정한밀이 정착하려는 최종 목적지는 부상으로 프로젝트를 일시 중단해야했던 PGA투어다.
그 꿈을 실현하려는 그의 여정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온갖 난관을 극복하고 기어이 세계 최고의 선수에 오른 켑카가 그랬던 것처럼.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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