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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첫 올림픽 '아름다운 도전'에 한전이 있었다

임광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7.29 11:24

수정 2021.07.2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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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년만에 첫 올림픽 무대...일본에 아쉽게 패배 최하위
선수 100명 열악한 환경속 '기적'...한전 실업팀 후원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 선수들이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7인제 럭비 11-12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한 뒤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19-31로 패하면서 최하위인 12위로 첫 올림픽 여정을 마쳤다. /사진=뉴시스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 선수들이 28일 일본 도쿄스타디움에서 열린 7인제 럭비 11-12위 결정전에서 일본에 패한 뒤 경기장을 나서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19-31로 패하면서 최하위인 12위로 첫 올림픽 여정을 마쳤다.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척박한 환경에서 올림픽에 첫 진출한 한국 남자 럭비대표팀이 최하위(12위)로 아름다운 도전을 마무리 했다.

28일 아시아 최강인 일본(세계랭킹 10위)에 아쉽게 패하며 첫 올림픽 도전은 최하위로 마무리 했지만 앞으로 세계 정상급으로 도약할 희망을 보였다.


한국 럭비가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은 건 1923년 럭비가 국내에 도입된 이후 96년 만이다. 실업팀 수가 3개 뿐이고 선수가 100여명에 불과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뤄진 럭비대표팀의 첫 올림픽 출전 자체가 기적에 비유될 만큼 위대한 도전이었다.

올림픽 본선에선 우승후보인 뉴질랜드(2위)를 비롯해 호주(6위), 아르헨티나(7위) 등 강호들과 한 조에 편성되며 전망이 밝지 못 했지만 근성을 발휘했다. 끈질기게 상대를 괴롭히면서 세계 최강 뉴질랜드를 상대로 역사적인 올림픽 첫 득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같은 아름다운 도전의 뒤에는 한국전력이 있었다. 한국전력은 비인기 종목으로 국내 실업팀이 전무한 지난 1986년 럭비단 창단 후 국내 럭비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도맡아 하며 한국 럭비의 위상을 끌어올려 왔다.

그동안 50여명의 국가대표 선수를 배출하며 3차례 아시안게임 금메달 획득을 견인했고, 이번 대표팀에도 소속선수 7명(주장 박완용, 한건규, 장정민, 김현수, 이성배, 김남욱, 김광민)이 선발돼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또 매년 대학팀과 합동훈련을 진행하고, 중·고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재능기부 럭비교실 및 유소년 선수들을 위한 럭비캠프를 주최하며 국내 럭비 저변 확대에 기여해 왔다.

한국전력 럭비단 주장이자 대표팀의 주장인 박완용 선수는 "올림픽에서 뛰었다는 사실 자체가 꿈만 같은 일이다. 올림픽 출전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신 회사의 배려에도 감사하다"며 "올림픽 출전을 통해 받게 된 관심을 바탕으로 럭비가 더욱 인기를 얻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정승일 한국전력 구단주는"그동안 한전은 척박한 환경에서 끊임없는 지원과 노력으로 대한민국 럭비를 발전시켜 왔다"며 "첫 올림픽 무대에서는 비록 최하위에 그쳤지만, 미래 대한민국 럭비의 희망을 보았고, 한전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국내 럭비의 활성화와 다음 올림픽에서의 승리를 위해 지속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럭비 아름다운도전 뒷이야기 하나
실업팀인 한국전력 럭비단은 야구나 축구 같이 프로화된 종목의 전업선수와 달리, 운동과 더불어 한전 직원의 업무를 병행하고 있다. 운동선수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회사 업무가 어렵기도 하지만, 희생과 협동이라는 럭비 정신을 바탕으로 팀원들과 원만하게 어울리며 적극적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특히 술에 취하거나 지나치게 흥분한 고객이 난동을 부릴 때 이를 진정시켜 다른 고객들과 직원들을 보호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고 한다. 혹시 한전에 방문했을 때 체격이 예사롭지 않은 직원이 있다면 한 번 유심히 살펴보자. TV에서 보던 올림픽 영웅을 우리 동네, 우리네 일터에서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박완용 한전럭비단 주장
박완용 한전럭비단 주장


■럭비 아름다운도전 뒷이야기 둘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연기되고 개최 여부가 불투명해지며 가장 마음 졸인 이는 박완용 주장이다. 박 선수는 2016년 출근길에 큰 교통사고를 당해 회복과 재활에 약 3년의 시간이 걸렸다.
공백기가 길다 보니 다른팀 선수나 관계자들은 은퇴한 줄 알고 있었고 심지어 중계방송에서 캐스터가 은퇴 후 복귀한 선수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30대 후반으로 체력 소모가 극심한 럭비 종목에선 버티기 힘든 나이였지만, 오직 올림픽 출전이라는 일념 하나로 은퇴를 미루며 누구보다도 많은 피땀을 흘렸고, 그 결과 대표팀 주장으로 선발되어 올림픽 출전권 획득의 주역이 되었다.
기적 같은 역전극이 펼쳐졌던 올림픽 예선과 어렵게 개최가 성사된 올림픽의 본선 무대까지, 한 경기 한경기 모두 그 누구보다도 박완용 선수에게 더 행복하고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lkbms@fnnews.com 임광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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