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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깨나 쓴다는 기자의 글쓰기 방법론 [김성호의 요런책]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5.08 16:16

수정 2021.05.14 02:27

[김성호의 Yo!Run!Check! 12] 박종인, <기자의 글쓰기>
[파이낸셜뉴스] 글쓰기책은 많다. 읽어보지 않아도 빤하다. 글깨나 쓴다는 사람들이 이건 이렇고 저건 저래서 이래저래 쓰라는 내용이다. 그 책들 모두 제 역할 했다면 글 못 쓰는 이가 없었을 거다.

글쓰기에 비결은 없다. 정도만 있을 뿐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라’는 옛 말이 여전히 통용되는 이유다.

서점마다 널려있는 글쓰기책을 수십 권 읽는다고 실력이 나아질리 없다. 글은 쓰고 고치고 고민해야 나아진다. 살고 실패하고 후회해야 좋아진다. 글쓰기책 태반이 이런 내용이다. 글 잘 쓰는 사람 중에 글쓰기책을 보고난 뒤 잘 쓰게 됐다는 이를 나는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래도 사람들은 답을 구한다. 막막하고 답답하기 때문이다. 글쓰기 책도 쓸모는 있다. 길을 잃은 사람에게 방향을 가리키니 말이다.

▲ 기자의 글쓰기 책 표지 ⓒ 북라이프
▲ 기자의 글쓰기 책 표지 ⓒ 북라이프

글 잘 쓰는 기자의 글쓰기 방법론

박종인은 조선일보 선임기자다. 주로 역사나 문화, 사람 이야기를 쓴다. 아는 사람 사이에선 글 잘 쓰는 기자로 정평이 나 있다.

그가 얼마나 글을 잘 쓰는지는 당장 포털사이트에 검색만 해봐도 알 수 있다. 그가 다루는 이야기 중에 새로운 건 많지 않지만 늘 처음 듣는 것처럼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글로 먹고 사는 직업군에서 제법 잘 쓰는 선수로 통하니 글쓰기책 한 권쯤 내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명저로 꼽히는 건 없어도 아주 많은 기자들이 글쓰기책을 냈으니 말이다.

박종인이 내놓은 책은 <기자의 글쓰기>다. ‘기자는 이렇게 쓴다’일 수도 있겠고 ‘기자라면 이렇게 써야 한다’일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전자인 듯하다. 박종인의 글쓰기 방법론이 주가 되고 기자 이야기는 얼마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책은 간명하다. 설계를 하고, 팩트를 쓰고, 짧게 쓰고, 리듬을 맞추라는 얘기다.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지만 여기서 벗어나는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요컨대 책 전체가 위 내용을 설득하고 입증하는 과정이다.

설계는 글을 쓰기 전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쓸지 미리 계획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글은 독자를 상정한 소위 ‘팔아먹기 위한 것’이므로, 잘 팔아먹기 위한 계획을 짜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서론, 본론, 결론보다는 기승전결이 더 매력적이므로 기왕이면 기승전결로 쓰라고 한다. 정말 하고픈 말은 슬쩍 감춰두고, 적절한 에피소드를 적재적소에 쓰는 게 쓰는 이의 자질이라고 한다.

이 책을 읽는다고 글을 더 잘 쓰게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어떤 길을 가야할지 이정표는 되어줄 것이다. fnDB.
이 책을 읽는다고 글을 더 잘 쓰게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어떤 길을 가야할지 이정표는 되어줄 것이다. fnDB.
특별하진 않아도 이정표는 된다

팩트로 글을 가득 채우는 게 주장보다 힘이 있다고 한다. 글이란 결국 독자가 글쓴이를 받아들이게 하는 과정이므로, 독자가 수긍할 만한 매력적인 사실로 글을 전개하란 얘기다. 기승전결의 설계 속에서 어떤 팩트를 감춰두고 어떤 팩트를 먼저 공개할지를 정하는 게 글쓴이의 몫이다.

짧게 쓰라고 한다. 문장을 짧게 쓰라는 건 이 책 전체를 일관하는 철칙 가운데 하나다. 짧게 써야 문법에서 벗어날 일이 없고, 짧게 써야 읽기도 편하다는 것이다. 완전히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 책이 필요한 사람들에겐 좋은 지침이 될 게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리듬이 중요하다고 한다. 술술 잘 읽히는 글이 좋은 글이란 뜻이다. 글이란 게 본래 말을 적어둔 것에서 나왔으므로 말로 잘 읽혀야 좋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읽는 사람은 누구나 글을 말로 풀어 받아들이니 리듬이 좋아야 달변이고 달문이라 하겠다.

어느 하나 온전히 새롭진 않지만 도움은 될 것이다. 신문사에서 글쓰기 강좌를 열기도 한 사람답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나름의 교수법도 확립돼 있다. 원칙과 방법론이 조화돼 있어 글쓰기의 기본을 알고 싶은 사람에겐 도움이 될 것이다. 더 나은 글을 쓰게 하진 못할지라도 형편없는 글을 막기는 할 것이다. 그게 어딘가.

글쓰기책치고 좋은 글을 읽고 직접 따라 쓰며 익히고 고쳐쓰는 것보다 나은 방법론이 담긴 책은 본 일이 없다. 뻗은 길은 정도 하나 뿐이지만 굳이 이정표부터 봐야겠다는 독자가 있다면 이 책이 이정표로 나쁘지는 않을 듯하다.


수많은 글쓰기책 가운데 특별함은 없지만, 충분히 고려할만한 조언은 던지는 책이다. fnDB.
수많은 글쓰기책 가운데 특별함은 없지만, 충분히 고려할만한 조언은 던지는 책이다. fn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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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n@fnnews.com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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