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19일 언론에 최대 5배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강행 처리했다. 민주당은 개정안을 24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처리한 뒤 25일 본회의에서 의결할 방침이다. 친여 시민단체와 정의당까지 등을 돌린 상태에서 "내용적으로나 절차적으로나 최하품질의 악법"이라는 악평이 쏟아졌지만 아랑곳하지 않는다.
여당이 입법독주를 하는 동안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17년 문 대통령은 언론의 '최순실 게이트' 보도에 "언론의 침묵은 국민의 신음"이라고 말한 사실을 잊은 듯하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 소위가 열렸을 때만 해도 달랐다. 당시 오영우 1차관은 “언론 자유 침해의 우려가 있다”, “수용하기 어렵다”, “적절치 않다” 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날 법안이 통과하자 황희 장관은 “의결해주신 데 대해서 깊은 감사를 드린다. 입법 목적이 달성될 수 있도록 집행에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감격어린 인사를 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언론말살, 언론장악 기도에 맞서 강력하게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배진교 정의당 원내대표도 “언론이 독립적이고 공정하게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도 않은 채 기사만 검열하겠다는 것”이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방송기자연합회·전국언론노동조합·한국기자협회·한국PD연합회 등 언론 현업 4단체는 “입법을 멈추지 않으면 촛불권력임을 자임해 온 민주당에 대해 신뢰의 끈을 놓지 않으려 버틴 우리가 먼저 결단할 것”이라고 논평했다.
언론 유관단체의 반대입장은 강경하다. 관훈클럽·대한언론인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는 공동성명을 통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지금이라도 폐기할 것을 국회에 요구한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내는 등 모든 법적 수단을 동원해 저지할 것”이라고 거듭 경고했다.
우리가 볼 때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정치적 부산물로 변질됐다. 언론학자들이 지적하듯 대다수 가짜뉴스의 진원지는 극단적 정치 성향의 유튜브나 블로그 등이다. 사실에 기반하지 않은, 편향된 온라인 플랫폼을 걸러내는 게 이 법의 개정 목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친여 성향 개인방송은 빠지고 기성언론 규제법이 되버렸다. 법 개정의 목적이 가짜뉴스 방지와 언론소비자 피해 구제에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이다.
수혜자가 누구인지 따져 보면 민주당의 ‘우리 편 지키기 법’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최대의 수혜자가 될 수 있다. 개정안은 언론의 본령인 권력 감시 기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고위공직자와 대기업 관계자 등은 손해배상 청구 주체에서 제외했다. 단, 고위공직자가 전직이면 손해배상 제도를 이용할 수 있도록 예외를 허용했다.
이렇게 되면 문 대통령이 퇴임 후 가짜뉴스라고 판단한 보도를 겨냥해 얼마든지 언론사에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해진다. 실제 윤호중 민주당 원내대표는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 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와 그것을 받아쓰기 하던 언론의 횡포에 속절없이 당해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머지않아 퇴임할 문 대통령에게는 동일한 고통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이 법의 개정 취지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딸 관련 삽화 왜곡과 같은 사례는 처벌하도록 하고, 개인 유튜브 방송을 통해 거짓 정보를 유포한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같은 사례는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빠지게 한 것도 문제다.
국경없는기자회가 '2021년 세계언론자유지수' 순위를 20일 발표했다. 한국은 180개국 중 42위를 기록했다. 지수에서 보다시피 한국의 언론 상황은 그리 자유스럽지 않다. 국격에 비해 현격하게 낮은 순위다. 더 억죄고 길들여야 할 처지가 아니다. 당정청은 언론중재법을 의결하기 전에 언론자유를 부르짓던 촛불의 초심으로 돌아가 재삼 숙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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