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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광장] 발목 잡힌 ‘법인세 인하 경쟁’과 자국 산업보호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09 18:01

수정 2021.06.09 18:01

[fn광장] 발목 잡힌 ‘법인세 인하 경쟁’과 자국 산업보호
시간을 거슬러 2016년 11월로 가보자. 미국 최대 제약회사 화이자는 가장 미국적인 기업이었다. 그런 기업이 미국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다. 미국의 높은 법인세로 아일랜드 회사인 엘러간과의 합병을 발표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명목 법인세율은 35%이고 아일랜드의 법인세율은 15%였다. 화이자가 본사를 아일랜드로 옮기면 법인세를 연간 10억~20억달러를 줄일 수 있다고 추정했다. 이 아이러니한 상황에서 국가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지닌 글로벌 기업은 세금을 절약하는 조세 쇼핑을 하며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고강도 조세회피 규제안을 내놓으며 화이자에 직격탄을 가했다. 골칫거리였던 기업들의 법인세 회피 행보에 제동을 건 것이다. 화이자와 엘러간의 합병이 발표될 당시에 오바마는 세금구멍을 필사적으로 막기 위해 "비애국적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했고, 화이자의 합병건은 무산됐다.

유럽 재정위기 당시 상황도 돌이켜보자. 재정위기에 봉착한 유럽 국가들은 글로벌 기업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을 감안하고 세수도 확보하기 위해 단호한 조치를 강구한다. 일명 BEPS(Base Erosion & Profit Shifting, 세원 잠식과 소득 이전) 프로젝트다. 글로벌 기업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세율이 높은 국가에서는 비용을 부풀려 처리하고, 소득은 낮은 세율을 적용하는 국가로 이전하는 조세회피 행위를 하자 이를 근절하기 위한 대응방안을 마련한 것이다. 주요 20개국(G20)의 특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만든 이 프로젝트는 글로벌 기업만 배 불리는 '유해한 조세 인하 경쟁(harmful tax competition)'을 하지 말라는 OECD의 눈물 어린 호소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역시 법인세 인하로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진 다국적기업의 행위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여러 디지털 과세 논의가 있었고, 마침내 G7 재무장관들은 2021년 6월 5일 영국 런던에서 회담한 뒤 낸 공동성명을 냈다. 세계 각국이 법인세율을 15% 이상으로 유지하고, 다국적기업이 사업을 하는 나라에 '초과이익(이익 10% 초과분)' 중 20% 이상을 세금으로 내는 방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다국적기업 유치를 위해 수십년간 벌여온 '법인세 인하 경쟁'에 종지부를 찍어야 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 이면에 작용하는 원리를 간파해야 한다. 세계적으로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 기업, 정부의 부채를 총합한 총부채의 비율이 사상 최고인 상황에서 각국 정부는 일자리와 세수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넷제로 2050' 보고서에서 2020년 대비 2030년 풍력, 태양광 중심의 재생에너지는 4배로 확대되고 전기차는 18배 증가한다고 발표하고, 2030년까지 친환경 비즈니스로 세계적으로 1400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다고 주장했다. 탄소국경세는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나 기업에 부과하는 관세다. 유럽연합은 2023년, 미국은 2025년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철강 1t을 생산할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유럽 평균보다 높으면 그 차이만큼을 탄소세로 내야 한다. 이런 제도를 도입하려는 가장 큰 이유 역시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우리도 디지털, 친환경 전환에 맞는 고용안정과 일자리 친화적 제도를 빨리 만들어야 한다.

조원경 울산시 경제부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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