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fn스트리트

[fn스트리트] 빛 공해

곽인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6 18:00

수정 2021.06.06 18:02

기원전 3세기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이던 시라쿠사에 수학자 아르키메데스가 살았다. 당시 로마와 카르타고는 지중해 패권을 두고 다퉜다. 2차 포에니전쟁(BC 218~201년) 때 로마는 시라쿠사가 카르타고에 붙을까 걱정한 나머지 시라쿠사를 침공한다. 이른바 시라쿠사 포위작전이다.

지중해는 햇볕이 뜨겁기로 유명하다. 아르키메데스는 대형 거울을 만들어 로마군에 맞섰다.
해가 쨍쨍 내리쬘 때 거울을 이용해 로마군 배에 빛을 반사시켰다. 전설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의 거울'이 로마군 함정을 불태워버렸다고 한다. 끝내 포위작전은 로마의 승리로 끝을 맺는다. 아르키메데스도 로마 병사의 칼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아르키메데스는 기하학, 지렛대의 원리와 함께 태양광의 놀라운 힘을 세상에 알렸다.

알제리도 태양이 따가운 곳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베르 카뮈는 알제리 태생이다. 그가 쓴 소설 '이방인'에도 온통 햇빛이 가득하다. 주인공 뫼르소는 단도를 든 아랍인을 총으로 쏘아 죽였다. 살인을 저지른 그날은 "뜨거운 햇볕 때문에 볼이 타는 듯했고," "햇빛이 (아랍인이 꺼낸) 단검 위에 부딪치자 번쩍거리는 긴 칼날이 내 이마 위로 와서 꽂히는 것만 같았다." 햇빛 때문에 살인을 저질렀다는 희대의 부조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햇빛은 적어도 걱정, 많아도 걱정이다. 고층건물을 지을 때 흔히 일조권 분쟁이 불거진다. 자기집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차단될까봐 주민들이 들고 일어난다. 반대로 눈이 부셔서 괴롭다는 민원도 속출한다. 통유리 고층빌딩이 많아지면서 생긴 현상이다. 경기 성남 분당에 있는 네이버 사옥(지상 28층)도 그중 하나다. 인근 주민들은 10년 전 태양반사광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1심은 주민 승, 2심은 네이버 승. 3심 대법원은 지난주 원심(2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태양반사광 피해를 인정한 첫 판례다.
앞으로 유리회사들이 고강도 통유리 기능은 유지하면서 빛반사를 막는 신제품을 만드느라 바빠질 것 같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