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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녹음속기 신청하니 "판사 태도 바뀌더라" [김기자의 토요일]

김성호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6.26 13:16

수정 2021.06.26 13:16

찬반 엇갈리는 재판 녹음속기 의무화
재판당일 신청해도 받아들여질 수 있어
일각에선 "판사 심기 거스를까" 우려 나와
[파이낸셜뉴스] 수술실 폐쇄회로(CC)TV 도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가운데, 법조계에서도 유사한 바람이 일고 있다. 재판 내용을 모두 기록하는 ‘녹음속기제도’를 의무화하자는 것이다. 소송 당사자들에겐 생사를 가를 중요한 소송임에도, 이른바 ‘꼰대 판사’들에 의해 피해를 보는 사례가 늘면서다.

반면 공개재판인 만큼 의무화가 필요 없다는 주장도 나온다.

폐쇄적 공간인 수술실에 CCTV를 달자는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법원에서 확대돼 온 녹음속기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fnDB.
폐쇄적 공간인 수술실에 CCTV를 달자는 논의가 무르익고 있는 가운데, 법원에서 확대돼 온 녹음속기 제도가 주목받고 있다.
fnDB.
“속기·녹음, 재판권 보장 위해 필수적”

26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정 내 속기와 녹음 의무화에 법조인들의 찬반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린다. 속기·녹음을 했을 때 판사의 태도가 변하거나 법정 내 기록 확보가 된다는 점이 찬성근거로 제시됐지만, 이미 공개재판인 데다 공판조서가 있어 필요없다는 의견도 만만찮았다.

속기와 녹음이 처음 법정에 도입된 건 1995년이다. 법정 내 속기와 녹음은 재판 당사자인 원고와 피고, 피고인 모두 신청할 수 있다. 민사소송법 159조와 형사소송법 56조에 명문화돼 있기 때문이다. 가사와 행정소송은 민사소송법을 준용하므로 모든 재판에 속기와 녹음을 신청할 수 있다.

속기·녹음제도를 의무화하자는 쪽은 헌법이 보장한 재판권을 근거로 든다. 판사의 막말이 아직도 이뤄지고 있다는 점도 찬성의 이유다.

지난 2019년 사법부 국정감사에서 5년 간 시민들이 판사로부터 막말을 듣고 대법원에 진정·청원을 낸 사례는 88건에 달한다. 이중 대법원이 인정한 건 단 2건이다.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해서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문제가 최근까지도 계속돼 왔다. 시민 A씨는 “재판 초기에는 판사가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고, 꾸짖기도 해서 ‘아니다’ 싶었는데 녹음·속기를 신청하니 태도가 바뀌었다”면서도 “변호사가 처음 녹음·속기 신청에 대해 ‘판사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법원이 각종 기록에 불성실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게 통계다. 사법부 통계는 입법부나 사법부에 비해 자세하게 작성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법원은 사건 처리율과 접수율, 소 접수나 기소 이후부터 첫 기일까지 걸리는 시간, 장기미제 사건 수, 2년 초과 사건 수 등을 집계하고 있는데, 이마저도 없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한 판사는 “이런 통계로 인해 재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견이 모이면 이마저도 없어질 수 있는 곳이 사법부”라며 녹음·속기 제도에 대해서도 법원이 부정적일 수 있다는 의견을 전했다.

최근 법원은 이해관계자 요청을 받아 재판 당일에도 녹음속기를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fnDB.
최근 법원은 이해관계자 요청을 받아 재판 당일에도 녹음속기를 요청하면 이를 받아들이는 추세다. fnDB.

“녹음·속기 필요없어..이미 활성화”

이미 녹음속기 제도가 활성화돼 있다는 평가도 있다. 지난 2015년 대법원이 전국 법원의 모든 재판과정을 녹음하는 ‘법정녹음제도’를 실시해 속기·녹음이 확산됐다. 당시 대법원은 녹음 자료로 공판조서를 대체하는 계획도 있었는데, 이를 두고 ‘문자 중심’에서 ‘음성 중심’으로 체계가 변한다는 평가도 있기도 했다.

과거엔 1주일 전에 신청해야만 허가받을 수 있었던 것에 비해 현재는 재판 당일에도 녹음을 신청하면 받아들여지고 있는 추세다. 한 일선 판사는 “재판 당일에도 속기·녹음 신청이 가능한 만큼 (제도가) 많이 확대됐다”며 “판사들 또한 재판 당사자들이 전부 녹음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녹음 신청 대부분을 법원이 허가하고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법원이 녹음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사소송은 전자재판으로 이뤄지고 있다. 재판에 필요한 서류를 종이가 아닌 전자서류로 낸다는 의미다. 이에 법원은 사건 당사자들에게 법원 기록사이트를 통해 증인신문 내용까지 녹취파일로 제공한다. 따라서 녹음과 속기를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한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는 의견이 만만찮다.

속기·녹음 자체를 의무화를 할 만큼 인력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근 법원의 분위기는 사건 당사자들에게 ‘속기’보다는 ‘녹취’ 신청을 언급하고 있는데, 속기사들의 업무 과중 때문이다.
서울고법 한 부장판사는 “공판조서에 쓰일 중요 사안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속기사가 공판조서 작성에 일정 역할을 하는데, 모든 것을 기록하게 되면 업무과중은 당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jihwan@fnnews.com 김지환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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