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생상스 원작 존중하며 각색, 관객에 압도적 감동 선사할 것"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10.04 19:38

수정 2021.10.05 12:45

fn·국립오페라단 공동 주최 '삼손과 데릴라' 연출 아흐노 베흐나흐

구약성서 사사기 배경을
20세기 초 나치시대로
작품 더 잘 살릴 수 있다
확신했기에 최선의 선택
라 트라비아타 이후
7년 만에 한국에서 작업
강렬한 오페라로 눈도장
기대 이상의 무대 약속
"생상스 원작 존중하며 각색, 관객에 압도적 감동 선사할 것"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무대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 무대
"나는 강렬한 오페라를 추구한다. 관객들을 사로 잡을 강렬한 오페라를."

드디어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오페라 '삼손과 데릴라'가 파이낸셜뉴스와 국립오페라단의 공동 주최로 40년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7일부터 10일까지 공연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낭만음악의 대표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1835~1921)의 역작으로 유려하며 이국적인 색채의 관능적인 선율이 작품 전반에 풍부하게 넘쳐흐르는 그랜드 오페라다. '삼손과 데릴라'는 기원전 1500년 전, 구약성경 사사기에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영웅 '삼손'과 그를 유혹하는 적국 팔레스타인의 미녀 '데릴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배경을 3500년 앞으로 당겨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1년 전이었던 1938년 11월, 나치즘이 팽배했던 독일로 옮겨왔다. 이 과정에서 고대의 영웅 삼손은 독일 나치군에 저항하는 유태인 레지스탕스의 리더로, 데릴라는 독일군의 스파이로 신분을 달리했다.


고전적인 고대 근동의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뒤바꾼 이는 연출가 아흐노 베흐나흐(55·사진)다. 프랑스 북부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나 6세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해 스트라스부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해 오던 그는 1988년부터 프랑스와 독일의 프로덕션 조수로 일하며 밑바닥에서부터 오페라 연출을 배웠다. 연주자에서 연출자로 변신한 그의 오페라 데뷔 무대는 1995년 프랑스 툴루즈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일 트로바토레'. 이후 25년 넘게 유럽과 미국 등 전세계를 오가며 꾸준히 오페라를 연출해온 그가 이번에 국립오페라단과 손잡고 '삼손과 데릴라'를 진두지휘하게 됐다. 2014년 국립오페라단과 '라 트라비아타'로 처음 국내 관객들에게 세련된 연출을 선보인 뒤 7년 만이다.

작품 개막을 앞두고 막바지 작업에 한창인 베흐나흐를 지난달 29일 서울 서초동 국립예술단체 연습동 N스튜디오에서 만났다. "한국에서의 작업을 매우 즐기면서 하고 있다"고 한 베흐나흐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의 관객"이라며 "수많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TV시리즈에 노출돼 있는 이 시대의 관객들에게 어떻게 기대를 채워줄 수 있을까, 얼마나 압도적인 감동을 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베흐나흐는 '삼손과 데릴라'에 대해 "무엇보다 좋은 음악과 이야기를 갖추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이어 "생상스가 처음 이 작품을 쓸 때는 '오라토리오'로 구성했다가 후에 '오페라'로 개작했기 때문에 연출의 입장에서는 무대화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작품이었다"며 "작곡가의 정신을 이어가면서 관객들이 지루해하지 않고 즐길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어떻게 연출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배경을 현대로 옮겨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왜 하필 나치즘이 팽배했던 20세기 초 독일로 배경을 옮겨 왔을까. 베흐나흐는 "유태인이 억압받았던 세계 역사를 살펴볼 때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시기가 '홀로코스트'였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베흐나흐는 "굳이 부연하지 않아도 홀로코스트 하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가 보편적으로 존재하며 관객들 대다수가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상황에서 고대 중동의 시대보다 더 의미 있다고 생각했다"고 답했다.

지금 이 시대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작품들 가운데 대다수는 고전을 지양하고 현대적인 무대 구성을 통해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베흐나흐는 자신뿐만 아니라 동료들이 무대 위에서 실험적인 연출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완결성"이라며 "의미없이 무조건 시대의 트렌드라 해서 모던한 오페라를 연출하는 것을 지양한다. 다만 배경의 변화, 또 현대적 연출이 오히려 작품을 더욱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섰기에 이런 선택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상스의 원작을 존중하면서 현대의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생상스의 정신에 더욱 가까울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에 관객을 감동시키기 위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부연했다.
베흐나흐는 "팬데믹의 시기이기에 관객들이 공연장을 직접 찾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며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오페라를 보러 오는 관객들은 이전보다 더 많은 대가를 치르고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작품을 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그들이 치른 대가가 타당하다고 느낄 만큼 수준 높은 작품을 선사하고 싶다"고 말했다.
베흐나흐는 "무엇보다 좋은 음악, 좋은 오페라를 무대에 올릴 것"이라며 "지금 이 순간 이 공연을 보러 와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무대 위에서 답하겠다"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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